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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텐 Jul 18. 2021

생활 속의 음악, 라이프치히


어느 지역에 가던지 대략 한 달 이상 머무르는 곳에는 습관처럼 나의 자리를 마련해 놓곤 한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오랜 시간 일한 그의 교회음악의 토양 토마스 교회의 뒤편 책방 제일 구석자리가 바로 내 자리다. 원래 진짜 사랑은 그의 뒷모습까지도 속속들이 아는 것 아니겠는가. 토마스 교회의 고즈넉한 뒤태를 바라보며 악보를 보거나 책을 읽곤 하던 것이 당시의 내 일상이었다. 또 토마스 교회의 음악을 듣고 와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여러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이곳 라이프치히에는 추수감사절이 끝난 어느 초겨울에 첫 발을 내디뎠다. 생각지도 못한 초대로 처음 독일의 겨울을 경험한다는 걱정과 설렘이 반씩 공존한 채.


생각보다 크고 깔끔한 기차역의 역사가 이곳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있게  주었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두터운 구름이  머리 위를 낮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햇살은  씻고도 찾아볼  없는 흐린 날씨에 패딩 코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떠나오기  이곳 날씨를 확인해 보니 내가 살던 미국 중부보다 훨씬 기온이 높아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었지만, 습한  기운이 뼈속으로 미는 느낌이었다..


스산한 마음을 안고 거리로 나서니 여기저기 성탄을 맞는 아기자기한 장식이 눈에 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나의 마음에도 전구에 불이 켜지듯 탁! 하는 소리가 난다. 아, 곧 있으면 12월이지. 기분 탓인지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맴돈다. 게다가 숙소에 도착하니 편안한 미소의 안주인이 엄마처럼 포근하게 반겨주신다. 매일 아침 갓 구운 독일식 빵에 얇게 자른 삶은 계란과 햄을 얹어서 먹던 그 고소함이 그의 애정과 겹치며 내 맘 한 구석에 진한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라이프치히에    열흘 정도가 지나자 처음으로 해를 만났다. 여전히 두텁던 구름 사이가 잠깐 열리 두어 시간 빛이 새어 나온 것이다. 햇살이 이렇게 귀할  있다는  실감하며 그동안 움츠러 있던 몸과 맘을 풀어줄  산책에 나섰다.  동네 어디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었을까? 조용하던 도시는 아이 어른   없이 밝은 얼굴로   거리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크리스마스 마켓이 반짝거리며 열려 있었다. 사람에 둘러싸여 귀여운 성탄 장식들을 구경하던 , 한쪽에서 장화 모양의 작은 성탄 컵에 따뜻한 글뤼바인을 팔고 있는  눈에 들어온다.   잔에 자동으로 올라오는 미소라니.




하나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독이 사라지지 않고 어지럼증이 계속되었다. 평소 커피 향은 좋아하나 몸에서 잘 받지 않아 자주 마시지는 못했는데, 이곳 거리를 걷던 중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그 향에 생존본능을 느끼며 들어가 마셨다. 신기하게도 내 몸이 그 진한 맛을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인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서 주인공 소프라노가 ‘커피’를 대놓고 찬양하는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아,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 수천번의 키스보다도 더 사랑스럽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부드럽네.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 누구라도 날 즐겁게 하려면 커피를 더 채워 주길! (바흐의 <커피 칸타타> 중 "아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


https://youtu.be/w8xcRYMa5V8

JS 바흐 <커피 칸타타> 중 "아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Ei! Wie schmeckt der Kaffee süße)"


반갑게도 라이프치히는 바흐가 이 유쾌한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지역이기도 하다. 직접 커피를 주제로 쓴 클래식 음악이 많은 건 아니기에,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도시와 커피를 연관 지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 바흐를 커피에만 국한시켜 생각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업적을 남긴 작곡가이기는 하지만, 내게 이런 개인적인 기억과 겹쳐 그렇게 남기도 했다는 사실은 신기한 일이다.


라이프치히를 거친 작곡가가 바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그너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슈만 역시 이곳에서 활동한 중요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쉬이 접할 수 있고 가장 그 의미를 가까이서 탐색할 수 있는 음악은 단연 바흐의 것이다. 라이프치히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단연코 토마스 교회에서 드렸던 성탄 예배 중 울려 퍼진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남아있다. 어디 성탄뿐이겠는가. 이 교회에서 바흐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이 도시의 일상이고, 그 일상은 어느덧 나의 것이 되었다.



https://youtu.be/EduxGvX2xVY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소속 토마너코어가 부르는 바흐 <B단조 미사> 중 발췌 부분



당시 여러 상황으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숙소에서 큰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나오는 토마스 교회에서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주 음악 예배에 참석했다. 이곳에서는 약간의 헌금을 내면 바흐, 또 바흐, 그리고 다른 아름다운 교회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게 내게 얼마나 큰 영혼의 씻김이며 치유가 되어 주었는지. 교회 밖 옆구리를 지키고 서 있는 바흐의 동상은 살아서 때로 친구처럼 친밀하게, 때로는 선생님처럼 근엄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유해가 이 교회 안에서, 그것도 정 중앙 누구나 쉬이 볼 수 있는 무덤에 안치되어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도 말이다.



토마스 교회의 중요한 음악은 이 교회의 전속 소년합창단인 토마너코어, 그리고 이 지역의 오케스트라이자 세계적 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진다. 언제나 예배 전후로 깔끔한 단복을 입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소년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토마너코어의 역사가 무려 1212년에 시작되었으니, 내 다음 세대에서는 금방 천년을 채울 예정이다. 이들은 전속 기숙학교에서 지내며 음악과 라틴어 등 언어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는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시 전체의 음악감독으로서, 이 학교에서의 교육과 이 도시에 필요한 교회음악의 작곡 및 지휘 전반을 담당했다. 1723년부터 1750년, 즉 그가 죽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다 보니 토마스 교회는 라이프치히 시대에 쓰인 바흐의 교회음악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장소다. 이곳의 음향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을 그의 작품들을 여기에서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완벽한 조합은 없는 것이다.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는 그의 음악을 통해 언제나 나를 가르쳤다. 음악으로 단순한 감정만을 이야기하려 하지 말라고. 음악에 최선을 다 해야 하며, 한 인간으로서 잘 살아야 하고, 모든 면에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고, 그는 평안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그의 음악은 그 누구의 것보다도 나의 성장에 관여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그 음악을 통해 내 마음은 한층 간결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바흐는 살아생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기보다는 지역 사회 위주로 활동했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음악은 그의 사후 점점 더 큰 가치를 인정받으며 후대의 작곡가들에 의해 추앙받고 지켜진다. 특히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지 약 100년 후 펠릭스 멘델스존이라는 또 다른 거인이 이곳으로 날아와 바흐의 음악을 받든다. 특히 멘델스존의 가장 큰 업적의 하나가 책장 안에 깊숙이 숨어 있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세상에 다시 끄집어낸 일이다,.


토마스 교회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순간은 바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가 연주되던 시간이다.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완성된 이 작품이 주는 무게와 감동은 상당하다. 이 작품의 초연 지역은 영국이긴 하지만, 당시 멘델스존의 본거지는 라이프치히였고, 게다가 게반트하우스의 수장으로 12년을 봉직하던 시기의 작품이기에 남다른 감동이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의 독일어 버전은 멘델스존 사후 몇 달이 지나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기도 하다. 사실 토마스 교회에서의 음악예배 시간에는 전에 모르던 멘델스존의 다양한 교회음악 작품들도 많이 감상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의 재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멘델스존의 동상이 바흐마저도 그 측면을 차지하고 있는 토마스 교회의 정면에 위치하는 의미는 상당하다.  


https://youtu.be/ati88Wz10YU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중 "Thanks be to God"




이런 음악을 듣고 와 바라보는 토마스 교회의 뒤태는 늘 내게 여러 생각과 감정을 던져 주었다. 멘델스존에게 바흐가 그러했듯, 지금을 살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바흐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다른 세상의 음악이 아닌 현실이자 일상이다. 그들에게는 최상의 음악이 늘 피부에 닿아있다는 게 어찌나 부러웠든지. 내가 앞으로 어디에 있던, 이곳에 내 맘을 내려놓고 얻은 깨달음을 어떤 식으로 풀어놓아야 할지, 다음 지도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그것은 내게 지금까지도 커다란 지침서이자 살아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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