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막바지다. 세상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무르익어간다. 오늘은 목요일, 게다가 쉬는 날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덜 붐비는 요일 중 하루이기도 하다. 하늘의 청명함에 이끌려 나는 예정에 없던 나들이를 나선다. 기차역으로서가 아니라 이제는 카페로 더욱 유명한 곳, 가은역을 찾는다. 가은역은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폐역이다. 지역에 있던 광업소 이름을 따서 1956년 ‘은성역’으로 문을 열었고 1959년에 ‘가은역’으로 역명을 변경하였다. 그 후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자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가은역도 자연 폐역이 되었다. 이것이 1994년의 일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답게 가은역은 카페보다 찻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외양을 지니고 있다. 아담하고 따스한 온기가 풍기는 역사(驛舍)다. 오래전 커다란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며 열차를 기다렸을 이들이 떠오른다. 안주머니 깊은 곳에 월급봉투를 찔러 넣고 모처럼 고향으로 향하는 젊은 광부의 상기된 얼굴이 스쳐간다.
카페로 이용되고 있는 가은역
안쪽으로 들어서니 코레일 제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자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철도에 오래 근무하신 역장님 이름이다. 주문대 앞에 걸려있는 제복에도 얼마 전 퇴직하신 역장님의 명찰이 붙어있다. 두 분 모두 이 지역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신 분이다.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가은역에 대한 반가움을 제복에 고스란히 담아놓으셨나 보다.
주문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다. 문경의 특산물인 사과를 주재료로 한 독특한 메뉴가 많아서 쉽게 선택할 수가 없다. 사과 밀크티, 사과 모히또, 사과차, 사과 라떼……. 오늘은 날씨와 딱 어울리는 따스한 커피 한잔과 사과쿠키를 맛보기로 한다.
주문을 하고 역사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다. 가은성당, 약국과 문방구 등 주변의 건물을 담은 ‘우리 동네 일러스트 엽서’가 눈에 띈다. 포근함과 여유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림이다. 가은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마그넷과 모형키트, 문경새재 열쇠고리까지 모두가 탁월한 관광기념품이다. 지역을 소재로 한 문경만의 기념품이라서 더욱 빛이 난다. 휴대전화기로 빠르게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에 느리게 가는 엽서를 받고 반가움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워진다. 예쁘게 포장한 열쇠고리를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줄 누군가가 보고 싶어 진다.
커피와 쿠키를 들고 밖으로 나오니 주변이 모두 단풍으로 물든 자연 카페다. 분명 노란빛과 붉은빛의 단풍인데 실제 느끼는 색은 10여 가지나 되는 듯 다채롭다. 옅은 노랑, 짙은 노랑, 그보다 더 짙은 노랑, 붉은색, 노랑과 빨강을 섞어놓은 색……. 이럴 땐 채도가 다르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명도인가? 턱없는 미술 지식까지 끌어들여 단풍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만 꽃보다 더 황홀한 그들의 자태를 말로 풀어낼 재간이 없다.
마음까지 고운 빛으로 물들이고 가은 읍내 탐방을 시작한다. 한산한 거리에 햇살이 가득하다. 가은역에서 보았던 엽서 속의 건물들이 하나둘 눈앞에 펼쳐진다. 화장지가 필요하여 문구점으로 들어서니 연세 지긋한 분이 나를 맞는다. ‘이런 곳에 휴대용 화장지가 있을까?’ 속으로 생각한다. 내부는 7, 80년대를 상징하는 생활사 박물관 같다. 초등학생들이 열광할 물건들로 꽉 찼다. 그야말로 꼬마들의 문구점, 꼬마들을 위한 문구점이다. 다행히 주인 할아버지가 내가 찾던 휴지를 건넨다. 평생을 이 문구점과 함께하신 걸까. 문구점과 할아버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온다.
카페가 아닌 다방 간판을 단 곳이 여럿이다. 탄광이 있던 도시답게 대형 식육식당도 보인다. 한때 광부였던 선배가 그랬다. 광부들은 고기의 기름기가 몸속의 석탄 가루를 녹여준다고 믿었다고. 그래서 탄광 주변의 고깃집이 늘 붐볐다고……. 석탄 가루의 유해함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은 믿음으로라도 없애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을 그저 웃음으로 넘길 수만은 없었다. 이곳에도 소주 한잔과 고기 한 점에 자신의 건강을 맡기던 수많은 광부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인적 드문 거리에서 세월의 덧없음도 느껴진다.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붕어빵이 3개, 천 원이다.
“너무 싸게 파시네요?”
요즘 우리 동네 붕어빵 시세는 싼 곳은 2개 천 원, 비싼 곳은 3개 이천 원이다. 덤으로 한 개를 더 주는 곳은 절대 없다. 예전엔 살짝 탔거나 시간이 지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붕어빵 한두 개 정도는 그냥 얻을 수도 있었는데 그건 모두 옛말이다. 3개 천원은 몇 년 전 붕어빵 가격이다. 장기 보관 가능한 물건이라면 이럴 때 왕창 사두는 건데.
“요 카페는 언니 친구, 옆 가게는 동생 친구, 뒤에 반찬가게는 동생이 해여. 붕어빵 사러 오는 사람도 전부 내가 요만할 때부터 보던 아줌마, 아저씨들이라 비싸게 못 팔아여.”
안산에서 식당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젊은 주인장의 솔직한 고충이다. 막 구워낸 바삭한 붕어빵이 내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어느새 세 개째다. 천 원어치를 더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제과점 빵은 만들어 놓고 팔 수 있지만 붕어빵은 30분만 지나도 눅눅해져서 구워놓고 팔 수가 없어여.”
맛있는 붕어빵을 손님에게 팔려는 주인장의 마음씨에 안 그래도 맛있는 붕어빵이 더 맛있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세 개 더 먹자. 밖에만 나오면 왕성해지는 나의 식욕, 역시 오늘도 변함이 없다. 나 혼자 정한 가은역 맛집, 터미널 앞 붕어빵 포장마차. 올겨울 장사가 잘됐으면 좋겠다.
가을의 중심에 있는 가은역 공원
몇 걸음 걸으니 아자개 장터다. 식당과 떡집, 카페 등 작은 상가가 아기자기 모여 있지만 문을 연 곳은 거의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 너무 조용해서 드라마의 세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행히 가을볕을 쬐며 조용히 앉아계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인사한다.
“어데서 왔는데?”
할머니도 내가 무척이나 반가운 눈치다.
“영주에서 왔어요. 근데 여기 너무 조용하네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말씀하신다.
“인자 여는 싸와도 말려줄 사람도 읍따. 사람들이 와야 장사도 할낀데 인자는 사람 구경도 못해여. 코로나 전에는 여가 다 복작복작 했어여.”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아 이제는 놀러 갈 데도 없다는 할머니는 멀리서 아주머니 두 분이 나타나자 정말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처럼 외치며 다가간다.
“사람 구경 쫌 하자!”
좀 전만 해도 쓸쓸해 보이던 할머니는 주민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 세상, 살갑게 인사 나누며 사는 것이 금기시되는 세상. 코로나 감염병이 만들어버린 현실에 잠시나마 할 말을 잃는다. 굳게 닫힌 상가들 사이를 지나오는데 칠판에 적힌 어린아이의 글씨가 보인다.
‘우리 아빠 곰탕 맛있어요.’
삐뚤삐뚤한 글씨에 우주인인지 사람인지 모를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아마도 가게 홍보용으로 곰탕집 사장님이 어린 자녀에게 직접 쓰고 그리라고 한 게 아닐까. 눈을 돌리니 굳게 닫힌 가게 문과 바닥에 뒹구는 간판이 보인다. 곰탕, 수육, 냉면……. 잠시나마 그림을 보고 흐뭇했던 마음에 찬바람이 스친다.
방송에서는 얼마 전부터 워드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지금 상황에서 어느 누가 손을 번쩍 들며 확실한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답안이라고 내밀더라도 과연 그것이 모범답안일 수 있을까. 판단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현재 상황에서 비록 정답은 찾지 못할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