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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3. 2019

찌그덕, 찌그덕

그 찌그덕 소리는 아빠가 나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아빠와 많이 싸웠다. 부지런한 성격의 성실한 가장이던 아빠는 설렁대며 공부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게으르고 느긋한 성격의 나와 빠릿빠릿한 성격의 아빠는 자주 부딪히곤 했다. 싸우는 빈도가 잦아진 건 아빠가 실직한 이후였다. 아빠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와 부딪히는 일도 많아졌다.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싸움의 강도도 점점 세졌다. 급기야 고3 시절의 어느 날에는 순한 엄마가 ‘이럴 바에는 도비와 둘이 나가서 살게’라며 짐을 싼 적도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말 안 듣는 너 같은 딸은 필요 없다’며 소리 질렀고, 나는 나대로 ‘아빠가 화난 걸 왜 나에게 푸느냐’며 대들었다.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 성향은 변하지 않았고 아빠는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아빠를 원망했다. 그렇게 아빠와는 반쯤 서먹한 채로, 엄마를 사이에 메신저로 낀 상태로 서른이 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아프다고 했다.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준비와 챙겨야 할 아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몇 달이 흘렀다. 수술은 다행히 무사히 끝났고, 아빠는 약해진 채로 다시 집에 있게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던 그때처럼.


휴식을 위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빠는 또다시 게으른 나를 못마땅해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기력이 조금 돌아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픈 아빠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싸움은 작게 끝났지만 이미 마음은 상한 상태였다. 방문을 닫고 혼자 소설책을 읽으며 화를 식히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찌그덕, 찌그덕”

오래되어 반쯤 떠있는 내 방 앞의 장판이 눌려지는 소리였다. 이렇게 큰 발자국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찌그덕 소리는 내 방 앞에서 멈춘 채였다. 몇 분 후에야 다시 아빠가 찌그덕 소리를 내며 내 방에서 멀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소리가 너무도 익숙한 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오래 전의 그날들이 떠올랐다. 십 년 전에도 아빠와 싸운 밤이면 내 방문 앞에서는 오래도록 찌그덕 소리가 났다. 그 찌그덕 소리는 아빠가 나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열여덟의 나는 그 소리를 모른척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늘 먼저 화해를 청하던 쪽은 아빠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쳐놓고, 정작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도 말이다. 한 번도 내가 먼저 아빠의 방문 앞에 서성인 적 없었다. 더 이상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도망칠 수 없었다. 이제 저 방문을 열고 나가서 내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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