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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pr 06. 2024

적절한 작명이 주는 즐거움

마리카의 엄지 장갑


겨울 동안 장갑을 세 켤레 떴다.


첫 번째 장갑은 색깔도 그리 고려하지 않고 오래 묵은 실로 떠서 수수하지만 시기적절하게 완성해서 아침 산책 때마다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크로쉐이로 모티프를 떠서 연결하는 담요를 세 개 떴는데 이제 담요는 안 뜨기로 작정하고 나니 조금씩 남은 색색의 실이 꽤 많았다.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양말과 장갑을 뜨기로 했다. 모카신처럼 도톰하고 헐렁한 양말은 겨울 동안 날마다 내 발을 낙낙하게 덥혀주었다.


장갑은 떠놓고 보니 예상보다 훨씬 예뻐서 색색으로 뜬 첫 장갑은 아이에게 주고 사실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데 내 장갑을 또 떴다. 생필품이 아니라 귀여운 인형이나 장식품을 뜨는 기분이었다. 그 사이 마음에 드는 색은 거의 다 쓴데다 혹시 뜨는 중에 실이 모자랄까봐 두 겹으로 떠서 도톰했던 아이의 장갑과는 달리 한 겹으로 뜬 내 장갑은 조금 얇고 계속 미루던 빨간색이 꽤 많이 들어갔지만 나름대로 예쁘다. 덕분에 빨간색이 조금 더 좋아졌다.


내가 어릴 땐 이런 장갑을 '벙어리장갑'이라고 불렀다. 아마 손가락이 한데 모여서 자유롭지 못하니 그걸 말에 비유해서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손가락장갑보다 벙어리장갑을 좋아하던 나는 별생각 없이 이 단어를 썼다. 내게 벙어리장갑은 곧 '귀여운 장갑'이라는 뜻이었으므로. 그런데 장갑을 뜨려고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이제는 '손 모아 장갑'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아... 했다. 우리가 무심하게 혹은 습관처럼 쓰는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었겠구나. 그러고 보니 요즘엔 이런 신종어가 너무 많다.자조적인 의미로 쓰일때야 개인의 선택이지만 무심하게, 혹은 농담처럼 쓰는 말에 마음을 다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말이나 글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무기인지 새삼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다.



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문장을 어디서 읽었는지는 잊었는데 (코엘료의 '연금술사' 인가... 아..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의 기억력이여..) 내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에 대해 알려주려고 온 우주가, 아니 온 인터넷이 도와준다는 건 여러 번 경험했다. 알고리즘과는 분명 다른 경험이다.


늘 그렇듯 뜨개질을 할 때면 오디오북을 듣는다. 장갑을 뜨는 중이었는데 우연치고는 절묘하게 '오가와 이토'의  '마리카의 장갑'이라는 일본 소설을 듣게 되었다.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루프마이제 공화국의 사람들은 색깔로 마음을 표현하는 털실로 짠 장갑과 평생을 함께 한다. 탄생의 기쁨도, 사랑의 표현도,청혼도, 승낙도, 간절한 기원도 모두 장갑으로 하고 혼수함에도 상대방 가족들의 장갑을 짜서 넣는다.


사실 이 장갑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전통인데 그들의 언어로 '침디'라고 부른다. 라트비아를 여행한 작가가 이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서 '마리카의 장갑'을 썼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엄지 장갑'으로 번역을 했는데 손 모아 장갑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설령 그 단어의 유래에는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숨은 뜻을 가늠하고 감탄하는 건 꽤 유익한 즐거움이다. 이를테면, 손 모아 장감이 '함께'라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두는 이들의 작명이라면, 엄지 장갑은 개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데 치중한 것 같다. 이래서 작명이 중요하단 주장이 아직도 설득력이 있나 보다.



모티프 12장을 연결해서 뜬 머플러,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미뤘던 겨울옷과 소품들 정리를 모두 끝냈다. 이젠 다시 추워져도 안 꺼낼거야. 잘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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