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나는 어떤 면접이든 자신 있었다. 정답을 미리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교조는 없어져야 할 단체요, 이 라크 파병은 국익을 위해 찬성이요, 고향이나 지역을 물어보면 무조건 서울 출신이요, 학생들에게 체벌보다는 상담이요, 집이 멀면 이사 올 것이요, 보충수업비를 안 줘도 봉사할 수 있고, 어떤 종교든 수용 가능하며, 방학에도 일하러 나오겠다.’ 이렇게 답을 준비하니, 대부분 면접을 보면 합격을 했다.
기간제교원을 뽑는데 논술 시험이 있는 학교도 있었다. 사립학교들이 기간제교사 뽑는 게 왜 이렇게 중요했냐면, 대부분 그 학교 기간제교사로 1년에서 2년 정도 근무시키고 정교사로 채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1, 2년 시켜 보고, 수습사원처럼 시켜 보고 잘하면 정교사로 채용해 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합격한 여러 학교 중 서울 본가에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으며, 아빠가 나를 출근시켜 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리고 기간제교사 하다가 정교사가 되어도 서울에서 정교사가 되는 게 훨씬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고향도 서울이니까.
그러나 이건 진짜 이기적이고, 결혼을 했어도 여전히 어린, 철이 없는 나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시골집에서 만삭이었는데, 나는 서울살이를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그 학교는 불교 재단이었다. 나에게 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이상훈 선생님은 절에 가 본 적 있으신가요?” 나이가 지긋한 교장선생님이 질문을 하셨다. 여기 면접은 서류를 통과한 5~6명 정도를 한 면접장에 몰아넣고, 교장, 교감 등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는 형태였다.
나는 성당에 다니는 중이었다. 절이라고는 석가탄신일에 장모님 따라서 비빔밥 먹으러 간 기억밖에 없었다. 절은 비빔밥이나 팥죽을 먹으러 간 경험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절 이름도 생각이 안 났다. 그러나 첫 학교에서 완전 데인 나는 면접관이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예, 저는 경남 하동에 쌍계사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대답은 국문학과 전공자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김동리의 〈역마〉를 읽었으니 쌍계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난 〈역마〉 속의 쌍계사를 말했을 뿐인데, 교장은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다른 질문들도 했는데,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쌍계사로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 재단의 기간제교사로 채용이 되었다. 아주 우습게도 면접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교장선생님이 합격 전화를 주셨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멋졌다. “이상훈 선생님, 우리 학교를 위해서 나와 함께 근무하면 어떠신지요?”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단 내가 원하는 지역에 기간제교사로 채용되고 나니 여러 모로 자신이 생겼다. 여기서 열심히 해서 정교사를 하든지 아니면 기간제교사 생활하면서 임용고시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