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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15. 2024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건물

발견의 기쁨_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카페테리아에서 나오자마자 시선은 광장을 가로질러 달아난다. 스펙트럼같은 미술관 벽면의 색들이 낮게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돋보인다. 건물의 외벽이라고 하기엔 뭔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은 '공들임'이다. 건물의 이름을 다시 떠올린다. 첫단어가 Clay인걸 보면 흙과 관련이 있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흐린 날씨 탓에 적당히 가라앉은 색감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햇빛을 받아 환하게 발색할 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휴관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아쉬움은 이미 사라졌다. 외벽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이곳에 머물 이유는 충분했다.



가까이 가니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색깔들이 촘촘하게 엮여있는 걸 알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할 수 없이 조화롭다. 마치 무채색 기류에서 지낸 지난 몇달과 대비를 이루듯 발랄한 색깔들이 마음 언저리로 밀려든다. 컬러 테라피를 받는 것 같다. 직접적인 쓸모는 없는 비일상적인 것이지만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주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클레이아크는 Clay  Architecture 합성어로 ''이라는 재료가 어떤 형태로 '건축'이 되는지를 나타내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이 단어 속에는 과학과 예술, 교육과 산업의 협력을 통한 건축도자 분야의 발전을 추구하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기본 정신이 담겨있다고 한다.


흙은 도자'기술을 통해서 이미 인간사회의 진화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한다면 좀 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의 건축은 다양한 재료의 개발과 발전으로 원래의 실용적인 쓰임새뿐만 아니라 중요한 예술품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도자와 건축의 협력을 다양한 시도로 전개해 가는 중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관의 외벽을 감싸고 있는 도자작품, Fired Painting이다. 그러니까 건물 자체가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제1호 소장품인 셈이다. 'Fired Painting'은 흙을 이용해 만든 도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불에 구워 건축물에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내구성과 내화성을 갖춘 것이다. 이 도자 작품은 원시미술의 상징적인 패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한 장의 크기가 48x 48센티미터인 대형 정사각형 타일 5,036장이 전시관 원형건물 외벽에 부착되어 있다.


신상호 작가의 작품으로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으며 깊이 있는 회화적 색상 표현을 위해서 1,250도에서 최소 4~5번의 소성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작가 한 사람의 작품이지만 아마도 직접적인 제작은 무척 많은 사람들의 수공을 거쳤을 것이다. 도판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알루미늄의 프레임을 통해 건물에 고정되었기 때문에 건물의 외형을 변화시키기 위해 떼어내도 외벽에는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건물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색상과 패턴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시도로 클레이아크미술관은 환경보호와 실용성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성을 표현한 건축 도자의 상징물이 되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2006년 3월 24일 1차 개관한 '돔 하우스'에 이어 2012년 3월 24일 2차 '큐빅하우스' 개관했다. 3개의 전시실과 키즈스튜디오, 테라스튜디오, 시청각실을 갖추고 있고 부대시설로 중정 수변공간을 비롯하여 미술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창이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전시와 아동 및 성인 교육프로그램, 학술회의, 강연, 문화이벤트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레지던시 사업을 위한 세라믹 창작센터, 직접 흙으로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도자체험관이나 미니타일 체험을 할 수 있는 아트키친, 상징조형물인 '클레이아크 타워'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망 좋은 옥상의 조각공원

미술관 뒷쪽으로 올라가면 자그마한 옥상정원이 있는데 20여 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4개국에서 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클레이 아치 _로버트 해리슨(미국)
몽상가 & 같이 밥 먹을래? _ 탕쉔(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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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슬 vessel _ 김문경(한국)
풍경을 위한 용기 _ 테츠야 타나까(일본)
무제 _ 알렉산드로 피에르 씰락(프랑스)

두 조각상이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분리되어 있지만 한 작품인 것 같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두 조각상 사이의 공간이 작품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빈공간을 스토리텔링으로 채운 것 같았다. 프랑스 작가의 작품인데 일부러 의도한 듯 한국적인 분위기다. 그래선지 배경으로 보이는 먼 산과 낮은 마을 풍경과도 잘 어울린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마음이 끌렸던 작품이다.



작은 언덕을 하나 더 올라가는 길에 있는 둥근 벤치에 앉아 내려다본 풍경이다. 옥상 조각정원의 전체적인 모습도 보이고, 미술관의 메인 건물을 '돔 하우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된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대표 전시장인 '돔 하우스'는 건축학상의 형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도예 작업에 사용되는 '물레'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라고 한다.


앞쪽으로 크게 보이는 두 개의 조형물은 '희망꽃이 피었습니다(김영현, 손진희)라는 작품의 일부다. 올라오는 언덕에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접시 혹은 종모양의 도자기들을 '민들레 홀씨'의 형상으로 연결하였다. 민들레 홀씨를 입으로 불어 날리며 소원을 말하던 시절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이 조형물은 옥상정원에 있는 것은 아니고 미술관 바로 옆, 그늘과 바람이 좋아서 내멋대로 '바람의 골목'이란 이름을 지어준 곳에 있다. '자크 코프만'의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을 위한 클레이-아치 Clay Arch for Clayarch Gimhae Museum.



옥상정원에서 클레이아크 타워 쪽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오다 잠깐 멈춘다. 카페테리아의 친절한 바리스타가 그러셨다. 단풍들 때 오면 더 예쁘고 좋아요. 하지만 단풍 들면 색감이 섞여서 미술관 건물의 아름다움이 덜할 것 같아 지금의 초록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가을엔 올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조금 섭섭했는데, 마치 정다운 작별인사처럼 살짝 단풍을 보여준다. 지금은 가을이 시나브로 스며드는 계절, 구월이다.



바람의 골목을 지나다 잠시 멈춘다. 미술관 외벽의 풍부한 색감, 하루종일 흐리다 잠깐 비친 햇살에 속살을 드러내는 별 같은 단풍잎, 저절로 눈이 감기는 시원한 바람, 우연히 만난 이 작은 공간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올려다본다. 일상의 기쁨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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