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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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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ug 02. 2022

언제나 묵음인 그 말

라벤더향 비누로 손을 씻다가




긴 침묵 같은 침잠, 혹은 낮은 우울로 가라앉으려다 이러면 안 되지,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리듯 마음속에 사소한 긍정의 불빛 하나 내려보내면 창가의 보랏빛 바이올렛, 꽃잎이 얇아지고 있었어요. 그래, 이젠 올라가자. 바닥에 닿았을 땐 올라갈 일만 남은 거야.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의 옷고름이 잠깐 느슨해지는 만큼, 혹은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만큼만, 화사한 것을 탐내 보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 함께 꽃이 되는 날도 있었어요. 


아직도 여전히 삶의 결이 거칠어질 때가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늘 같은 일상이지만 유난히 더 아프고 더 슬프고 더 그리운 날이 있지요. 향기로 말하지 않는 바이올렛처럼 가슴을 울려 소리를 만들 수 없는 날들이 지나면 꽃잎 끝이 상하듯 얼굴은 수척해도 눈빛은 오히려 형형해지죠. 찬물을 쏴아 틀어놓고 라벤더 향이 나는 비누로 오래오래 손을 씻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내 눈과 마주쳤을 때 흰자위에 푸른빛이 어리면, 알아버려요. 어느새 그리움이 거기까지 차오른 거예요. 손바닥 가득 찼던 거품을 찬물에 씻어내며 그리움도 함께 씻어보는 거죠. 마음이 시려와요. 그러다 묽은 커피를 몇 잔 째 마시고 있는 흐린 오후 네 시쯤, 햇살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는 메마른 꽃잎처럼 아무도 듣지 못하게 말해버리고 말아요. 어느 시인이, 젊은 날 언제나 묵음으로 발음했다던 


그것. 


햇살도 바람도 당신 목소리까지도 나를 통과한 후, 흰 벽에 걸린 마른 꽃처럼 다시 건조한 평안이 찾아들면 지극한 손놀림으로 바스락거리는 바이올렛 꽃잎을 솎아주죠. 말라붙은 눈물 자국 같다는 생각을 해요. 칠월의 햇살과 포옹하며 올 들어 두 번째로 피었던 바이올렛 꽃이 지금 막 지고 있어요. 나도 두어 번쯤 그랬을까요. 이 삶에서, 당신의 기억 속에서, 바삭바삭 말라버리고 싶었을까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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