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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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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l 04. 2022

우물 밑바닥 테라피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것.



당신은 어느 쪽이야?

우울할 때 경쾌하고 빠른, 혹은 스피커가 터질 듯 뿜어 나오는 음악을 듣는지 아니면 슬프고 묵직하게 더 가라앉게 만드는 음악을 듣는지. 난 후자. 내가 우울할 때 저 혼자 신나서 날아갈 것 같은 사람이 위로가 되나? 음악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대부분의 2악장은 진리고, 여전히, 좀 낡으신 '브라이언 아담스'나 '심수봉'의 목소리를 사랑하지.


글을 쓸 때도 그래. 지금 너무 힘들고 우울한데 안 그런 척, 행복한 척해봐야 꼭 사기 친 것 같아서 오히려 회의만 생겨. 물론 억지로라도 웃거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고 애쓸 때 얻어지는 빠른 회복력은 있지. 나 또한 많은 시간을 그 힘으로 버텼으니까. 그러므로,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우울의 수위에 관한 것일 수도 있겠네. 그렇게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우울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우물 밑바닥으로 가라앉듯 끝까지 무너졌다가 다시 고인 물을 헤치며 올라와야만 덮어둘 수 있는 우울도 있거든. 나는 그걸 '밑바닥 테라피'라고 불러. 그러니까,


우울할 때 억지로 발랄하고 긍정적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불면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 때,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쓸수록 잠은 더 멀리 달아나고 오히려 약을 올리듯 온갖 소란스러운 생각과 두통까지 던져주잖아. 그럴 때, 나는 그야말로 '벌떡'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지.


우선 진한, 진짜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마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원두를 사러 가서 '디 카프'라고 말할 때의 묘한 열패감 따위를 위로받기도 해.(디카프는 커피도 아니라는 악담을 수시로 날렸는데 어느 날 카페인이 날 배신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열열이 사랑했는데...) 그리고 더러, 그냥 잠들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소한 위안을 만나기도 하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너무 파닥거리지 마. 떨어질 땐 나를 그냥 내버려 두고, 내가 지루해진 우물 밑바닥이 나를 밀어 올리면 다시 또 올라가면 되는 거야. 지겨운 반복이라고? 알아.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거, 당신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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