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치찬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Jan 03. 2023

추억이 되지 못한 향기

히아신스



한겨울에 감기에 걸리면 이상하게 히아신스 향이 그립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시간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간다. 심하게 앓다가 일어났을 때, 마치 바람결처럼 훅 끼쳐오던 어느 날의 향기는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라 더 오래된,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 속의 언어다.


엄마가 집을 나간 그 겨울엔 아버지가 수경으로 기르시던 히아신스 꽃향이 유난히 진했다. 가끔 집안에서 숨쉬기가 힘든 건 히아신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별 보살핌 없이도 작은 화분에 담겨 심해어처럼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꽃을 피워내는 히아신스가 영원히 살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그리고,


세월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늘 맹렬하게 도망 중이었으므로 끝내 그녀의 안부를 몰랐다. 가끔 궁금했다. 히아신스는 아직 살아있을까, 혹은 죽거나 버려졌을까. 물만 주어도 잘 자랐을 텐데.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녀가 살았던 곳이 사막이었다는 것을.


어느 이른 봄, 빵과 버터를 사다가 기억에 실금이 가는 향기를 맡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두리번거리는 내 곁에서 보랏빛 히아신스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그녀는 웃고있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히아신스 향기가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리취 찰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