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역』
몇 달 전부터 헬스 PT를 받고 있다. 나는 운동을 원체 못하고 싫어해서 학창 시절 운동회 날을 제일 싫어했다. 이런 내가 수영을 시작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면 헬스를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남은 삶을 건강하게 살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과 같은 것이었다. 수영을 3년 넘게 하면서 전체적인 체력은 좋아졌지만 골다공증 수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장기간 골다공증 치료제를 복용해도,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도, 칼슘과 비타민 D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6개월에 한 번씩 확인한 검사결과지의 수치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내 골다공증 수치가 70세 노인의 뼈 상태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헬스에 도전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암이나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것도 걱정되는 일이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걷지 못하는 삶이다. 얼마 전 시어머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치매를 앓고 계신데다 몸이 안 좋아 작은 수술을 해야 했다. 한 달 정도 입원해 계셨는데 병실에 같이 입원해있던 다른 할머니들을 보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으나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혼자서 거동을 하지 못해 누워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움직임이 조금이나마 가능한 분들도 눈빛은 완전히 죽어있었다. 노화가 인간의 삶에 필연적인 요소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직접 접하게 되니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걷지 못한다는 것이 다른 질병보다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헬스장으로, 두세 번은 수영장으로 향하는 나. 아침 6시에 일어나 주간 출근 준비를 하고,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야간근무를 하러 가는 나의 일상. 생활의 규칙성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시계의 시침과 분침에 맞춰 움직이는 하루에 활력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라는, 기차에 몸을 실으라는 내 마음의 신호다.
망설임 없이 승차권을 예매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진영역이다. 새로 지은 진영역이 아닌, 예전의 진영역.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진영역이 어떤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다행히 김천에서 진영역까지 가는 열차가 있다. 구 진영역을 찾아가려면 진영역에서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꽉 짜인 내 일상에 생명력과 활기를 넣어주는 오늘이 참 좋다.
진영역 철도박물관, 내가 찾은 구 진영역의 현재 이름이다. 방송이나 책자를 통해 이미 여러 번 접한 진영역 철도박물관이다. 역사 주변이 정말 넓다. 역사 부지가 이렇게 넓은 걸 보니 진영역의 지난날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간다. 경전선 진영역은 1905년, 일본이 군수품을 나르기 위해 군용철도로 개통되었다가 1907년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고 한다. 1943년에 지금의 역사로 개축되었다고 하니 건물 자체의 나이로도 8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셈이다. 2010년 경전선 복선 전철화에 따라 105년 만에 진영역이 폐역이 되고, 새로운 위치로 역사가 이전되었는데 폐역 직전에도 800여 명의 승객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전국 최초 공립 철도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맞이방의 모습이 펼쳐진다. 기차를 기다리는 학생에게 감을 나눠주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광주리에 가득 담긴 감을 팔러 가는 할머니와 교복을 입은 남학생, 예전에 진영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었을 것이다. 김해 진영은 김해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단감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나중에 진영 단감 축제 홈페이지를 검색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 진영 단감은 1927년에 진영역장을 지낸 일본인 요코자와가 한국 여성과 결혼한 후 최초로 재배에 착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그 밖에도 전시관은 철도의 역사, 승차권과 기차 모형, 한국의 지선 철도, 어린이를 위한 기관사 체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철도박물관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오래된 역사(驛舍)를 방치하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용을 한다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철도박물관 가까이에 자리 잡은 성냥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역과 성냥전시관이 무슨 관련이 있나 싶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마지막 성냥공장인 경남산업공사가 진영에 있었다고 한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기린표 성냥을 만든 곳이 바로 경남산업공사다. 김해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공장이었으며 진영읍 주민의 대부분이 이 공장 덕분에 먹고 살았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유휴 부지에 전시관이 만들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냥을 만들 때 쓰던 기계와 도구, 상품화된 성냥들을 볼 수 있다.
혼자서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들어온다. 아이와 함께 잠시 구경하는가 싶더니 다 둘러보지도 않고 서둘러 나간다. 젊은 부부에게는 아마도 성냥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없어 이곳에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할 거라고 혼자서 생각한다. 엄마가 쓰던 곤로 옆에도, 할머니가 피우던 담배 옆에도 네모난 기린표 성냥이 있던 세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따스한 기억과 만날 때 더욱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진영역에는 열차 카페가 있다. 예전에 운행되던 파란색의 새마을호 객차다. 과거에는 가장 빠른 기차로 어깨에 힘 좀 주던 열차였는데 지금은 카페로 개조되어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아침부터 커피를 많이 마셔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카페 내부가 궁금해 발걸음을 옮긴다. 메뉴판을 보니 팥빙수가 있다. 요즘 나오는 팥빙수는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양이 많고 가격이 비싸서 주문하기가 망설여졌는데 가격을 보니 딱 1인분으로 나오는 팥빙수 같다. 커피도 그렇고 다른 디저트들도 아주 저렴한 편이다. 혼자서 온 나에게 딱 맞는 메뉴다 싶어 얼른 팥빙수 하나를 주문하고 내부를 둘러본다. 의외로 사람이 많다.
구 진영역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철도박물관이 자리해서도 아니고, 성냥전시관이 있어서도 아닌 듯하다. 주민들이 언제나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야외 벤치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도 많다. 장을 보고 오다가 잠시 쉬어가는 젊은 새댁도 있고, 할머니 여럿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광경도 보기 좋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진영역 주변을 열심히 걷는 아저씨도 있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아주머니도 볼 수 있다. 진영역에 기차가 다닐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지금도 진영역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덕산역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우울한 은퇴자의 모습이다. 덕산역, 예전에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머지않아 폐허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역명 아래에 ‘동읍 농촌중심지 활성 사업 주민위원회’라고 붙여놨는데 문은 잠겨 있다. 여름이라 나뭇잎 무성한 나무에 가려져 덕산역의 모습이 더 초라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볕을 피해 작은 분식집으로 향한다.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식혜와 즉석에서 해주는 떡볶이 1인분이 덕산역을 바라보며 느꼈던 아쉬움을 채워준다. 돌아오는 길에 창원중앙역에서 기차를 탄다. 큰 가방에 노트북을 멘 사람들의 모습,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님들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근처에 대학교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데 창원중앙역을 알리는 역명판에 창원대라는 명칭이 같이 붙어있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님이 방송에서 수학자는 멀리서 봐도 금방 수학자라는걸 알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수학자뿐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누구나 몸에 밴 특유의 습관과 분위기를 풍기는 게 아닐까.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기차에 몸을 실으며 진영역처럼 멋진 제2의 삶을 꾸려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운동 게을리하지 않고, 책을 더 가까이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뭔지를 고민하고. 어제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