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은 병원에서

발견과 진행

by 나뭇결


요즘은 인터넷상에서 꽤 많은 자가 진단을 볼 수 있다. ‘10개 중 5개 이상이 해당되면 고위험군’이라거나 ‘당장 병원에 가보세요’ 라거나 제법 진지한 보건소 측의 테스트부터 거의 농담에 가까운 유튜브 영상까지. 결론 먼저 말하자면 그건 참고만 하는 게 좋다. 상태가 정말 매번 바뀌기도 하고, 특히 정신병은 ‘우울증’이라는 단순한 병명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내 사례로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나는 2017년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 많은 곳을 기피하는 불안과 피해망상 등 온갖 증상을 전혀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9년 가을부터는 갑자기 조울증이 시작되어 약을 바꿨고, 이후 조금 나아지는 듯해서 약을 줄이다가 졸업 학기에 다시 무기력이 심해지는 바람에 익숙한 항우울제와 각성제를 잔뜩 처방받았다. 하도 증상과 약이 많이 바뀌다 보니 나도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자각보다는 그냥 정신병자로 정의 내리는 게 편해졌다. 오히려 우울증은 내 증상 중 한 갈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병원에서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여기가 여기서 나온다. 병원에서 종합적으로 검사를 받고 의사의 최종 진단을 받으면 내가 혼자 예상한 것과 아주 다른 결과지를 받을 수도 있다. 알고 보니 조울증에 더 가깝다든지, 우울증과 ADHD가 신묘하게 결합한 형태라든지, 우울증인데 수면장애라서 조울증처럼 보인다든지. 정확한 검사와 문진이 치료 전에 선행되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아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주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 몇 주간 이어진 우울 삽화라서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애도 기간을 가지면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병원을 가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 내가 정신병 환자일까 확인하는 게 무서우니까. 생각보다 사람이 진료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신과를 방문하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수도 있고, 진료 기록이 남으면 이후 보험 가입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기도 하고, 취업할 때 회사에서 이걸 확인하면 어떡하나 싶고.

여기서 웃기고도 슬픈 현실은 본인은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는 생각이 들 때 덜컥 겁이 난다는 것이다. ‘우울증? 그거 심각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오히려 움츠러들 수 있는데 이럴 땐 오히려 ‘그거 치료받을 수 있는 병이다.’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진료를 진행하는 의사만이 줄 수 있는 확신이다.


물론 정신과만 방문하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한약방의 말을 인용하자면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신체적인 고통이 누적되며 정신까지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양쪽의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정신과는 기본적으로 일상 유지를 도와주는 약물 처방만을 진행한다. 심리 치료를 위한 상담은 본인이 따로 찾아보거나 애초에 상담 치료를 병행해서 관리해주는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과거의 나 역시 처음엔 정신과만 방문하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으면서 의사가 내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를 털어놓기 위해 눈물을 미리 장전하고 있었는데, 의사가 물어본 건 현실에서의 어려운 점과 관련된 증상이었다. 일상적인 무기력과 우울감을 완화해주는 약봉지를 덜렁 들고 병원을 나서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병원을 바꾸고 상담 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겨우 깨달았다. 애먼 의사에게 상담사의 역할을 기대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나는 3달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약물로 겨우 정상적인 일상을 지탱하며 틈틈이 상담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풀어가는 루틴에 적응했다. 엉킨 실타래를 마주하는 과정이야말로 본질적인 치료의 시작이고 약물 처방은 그 중간에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약 몇 알로 기분이나 마음가짐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참, 정신병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넘어야 할 고개가 많기도 많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내 곁의 지인이 치료를 마음먹었다면 뒤에서 단단히 지지해 줘야 한다. 크든 작든 수많은 좌절의 순간을 겪기 때문이다. 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시도하는 것과, 어쩐지 사무적인 태도의 의사를 만나며 소소하게 실망하는 것과, 맞는 약을 찾기 위해 긴 시행착오의 기간을 거치는 것 전부 혼자의 힘과 의지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이 모든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환자에게는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는 이미 아름답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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