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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7. 2019

내 인생의 일 순위

엄마에게 자식이 일번인 것처럼 자식에게도 엄마가 늘 일번이다.

요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열심히 보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라는 장르이지만 이 드라마의 더 큰 장르는 '엄마'가 아닐까 한다. 수많은 엄마와 여자가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놀랍게도 내가 가장 이입하는 존재는 바로 필구다. 동백이와 필구의 관계는 우리 모녀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착하고 순하고 소녀 같다. 동백이처럼 남한테 싫은 소리도 잘 못 한다. 덕분에 나는 일곱 살 때부터 명절 때마다 고모들에게 왜 우리 엄마만 일하냐며 소리쳐야 했다. 집안이 어려워지고는 더 그랬다. 불안해하는 엄마를 달래는 건 내 몫이었다. 엄마가 예쁘고 착해서 좋았지만 예쁘고 착하기만 한 엄마가 나는 늘 조금 버거웠다.


하지만 나도 결국은 딸이었다. 필구가 동백이를 생각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나는 엄마가 아니면 안 된다고 떼쓰듯, 나도 그랬다. 필구처럼 엄마에게 왜 내 맘은 몰라주냐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왜 동생만 챙기냐고, 왜 아빠 마음만 챙기냐고. 왜 내가 힘든 건 봐주지 않냐고. 그때의 엄마는 동백이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그게 엄마가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백이처럼 슬펐던 거였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던 거였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 마음의 병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아빠가 실직했을 때보다도, 동생이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도 더 무너졌다. 그때 알았다. 엄마에게 나는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날 때부터 약해서 아픈 손가락인 동생과 IMF 이후로 집에만 있는 아빠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가끔 웃었던 건 나 때문이었다. 목소리 크고 똑똑한 딸이 엄마에겐 희망이었다. 가끔 아빠에게 대든다고 혼나도 기죽지 않고 할 말 다 하고, 고모들한테서 자기를 지켜주던 딸이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내가 아프다고 하자 그 소녀 같던 엄마가 누가 보던 말던 세상이 무너진 듯 주저앉아 소리치며 울었다.


하지만 엄마도 동백이도 모르는 게 있었다. 엄마도 나의 희망이었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믿음과 기대가 때로는 버거웠지만 때로는 든든했다. 우리 딸이 하는 일이라면 좋은 일이겠지. 우리 딸이 다니는 회사니까 좋은 회사겠지. 그 맹목적인 믿음의 덕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많은 엄마들에게 자식들이 일번인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엄마가 일번이다. 그러니까 자식을 버려도 붙잡고, 사이코패스여도 놓지 못하는 거일 거다. 그리고는 엄마한테도 내가 일번이길 자꾸 바라는 거겠지. 아빠보다도, 동생보다도, 용식이보다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필구가 옹산을 떠난 것은 엄마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제가 엄마의 행복을 방해할까 봐였다. 나도 그랬다. 나의 행복을 제물로 바쳐서 엄마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엄마도 그랬겠지. 동백이가 용식이를 포기한 것처럼 엄마가 나를 위해 엄마의 무엇을 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와 엄마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버린 게 한가득인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다. 애초에 행복이란 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엄마와 동백이가 행복해야 필구도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왜 결혼하냐고, 왜 자신이 일 순위가 아니냐고 화내지만 그것이 엄마가 나를 위해 제 행복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가장 바라는 것도 나의 행복이었다. 모녀 사이라고 해서, 서로를 끔찍이 생각한다고 해서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었다. 엄마는 나에게 기댔지만 내가 희생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 필구와 동백이는 이 사실을 더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엄마와 나는 이 진실을 알기 위해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그 시간들이 조금 아깝지만 괜찮다. 엄마와 나에겐 아직 많은 날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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