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즈베리맛젤리 Aug 03. 2020

고모라는 이름으로

조카를 탐닉하다






몇 년 전, 친구가 커다란 악어인형을 나에게 보여줬다. 한국에 있는 조카를 위한 선물이라며 수줍게 말하는 내 친구. 그걸 본 나는 심한 질투에 휩싸였다. '나도 조카 갖고 싶다...!' 나도 어서 고모가 되어서 악어인형이고 뭐고 다 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의 바램과는 다르게 조카는 몇 년이 지난, 작년이 되어서야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렇게도 열망하던 고모가 되었다.



나의 조카는 이제 11개월이 되었다. 조카는 작년 9월에 태어났지만, 내가 9월 초에 홍콩으로 일을 잡는 바람에, 얼굴도 못 보고 와버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조카였는데..' 그렇게 나는 조카를 사진으로나마 만나보는 랜선고모가 되었다. 하지만 '귀엽다'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카는 생겼지만 조카바보가 되진 않았었다. 너무 멀리 있었던 탓일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6개월이 지나서 조카를 처음 보러 갔다. 코로나로 인한 무급휴가 겸 나의 온전한 휴가였다. 실물로 보니, 오묘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역시 사진은 실물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해버렸다. 오빠와 새언니를 오묘하게 반반씩 닮은 이 얼굴.. 생명의 신기함과 유전자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만지면 부서질라 만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조카를 빤히 바라만 보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카와 3개월 동안 동고동락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3개월 동안 조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낮잠 몇 시간 잤을 뿐인데 조카의 키가 더 큰 기분은 왜인 걸까? 신비로웠다.. 나도 모르게 조카를 탐닉? 하게 돼버리고 말았다. 자고 있는 얼굴을 보자니 왜 아이들을 천사에 비유하는지도 온 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자다 깨서 자지러지게 우는 못난이 얼굴도 내 눈엔 귀여움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증의 조카바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3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매일같이 조카를 돌보고 재우고, 밥을 먹이고 놀아준다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나는 급속도로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조카를 보는 것이었고, 오빠와 새언니가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돌보긴 했지만. 부모가 아니.. 고모가 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조카는 30분을 채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30분을 재우기 위해서 1시간 이상을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이때 내 얼굴의 다크서클은 정말로 검은색이었다.. 하하

우연인 듯 아닌 듯, 4개월째 스케줄이 잡히는 바람에 나는 홍콩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였는데.. 홍콩으로 돌아온 지금, 조카와 함께한 지난 3개월이 너무나도 그립기만 하다..

'이상하다 분명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조카를 처음 돌보던 첫 달은,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할 것 같다며 엄마에게 몰래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 못 낳을 거 같아.. 너무 힘들어!" 하지만 3개월이 지나고, 홍콩으로 다시 돌아온 후. 나는 왜 아이를 낳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카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자지러지며 울면서 짓는 못난이 표정도, 루피 캐릭터를 보고 수줍게 웃던 얼굴도 너무나도 그리웠다. (조카의 얼굴은 순수한 감정만을 표하는 느낌이였다ㅎㅎ) 요즘 나는, 가족들이 보내주는 조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곤 한다. 엊그제 동영상에서는, 조카가 처음으로 신발을 신고 걷는 동영상이었다. 맨발로만 걸어보던 이 귀요미는 발에 뭔가가 있는 게 이상한 모양인지, 걷지도 않고 발만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귀여워 죽는 줄 알았다. 가끔은 그 웃는 얼굴을 동영상으로 보고 있으면,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렇게 나는 현재 고모라는 이름으로, 나의 조카를 열렬히 사모하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히 동물의 세계에 빠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