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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텐 Jul 21. 2021

천사가 이끈 다음 역,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에는 이미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 소박한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앉아 잘자흐 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지난번 그 자리에서의 충만한 감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 아름다움과 비례하게 나의 헛헛한 마음도 배가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품고 행복해했으면서, 이날은 유독 쓸쓸하기만 하다.



이 도시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은 소중한 기억이 스며있는지. 입구의 철문이 닫히기 직전 극적으로 들어가 즐길 수 있었던 사랑스러운 미라벨 정원에서는, 마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들처럼 귀엽게 뛰어다녀보았지.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생가에서는, 일찍부터 세상을 사로잡으며 돌아다닌 세기의 천재가 이곳에서 느꼈을 재치와 갑갑함이 동시에 전해져 애잔한 마음이 들었고. 이 도시의 중심과도 같은 웅장한 대성당에서 드렸던 미사의 장엄함과 공간의 깊은 울림은 영혼 깊숙이까지 다가와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 앞 카피텔 광장에서의 완벽한 합주의 기억과 세계에서 몰리며 주목하는 페스티벌의 열기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 아니던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


도시를 내려다보며 보석 같은 기억을 통째로 소환할수록 지금의 답답한 마음과 대비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젠 알고 싶다.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게 옳은 것인지. 오랜 시간 기도했고, 이 여정에서 그 답을 찾고 싶지만 답은 내 앞에 놓인 듯 그렇지 않은 듯. 내가 그리도 소중하게 여겨온 그 특별한 하루하루들이 이젠 먼지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여느 여행과는 다르게 다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들어와 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기에 있고, 이게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르며, 또 그게 어떤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남은 시간 이곳을 그저 묵묵히 만나야지. 그런 마음으로 로비에 앉아 지도를 펴고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곳에 익숙해 보였는지, 한 소녀가 다가와 길을 물었다. 근처에 일이 있어 왔다가 예정에도 없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초행이라 어디를 구경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단다. 나는 내가 보던 지도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이곳이 좋아요, 저기가 예뻐요, 늘 그렇듯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러다 우리는 자연스레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의 삶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울림으로 다가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내면에 고여 있던 오랜 고민을 처음 보는 소녀에게 꺼내 놓게 되었다.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오직 한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사람들이 보여주는 길에는 무언가 온전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 오랜 방랑은 내 맘 속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 주며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기존의 앎과 충돌하며 지금 이렇게 불안한 거라는 걸, 묵묵히 들어주는 소녀는 그 존재만으로 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내게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가지신 그 마음 그 생각 정말 좋아 보여요. 너무 어울리시고 잘 하내실 것 같아요. 그러니 가시고자 하는 곳에 가서 펼치실 일만 남았네요."


어, 가슴이 얼얼했다. 사실 내 마음에 품은 이 생각과 꿈들이 괜찮은지 몰랐고, 내게 어울리는지도, 과연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는데. 게다가 그냥 그렇게 툭 내려놓으면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조차 몰랐으니까.



우리는 식당에서 함께 일어나 그녀가 가보고 싶은 곳, 그리고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함께 발을 떼어 보았다. 여행정보센터에서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를 도는 투어가 진행됨을 알려 주었다. 반가운 폰 트랩 대령 저택의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면서,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놀라운 건 그도 노래를 공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몇 년 하다, 그게 맞는지 모르겠기에 답을 찾고자 떠난 여행길에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찾게 되어 이렇게 유럽에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상황도 어려웠고 자금도 부족했지만, 기적처럼 모든 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지금껏 여행길에서 마주한 친구들 중 이런 고민으로 떠나와 함께 대화하던 중 자신만의 해답을 찾고 돌아가는 과정을 참 많이 마주하곤 했다. 그런 모습들이 매번 거울처럼 나의 상황을 바라보게 했고 말이다. 내일을 모른다는 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공평한 삶의 모습일진대, 생각과 감정에 제약을 두지 말고 그저 묵묵히 걸어가 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길에서 찾아야 하는  답이 아닌, 선택이었고, 나의 성숙을 통해서만 내릴  있는  나은 선택이 우주의 기운과 온전히 맞딱뜨리게 하기 위해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위에  있다는 것을....


https://youtu.be/yvQ4t-Nk128





잘츠부르크에서 뮌헨을 잇는 이 기찻길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가. 여느 때와는 또 다르게 흩뿌려진 구름들이 내 마음을 한없이 관통해 버릴 것만 같은 빛 아래로 한껏 부드러움을 더해주고 있었고, 그 모습은 저 끝도 없이 펼쳐진 녹음 사이로 평안한 기운을 더해주고 있었다.   


잠시 전날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사진기를 꺼내 내가 찍은 사진들과 서너 가지의 영상을 틀어보았다. 이름도 묻지 않은 잘츠부르크의 천사가 찍어준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난다. 그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는지 건너편 앉은 여인네의 얼굴이 나로 향한 것을 느낀다. 잠깐 어색한 시선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맑고 부드러운 눈빛이 나를 바라보며 같은 기운의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낀다.


삶이 이렇게 한가롭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면 내 마음이 하염없이 비뚤어지고 거칠어질 새가 없을 테니까. 행복에 겨운 하루하루라니 생각만 해도 현실감 없이 느껴진다. 그래. 슬프게도 현실에서의 내 얼굴은 이날같이 의식 없는 웃음을 자연스레 드러내기보다는, 방향 없이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모습일 때가 더 많았던 건 아닌지.


동경하는 빛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여정을 삶으로 살아낸 이 시간은 나에게 결국 기회였고, 실제였다. 지금까지 내딛은 걸음과 한 결이며, 앞으로도 늘 변하지 않을 내 삶의 모습이다. 그날 그 기차 안에서의 나는 깨닫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담은 여행이 이제 큰 피로를 안겨주고 있지만, 나는 견뎌내고 또 다음 정거장으로 믿음을 가지고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다음 역이란 언제나 용기를 가지고 도달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삶의 전환점이니. 이 감사한 기차가, 저 은총의 활로가, 나를 그 역으로 분명히 인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행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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