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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락 Mar 13. 2020

햇살무죄

산문

햇살무죄




엊그제, 입춘을 지나더니, 우수를 지나 겨울잠에서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며칠 남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이마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온몸을 훑으며 언 땅에 스며들고 있다. 변화 없는 일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속임 없이 바뀌는 계절은 고분고분하게 오늘을 보내지 말라고 채근하는 것 같아 햇살이 좋은 봄에는 양지바른 들에 앉아 봄기운에 살랑 마음을 띄우고 바람 따라 어디로든 가고픈 일탈을 꿈꾸곤 한다. 정각 봄이다.

어릴 적, 나는 평범하였고, 어디에서든 주목받지 않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그 어느 때와 같이 봄볕이 좋았던 4월, 나는 늦잠을 잤고, 잠이 덜 깬 채로 창호문 틈새를 일직선으로 뚫고 나온 빛줄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부유하는 작은 알갱이들, 빛보다 더 투명한 지상의 생명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쉽게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햇살이 좋았고, 오늘 같은 날은 학교 수업을 받지 않더라도 '또 다른 내'가 그 교실 그 책상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나는 나를 설득했고, 충분히 납득당했다.

학교 앞, 개울에 앉아서 흐르는 개울물의 소리를 듣는 것이 마냥 좋았다. 봄이 커지는 앞산, 울긋불긋한 진달래들은 어린 마음을 들뜨게 하였고, 햇살이 무지 따사로운 하루쯤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누구나 다 이해 줄 거라는 철없는 자기 확신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내 또래의 아이 둘이 나를 보고 손짓을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곧 나는 담임선생을 맞닥뜨려야 했다. 늘한 눈초리, 담임은 다짜고짜 내 한쪽 귀를 움켜잡았다. 질질….

나는 담임의 손에 멱살을 잡힌 채 학교로 끌려갔다. 도중에 문방구에 들른 담임은 담배를 샀고, 익히 낯이 익은 문방구 아줌마는 사태를 짐작이나 한 듯,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음으로 변명했고, 애써 고개를 돌렸다.

"아줌마, 나는 그저 햇살이 좋았을 뿐이라고요."

담임선생에게 이끌려 교실 문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던 교실은 곧 조용해졌다. 수군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들,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교실을 나는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 책상이 보였다. 그토록 기대했던 '또 다른 나'는 없었다. 당연했지만, 나는 떳떳함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선생은 가만히 나를 주시하더니 손목시계를 풀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무거운 침묵, 파박, 담임의 수박만 한 손이 내 얼굴을 그대로 덮쳤다. 쿵, 교탁이 쓰러지고 나는 교탁 위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얼굴을 감싸 졌다. 아픔을 달랠 시간도 없다. 담임이 내 멱살을 쥐고 냅다 일으켜 세우더니 뺨을 수도 없이 갈겨댔다. 창피했다. 눈물이 났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왜 내가 맞아야 하는지, 왜 내가 단짝 친구 상윤이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계집아이 정숙이 앞에서, 선생에게 쩔쩔매며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호소해야 하는지, 내가 왜 학교를 빠졌는지에 대한 인간적인 질문도 하지 않는 담임선생이 미웠다.

억울했다. 선생은 멈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나는 결딴이 났다. 그 처절한 비명들, 나는 애원하고 빌었지만 담임의 일방적 구타는, 교실 여기저기서 계집아이들의 작은 울음이 터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만신창이가 된 나는 한쪽 구석에 쓰러졌다. 한 줄기 햇살에 취해 버린 내 영혼이 가여웠고, 실재의 내가 아니면 나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당연한 처사를 무지막지한 구타를 통해 체득한다는 게 서러웠다. 단지 햇살이 좋아서 그랬을 뿐이라는 내 진술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선생이 미웠고, 햇살 좋은 날, 학교에 가라고 잔소리를 해대던 엄마도 미웠다. 교실 밖, 복도에서 엎드린 채 흐르던 눈물의 강을 따라 아롱지던 햇살, 햇살들…. 


나만 기억하고 나만 보았던 햇살이 잊혀지지 않아 봄이 오면 어김없이 그날 일을 떠올리곤 한다. 일탈은 일상에 속한 드라마적 요소일 뿐, 문제적 인간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 일탈이 정서적 공감대가 더해지면 주변의 일상들이 한결 부드러워질 수 있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그때의 담임선생이 참 지독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자그마한 몸을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집요하고 신명 나게 두들겨 팼을까. 사랑의 매는 개뿔이다.

햇살에 대한 트라우마 탓일까.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대로 떠나고 싶어 진다. 그 악질 담임선생을 다시 만날까마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햇살이 좋은 탓은 내 어린 동심의 일탈은 여전히 무죄이기 때문이다. 아이야, 날이 좋구나, 햇살 따러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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