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과 진행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입니다.’
처음으로 내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보았던 문구다. 이제 와서 생각하자면 우울증이라는 정신병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완화하고 쉽게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처음 접했을 땐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면 나는 감기 따위에 이렇게 괴로워하는 나약한 인간인가?’
…따위의 생각으로 오히려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한국 특유의 사회상 때문에 더 심해진 왜곡이다. ‘그냥 있으면 7일, 병원 가면 일주일이면 낫는 게 감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감기를 별거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사회, 웬만한 시련과 고난이 아니면 정신력이 부족하거나 나약한 사람으로 보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으면 삐뚤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노인과 어른들은 ‘죽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그에 비해 특별히 힘든 과거를 겪은 것도 아닌 현대인 주제에 죽고 싶다며 주저앉아 있는 20대가 얼마나 나약해 보이겠는가? 정신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중장년층 입장에서, 마음의 감기에 걸렸다며 집 안에 누워만 있는 환자를 보면 답답하다며 바깥바람 좀 쐬고 정신이나 차리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부작용이 있다는 양약을 먹이기보다는 가족이 좀 더 챙겨주고 일이나 좀 시키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에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보다 차라리 암에 가깝다.
실제 암 환자분들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 치사율과 치료에 걸리는 시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85,271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24.2%를 차지한다. 고의적 자해는 총 13,978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4%를 차지한다. “24.2%와 4%는 너무 다르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며 40대는 암이다. 젊어서는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차라리 죽음으로 도피하며, 늙어서는 몸이 받쳐주지 못해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적어도 청소년과 청년층에 있어서 정신병은 암 정도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까지처럼 인간 심리에 대한 몰이해로 정신론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더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전에 말했던 경향성 3가지가 다시 나온다. 무작정 정신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라는 말을 할 게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압박하며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을 키우는 3가지 변수를 구체적으로 탐구하고 조절해야 한다. 그러려면 약물 치료와 훈련, 환경 조성이 필요한데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설사 완치된다 하더라도 어떤 사건이나 조건으로 다시 재발하곤 한다. 세상에 어느 감기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가.
사실 이런 비판을 하긴 많이 늦었다. 내가 해당 문구를 본 것은 처음 우울증을 자각했던 2017년 당시의 일이고 벌써 8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상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굳이 다시 말하는 이유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정신병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이며 그런 가능성은 일반적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갖고 있다. 사회 부적응자가 어떤 정신 병력을 갖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그런 사람을 만든 사회상이나 말이 되는 범행 동기를 찾는 것이 훨씬 더 건설적인데도 사람들은 종종 ‘또라이다.’라는 말로 퉁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범행 동기로 정신병 이력이 거론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언젠가 ‘용의자가 당뇨병 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감형이 필요하다’는 변호를 들어본 적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하지만 정신병이나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변호는 주야장천 나온다. 사회가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다. 세상에 음주와 동일 선상에 놓이는 질병이 무엇이 있는가.
정신병에 걸리면 사회에 피해가 된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해당 병력으로 인해 제일 많은 불편과 피해를 감당하는 것은 그 환자라는 것이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의 대부분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병이 환자에게 끼치는 피해와 치사율을 강조해서라도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 같은 사람들이 마음 편히 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속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