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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Sep 09. 2020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반 고흐, 당신도 나와 같았을까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슬픈 일이 있거나-예를 들면 이별- 힘든 일이 있을 때 글을 주로 쓰는 편이라 글 사이의 공백이 긴 편이다. 이 치명적인 단점이 나를 글쟁이로 만들지 못했다. 따라서 행복한 기운이 오래가면 갈수록 글 공백 역시 길어지는데, 이번이 그랬다.


내년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과연 식이 제대로 올려질지나 의문이지만, 어쨌든 결혼은 하기로 했다. 결혼 같은 거 안 믿는다고, 나는 그런 거 안 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다녔는데, 그 누구보다 빠르게 20대 후반의 나이로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빨리 같이 살고 싶어서' 마냥 좋아서가 아니라, 나와 잘 맞고 우울증이 있는 나를 위로해주고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믿음이 갔다. 그동안에 만났던 남자들은 나를 두고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걸 더 좋아한다던가-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너의 우울증 따위 내가 알 바 아니라거나, 나에게 상처 주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계속되니 나는 모든 이별의 이유를 "나"라고 생각했고 이런 나를 부정하다 보니 우울증이 생겨버렸다.


지금은 너무나도 따듯한 사람을 만나 충분히 위로받고 있지만,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우울증 치료로 이전보다는 감정 조절이 능숙해졌지만, 아예 막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어제 역시 그랬다. 그동안 나 혼자 결혼 준비를 하면서 쌓여온 게 많았는지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 끊어버리고 침대 위에 쭈그리고 엎드려 펑펑 울었다. 눈물을 흘린 수준도 아니고, 그냥 운 수준도 아니고 울부짖었다.


처음에는 내가 우는 행위의 이유가 명확했다. 결혼으로 가는 길이 마치 나 혼자 가는 길 같았다. 비록 내 직업이 훨씬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내가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는 것도 많지만, 때론 누군가가 대신해줬으면 좋겠고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열심히 내가 알아본 걸 '음 별론데'라는 한 마디로 거절당하는 건 이런 나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다. 남자친구 역시 취향이나 가치관이 확고하고 그것이 나랑 비슷하기에 우리가 큰 갈등 없이 만나고 있지만, 가끔 찾아오는 이런 순간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럼 당신이 알아보던가!'라는 원망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 울부짖음이 10분이 되고 20분이 되면서 서러움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가 생겨났다. 우울증 치료해도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나의 우울증에 대한 항상성은 어디 안 간다고, '내가 이렇게 울어서 이런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많이 우는 걸까', '이런 내가 너무 싫다'는, 아무 상관도 없는 생각으로 발전해버렸다. 이런 사고의 흐름을 심리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교육심리를 배우며 그렇게도 '아하 비합리적인 신념과 사고는 나쁜 것이군! 합리적으로 바꿔야 하는군!'라며 복습했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건 그리도 어려웠다.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상담 중에 가장 중점을 뒀던 것 역시 이것이었다. 내 속에서 망가져버린 이런 나의 쓸모없고도, 비참하고도, 필요 없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바꾸는 것.


내가 본래 우울하게 태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꽤나 밝은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는데, 동시에 눈치도 참 많이 보았다. 교사인 어머니가 자신의 체면이 상하지 않게 예의가 바르고 똑똑한, 그런 완벽한 딸을 원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어보면 반 고흐는 태생부터 불행했다고 한다. 그의 형이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그의 형의 이름을 따라 '빈센트'라고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은 형의 이름을 썼기 때문에 빈센트가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다는 건데, 그것은 그냥 부모의 잘못된 판단이지 그로 인해 그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은 자식의 이름을 따라 다음 자식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부모가 그릇된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반 고흐는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생긴 상처가 많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생겼을 것이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그에게 있어 그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동생 테오였다. 영혼을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고갱과도 사이가 나빠졌고, 일생에 사랑하는 여자라곤 아주 짧게 만난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만약 단 한 명이라도 그의 가까이에서 그를 돌봤다면, 그 어떤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다면 그의 죽음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은, 평생을 약속한 이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 조차도 사랑하고 있지 않는 나를 더 사랑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울면 미안하다며, 내가 슬퍼하니 본인도 슬퍼하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다. <안녕 헤이즐>에서 헤이즐이 어거스터스에게 말했듯이, 나는 그에게, 또 그는 나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낀다. 이런 사람을 더 늦기 전에, 내가 내 삶에 비관하여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만났으니 그저 행운일 따름이다.


하지만 빈센트는 만나지 못했다. 그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테오가 결혼을 하면서 그와 교류가 적어졌고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정뱅이라며 욕하는 마을 사람들, 자신이 그린 그림에 관심이라곤 조금도 없는 대중들, 떠나가버린 소중한 동료들, 이런 그의 삶에서는 빛이라곤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지금 '빛의 화가'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그는 그의 삶에서 빛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옆에 소중한 누군가가 있었다면 삶의 빛 역시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나와 비슷해리라 믿는다. 그저 어느 순간 감정이 나를 지배해 울부짖게 만든다. 그 울부짖음을 멈추는 방법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눈물을 위로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만약 <닥터 후>에서 나온 것처럼 당신이 한순간 만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 온다면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고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내가 알려줄 수 있을 텐데. 당신도 알 수 없는 그 울부짖음을 내가 조금은 멈출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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