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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07. 2023

나도 한때는 요정이었다.

Tooth Fairy



어른이 되어서도 치과에 가는 건 여전히 싫다. 그래서 치과에 가는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이도 열심히 닦고 치실도 늘 가지고 다닌다. 특히 양치질을 끝낸 후에 '구운 소금'을 살짝 찍어서 짧게 다시 양치하는 습관은, 이십여 년 동안의 자체적 임상실험을 거친 검증된 방법으로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권했고 지금도 기회가 되면 마치 소금회사 홍보담당자처럼 적극 추천한다. 특히 잇몸을 튼튼하게 해 주고, 치약만 썼을 때보다 훨씬 더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시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땐, 이가 흔들린다고 치과에 가진 않았다. 집안의 어른들께서 흔들리는 이를 명주실로 묶어서 빼주셨다. 할머니는 이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하면 혀로 계속 밀어주라고 하셨는데 때론 너무 열중해서 혀끝이 얼얼하고 턱이 뻐근할 때도 있었다. 날마다 조금씩 더 이가 흔들리면 은근히 재밌다가도 어느날부터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곧 이를 빼야 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채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진 신고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의 불시검문에 걸린다.


어이구, 이가 아예 드러누웠네.


라고 하시면 꼼짝없이 붙잡혀서 이를 빼야 했다. 빼고 나면 그것만큼 시원한 일도 드문데 뽑히는 순간까지의 긴장감은 극에 달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꼬옥 쥐게 된다.


그렇게 뺀 이가 윗니면 지붕으로 던지고 아랫니면 아궁이에 던져야 한다는데 아궁이가 없는 집에서 살아서 아랫니도 지붕에다 던졌다. 혹시 아궁이가 아니라서 새 이가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면서.

이를 버릴 때는 꼭,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말해야 예쁜 새 이가 나온다고 해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사뭇 진지하게, 평소보다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였던 나는 혹시나 누가 내 꼴을 보고 웃을까 봐 두세 번쯤 두리번거리다 힘껏, 지붕을 향해 이를 던졌다.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뺀 이를 지붕으로 던지는 대신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잤다. 자는 동안 요정(Tooth fairy)이 와서 헌 이를 가져가고 '이' 값으로 돈을 놓고 가야만 새 이가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작 25센트짜리 동전 하나지만 아침에 동전 한 닢을 찾아내면 큰소리로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와 자랑을 했다. 어쩌면 아이들에겐 뺀 이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를 뺄 때의 아픔보다 더 강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정이 다녀갔다는 신호인 동전 하나에 환호하는 것이다.


물론 Tooth fairy는 나다.

그러니까 나도 한때는 요정이었다. :)


아이가 어릴 때 그린 치아요정의 그림을 보니 당황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직장과 육아와 살림이라는 삼각구도의 균형을 잡느라 잠도 부족하고 늘 시간에 쫓기던 시기였다. 마침 휴일이라 함께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아빠가 이를 빼 준 아이는 마치 전리품인양 자그마한 젖니를 들고 자기 방으로 갔다. 나는 밤에 아이가 잠들면 동전과 바꿔야겠단 생각을 분명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깜빡 잊고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의 방에서 절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뛰어가보니 아이는 어제 뺀 작은 옥수수알 같은 젖니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그제야 아차!

아이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Tooth fairy'가 다녀가지 않았으니 나는 이제 영원히 이가 하나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거냐면서... '아차' 하던 순간부터 이미 내 머리는 팽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빨리 생각을 해.. 뭐라고 해야 할지.. 어느 순간, 머릿속의 팽이가 딱, 멈췄다.


요새 이 가는 아이들이 많아서 요정이 바쁜가 봐. 아마 오늘 밤엔 꼭 올 거야. 하루만 더 기다리자. 응?


아, 순진하고 착한 내 딸은 실망스럽긴 해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무룩해서 학교로 데려다주는 내내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오늘 밤엔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마음속에 포스트잇을 100개쯤 붙인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후에 25센트가 아니라 1달러짜리 동전으로 비밀리에 성공적인 거래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에도 또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25센트가 아닌 거금 1달러짜리 동전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이를 빼고 요정을 기다리는 동안 영특한 세월도 함께 흘러 치과 가는 게 가장 싫은 일이 될 무렵, 아이들은 알아챈다. Tooth fairy는 엄마였다는 것을. 하지만,


이를 빼려고 잔뜩 긴장했던 순간과, 언니나 동생을 위해서 작은 약솜을 꼬옥 쥐고 곁을 지키며 덩달아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달콤하게 소란했던 많은 저녁들과, 베개밑에 뺀 이를 넣어두고 요정을 기다리며 잠이 들던 포근한 속눈썹과, 요술처럼 헌 이가 반짝이는 동전 한 닢으로 바뀌어 있는 걸 발견한 이른 아침의 환희는,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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