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속에서 보내는 봄엽서
며칠 동안 계속 흐리고 비가 왔는데도
여느 때처럼 그리 스산하진 않길래
빗속에 뭔가 새 기별이 숨어있는 걸 알았지.
가문비나무에 잔뜩 머물렀다 떨어지는 빗물에게서
불쑥 풀냄새가 났거든.
비가 그치자 기온은 빙점 이하로 떨어졌지만
쨍하고 실금이 갈 만큼 맑은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긴 산책을 했어.
2주 넘도록 아팠던 헌터가 다 낫고 나니까
세상이 달라 보인다.
턱밑이 아릿한 추위지만
아침 공기마저 보드랍고 달콤하게 느껴지더라.
오랜만에 신나서 제대로 산책을 하는 녀석의 걸음이나 표정만 봐도
덩달아 걸음이 가뿐해졌어.
한결같은 짙푸른 상록수에 지칠만하면 눈에 띄어
긴 겨울의 동행이 되어주던 호랑가시나무 붉은 열매
여전히 고고하고 아름답지만 좀 지쳐 보였던 건
아마 눈이 부신 햇살 때문이었을 거야.
눈을 뜰 수가 없더라.
푸른 날개를 단 겨울 아침의 햇살.
꼬리 긴 나무 그림자들.
그리고,
보여?
꽃 피고 싶어서 발갛게 몸살을 앓는 나뭇가지와
그 끝에 매달린 작은 전구 같은 꽃망울들.
망설이며 숨겨놓은 '시작'이 있다면
얼른 꺼내서 저 가지 위에 얹어놓고 싶었어.
주인 떠난 빈 집 마당의 목련나무에도
토실토실한 꽃망울이 맺혔어.
오늘 아침, 영하 4도였는데 말이야.
봄은,
겨울이 시나브로 잦아들고 나서 오는 게 아니라
가장 깊고 추운 겨울 속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단지 우리가 추위를 막을 궁리를 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할 뿐.
아마 지금부터는 날마다
어딘가에 새 순이 돋지 않았을까
맨 처음 피는 꽃은 어디쯤에 숨어있을까
뭐 그런 걸 떠올리며 걸을 것 같아.
남은 겨울을 보내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지?
기다리면 꼭 와주는 게 새 계절이잖아.
오지 않는 걸 기다리기보다는
지켜지는 약속처럼 오는 걸 기다리며
감기 걸리지 말고
남은 이 겨울 잘 보내길 바래.
아직은 추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