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역 승강장에 가을볕이 그득하다. 역장도 역무원도 없건만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낡은 무궁화호는 제 스스로 알아서 멈춘다.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없다. 단단한 콘크리트 포장을 뚫고 솟아난, 이름 모를 풀만이 다시 떠나는 무궁화호를 향해 손을 흔든다.
용궁역은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간이역이다. 다행히 경북선 무궁화호가 아직까지 정차한다. 역사(驛舍) 내에는 표 파는 곳 대신 ‘토끼간빵’이라 불리는 빵을 파는 카페, ‘자라‘가 자리 잡고 있다. 토끼간빵은 용궁이라는 지명에 고대 설화 별주부전을 접목해 탁월한 마케팅 효과를 발휘한 사회적 기업의 건강빵이다. 예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용궁역을 둘러보며 커피와 빵을 맛보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용궁은 순대 거리로 유명해졌다. TV의 효과인지 전략적 홍보 활동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옛날의 용궁에는 순대 거리가 없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역 주변은 각종 공사로 부산하다. 용궁역 일대를 활성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인부 한 명이 귀띔한다.
승강장에서 바라본 용궁역
용궁역을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조선 시대 도성처럼 담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관공서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용궁현청(龍宮縣廳)이다. 2015년 ‘예천군 용궁면 소재지 정비사업’의 목적으로 면민들의 뜻을 모아 짓기 시작하여 201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잘 조성된 공원이 인상적이다. 학교를 마치고 세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어느새 세 명은 여섯 명으로 늘었다. 아마도 이곳은 그들이 매일 들러 자신들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아지트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 온다. 낯선 사람에게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선뜻 인사를 하니 고맙고 반갑다.
“오야! “너네들 몇 학년이야?”
“3학년요!”
아이들은 합창이라도 하듯 대답한다.
“학교 마치고 학원 안 갔어?”
“저는요, 도시에서 학원 3개 다녔는데요. 여기 와서는 안 다녀요. 여기는 학원이 피아노 학 원밖에 없어요. 무지 좋아요!”
“야! 공부방도 하나 있잖아!”
피아노 학원밖에 없다는 남자아이의 말에 여자아이가 장난스럽게 퉁을 준다.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어도,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저들처럼 밝고 환한 햇살을 받으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이곳이 바로 피터팬이 살던 네버랜드가 아닐까. 나를 반갑게 맞아준 아이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데 가지고 있는 거라곤 카페에서 산 오미자 뻥튀기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걸 먹을까 염려하며 먹겠냐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예”라고 한다.
용궁현청을 나와 사람보다 더 유명한 나무를 찾아 나선다. 나무는 나무인데 사람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은 황씨요, 이름이 목근이다. 나무에 이름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냥 지어 부르는 별칭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실제 등기상의 소유주로 황목근이라는 이름이 올라있었다. 1948년에 논 2832.9㎡의 소유자가 된 황목근, 사람과 마찬가지로 황목근 앞으로 재산세 고지서가 발부된다. 납세의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이 바로 황목근이다. 서류를 통해 황목근씨가 몇 차례에 걸쳐 토지를 추가로 구매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사들여 황목근 앞으로 등기를 해놓은 것이다.
늠름한 나무 앞에 안내문이 서 있다. 황목근, 느릅나무과의 한 품종, 나이는 500년으로 추정,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등신목,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씨 성을, 근본이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근이라 이름 붙임,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擔稅木). 이상이 황목근을 소개하는 프로필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더 의미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탁월한 작명이 아닌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황목근
바로 옆에는 황목근씨가 낳은 아들도 있다. 이름은 황만수. 팽나무로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황목근씨의 토지를 물려받을, 하나밖에 없는 자녀다. 1998년, 마을 제사를 지내는 제단 주변 석축 사이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황목근이 지팡이를 지며 걷는 노인처럼 가지마다 긴 버팀목을 덧대어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데 반해, 황만수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의 길로 막 접어들기 시작하는 듯한 청춘의 모습이다. 커가는 자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처럼, 부모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놀고 있는 자식처럼 황목근과 황만수는 그렇게 마주 보며 서 있다.
어느덧 발갛게 해가 지고 있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에는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땅을 포근히 덮어주기라도 하듯 짚더미가 소복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마스크를 벗고 가을이 주는 향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덜 마른 짚에서 나는 냄새에 몸도 마음도 평온하다. 황목근씨가 사는 마을, 하늘 아래 신선이 노니는 땅인 듯하다.
혼자서 한참을 가을향에 빠져있다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 순대국밥 먹는 것을 꾹 참았던 터다. 바로 예천 삼일분식의 따로국밥이다. 국밥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호지만 내가 알던 30여 년 전부터 삼일분식이라 불렸다. 그때도 역시 분식은 팔지 않는 분식집이었다. 국밥집의 안주인인 선지국도 일품이지만 주문 후 바로 튀겨주는 고등어와 갓구운 호박전, 오이무침과 두부조림도 안주인을 돋보이게 하는 하객들이다.
내가 꼽는 예천의 3대 먹을거리가 있다. 제일식당의 매운면, 황금분식의 가락국수와 군만두, 삼일분식의 따로국밥이다. 용궁순대와 청포정식, 육회비빔밥도 널리 알려졌지만 아쉽게도 내 삶의 추억을 담을만한 요소가 없어서 개인적으로 자주 찾는 음식은 아니다.
첫 번째로 매운면, 예천에서 만들어진, 예천만의 메뉴다.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고 예천의 중화 요릿집에서만 먹을 수 있다. 내가 다른 곳에 살면서 매운면이 먹고 싶어 중화 요릿집에서 주문했더니 ‘그게 뭐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 사는 동생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짬뽕과 야끼우동을 섞어놓은 듯 보이는데 맛은 전혀 다르다. 매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예천을 떠나는 순간, 늘 머릿속에서 맴도는 야릇한 중독성을 지녔다.
두 번째로 황금분식의 가락국수와 군만두, 지금의 분식집 우동과는 다른, 옛날에 자주 먹던 가락국수 본연의 맛이다. 국물 맛이 깊고 시원하여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먹으면 더욱 맛있다. 가락국수를 한 젓가락 넘긴 후 바삭거리는 군만두를 간장에 찍어 베어 물면 정신까지 혼미해질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힌다. 아쉽게도 가락국수는 더는 팔지 않고 냉면이 유명해졌다고 들었다. 조만간 황금분식에 들러 가락국수를 왜 팔지 않는지 물어볼 생각이다.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었는데 정말 아쉽다.
나머지 하나가 따로국밥이다. 국과 반찬 자체로도 맛있지만 나에게는 젊은 날의 사연이 깃든 곳이라 더욱 애틋한 장소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나 사이에 크고 작은 문제가 도드라지던 그때, 엄마는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지 나를 데리고 국밥집에 갔다. 국밥을 앞에 놓고 서로 말 한마디 없이 밥만 퍼먹던 그 날……. 나에게 있어 엄마는 서러움이자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원망조차 사그라진 나이가 되었고 내 마음의 화살을 받을 엄마도 떠났다. 국밥집만이 여전히 남아 내 삶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재료가 다 떨어졌어요.”
오늘도 국밥집은 장사가 잘되어 일찍 문을 닫으신단다. 젊은 날의 아쉬움을 뒤로하듯 조용히 발걸음을 돌린다. 국밥은 못 먹었지만 용궁에서의 오늘 하루, 일기장에 쓰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