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쇠북이요 경쇠다. 쇠북이나 것은 두드려야 운다. 두드리지 않으면 비록 1년 내내 울지 않아도 괜찮다. 옛날엔 형님인 남유상이 두드리고, 오원이 두드리면 내가 울었다. 두 사람이 죽고 나서 나는 울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남유용 「임계백시발」 中
태어나서처음이 울음이라 아이 때에는 참 많이도 울었다. 얇은 피부와 조그만 정신의 크기만큼 더해지던 관심들을 방어할 수 있었던 건 울음소리의 크기였다. 두드려 맞아도 울고, 보듬어도 울고, 탯줄이 끊기던 첫울음 때부터 모태와 멀어질수록 사나워진소리는 아이의 무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섯 살배기 동생이 죽었다. 한 이틀을 엉엉 울고 동무들과 어울리다 웃었나 보다. “동생이 죽었는데 니는 웃고 노나.” 동네형의 알듯 모를듯한 눈빛과 함께 들었던 한 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돌아다닌다. 더 울어야만 했나.
강하지 못해서 마음껏 울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천명을 넘어서도 물론 난 강하지 않다. 그래도 울 수가 없다. 관계가 엉크러지고 떠나고 남아도 가슴을 두드려 맞아도 괜찮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며칠 전 술에 취해 아이들 앞에서 울었다고 한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울었다니 울었겠지.
눈물의 근원이 아직 남아 있었는가. 비우는 것보다는 채우는 것이 먼저인 건가. 이렇게 나이가 한 살 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