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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심 Sep 30. 2022

바다열차를 타다

『정동진역』

  정부의 위드코로나 방침에 따라 코레일 관광열차가 운행을 재개했다. 바다열차는 강릉역에서 삼척해변역까지 58km의 해변길을 달린다. 정동진, 묵호, 동해, 추암을 거치는 동안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다. 언젠가는 꼭 타보리라 마음먹던 바다열차다. 늘 그렇듯 ‘언젠가는’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금’이라는 단어만이 마음속의 계획들을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은 오랫동안 벼르던 바다열차를 타고 동해의 경치를 마음껏 즐기기로 한다.


  영주에서 영동선 무궁화호를 타고 동해까지 이동한 후, 동해에서 정동진까지 바다열차를 탄다. 바다열차는 일반열차와 달리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문을 마주하고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고여있던 생활의 불순물이 말끔히 씻겨 나간다. 스피커를 통해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온다. 열차를 타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달에 가 닿을 듯 가슴이 설렌다.

  넓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자 열차는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탁 트인 창을 통해 바다를 더 많이 느끼며 가라는 뜻이다. 바다열차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는 대신 스마트폰을 눈앞에 갖다 대고 찰칵거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나 역시 그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사진도 제대로 찍을 줄 모르면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정동진역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마음속에 담는 것보다 카메라를 통해 보관하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바다가 주는 순간의 느낌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그것마저도 움켜쥐고 싶은 욕심이 아닐까.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천히 귀 기울이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실체로 모든 것을 남기려는 조급함이 아닐까. 어느새 열차가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창밖의 경치에 흠뻑 취한 탓인지 동해에서 정동진까지 너무 빨리 와버린 듯한 느낌이다. 기분이 좋아서 느껴지는 아쉬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1998년,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교육 교관이었던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정동진역의 어제와 오늘이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늘 같았다. 주제는 ‘정동진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였고, 내용은 ‘수려한 바다 풍광에도 불구하고 열차 이용객은 얼마 없었는데 고현정, 최민수 주연의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정동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정동진 해돋이 열차는 좌석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였다.


 이러한 정동진의 명성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널리 알려지기 전의 정동진역을 알지 못한다. 한 선배님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정동진역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바다가 역을 지켜주며 흐르지만 기찻길 옆으로 레일바이크가 운행되고 있어 왠지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바다와 기차역이 조화를 이룬다기보다 안전을 위한 담장과 크고 작은 구조물이 시선을 분산시킨다. 레일바이크의 바퀴 굴러가는 쇳소리가 조용한 기차역의 정적을 깬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였더라면. 안타까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동진역에서 나와 눈앞에 보이던 바다를 찾아간다. 드넓은 바다와 바다의 빛깔을 닮은 하늘이 시야를 꽉 채운다. 역에서 바라볼 때는 액자 속에 들어있는 바다처럼 느껴졌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가슴에 다 담을 수조차 없는 미지의 바다, 환상의 바다다. 모래사장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갈매기 떼가 날아든다. 비행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듯 갈매기들은 내 눈앞에서 바람을 타고 미끄러진다. 힘들게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하늘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글라이딩과 롤링을 마음껏 구사하며 유유히 날아다닌다.


  이들은 분명 높은 이상을 품은 조나단 리빙스턴은 아니다. 먹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나는 문제를 고민했던 조나단과는 분명 다르지만 무리 속에 어울려 사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예전에는 『갈매기의 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글귀를 기억했다. 얼마 전 다시 펼쳐 본 이 책에서는 조나단이 자신을 추방한 갈매기 무리에게로 돌아가 그들에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비행을 가르치는 후반부가 인상적이었다. 조나단 리빙스턴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의 집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요즘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가 부쩍 늘던 터였다. 사회 초년병부터 스스로를 직장생활 부적응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선·후배들과의 관계, 부역장이라는 자리에서의 역할, 직장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갖가지 감정들까지. 토해내야 할 앙금들이 쌓여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정동진의 바다와 조용히 마주하다

  내 눈앞에서 보란 듯이 날고 있는 새들처럼 직장생활의 테두리 속에서 부드러운 날갯짓이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먹이를 찾아 낮은 비행을 하는 갈매기처럼 타인의 생각과 행동과 말속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일을 해나갈 자질이 중요했다. 조나단 같은 깜냥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무리 속의 평범한 갈매기만큼도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노련한 뱃사공이 되어 직장이라는 바다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날이 있기나 하려는지…….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더욱 반짝인다고 했던가. 이번의 마음고생을 통해 조금 더 밝은 별빛이 될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늘을 누비는 갈매기들과 작별을 한다.



  모래사장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시간박물관’이 보인다. 폐객차를 박물관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시관에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 다양한 시계를 마주한다. 매시간 공이 굴러 내려와 종을 친다는 스트라이키네틱 클락, 예술작품에 가까운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락, 세계에서 몇 안 된다는 고가(高價)의 한정판 시계, 거기에 타이타닉호 침몰 순간에 멈춰버린 회중시계까지. 시간을 측정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시계를 지나 유리병에 담긴, 여러 종류의 손목시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나의 애호품이 생각 나서다.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기 며칠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시계였다. 아버지가 없을 때의 내 삶이 팍팍해지리라는 걸 예감이라도 하신 걸까, 아니면 시계처럼 철두철미한 생활만이 지난한 인생을 버텨낼 거라 생각하셨던 걸까, 손목시계를 받은 그날 이후, 매 순간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쪼개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습관이 무섭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지금도 집 밖을 나갈 때면 늘 손목시계를 먼저 찾는다. 근무 중에는 물론 여행이나 장보기를 할 때도 휴대전화기의 시간이 아닌 손목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들여다본다. 아버지가 사주신 시계 이후로 여러 개의 시계를 바꿔 찼지만 디자인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나 1, 2, 3, 4의 숫자가 보이는, 동그란 모양의 평범한 시계를 고집한다. 애플워치가 대중화되고 있는 시대에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고집하고 있는 내가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버지의 체취인 듯 여겨지는 내 손목시계를 쉽게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무궁화호에 몸을 맡긴다. 직장 문제로 고민했던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조직 내에서의 문제라 마음고생이 더욱 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원하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눈에 보였지만 선뜻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갉아먹는 듯한 기분으로 계속 근무를 이어나갈 수도 없었다. 정동진의 바다를 바라보며 나름의 해결책을 결정했다.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이던 생각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이 생기자 질질 끌고 있던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한 것처럼 뒤끝이 개운하다. 가방 안에서 작년에 읽은 『천년의 정원』을 다시 펼쳐 든다.   

  

  성숙이란 밝지만 눈을 자극하지 않는 빛과 같다. 또한 그것은 풍부하면서도 귀에 질리지 않는 음악이거나 더 이상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침착함, 주위에 더 이상 호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함, 법석에 동요하지 않아도 되는 미소, 극단을 떨쳐 버린 담담한 태도, 떠벌일 필요없는 넉넉함이다.    

 

천년의 정원,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 심규호 옮김, 미래 M&B, 2003, p154.    

 

  불혹을 지나 지천명까지 넘겼건만 성숙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사에 애면글면하는 습관을 왜 이리 떨쳐버리지 못하는지……. 여행에서 돌아와 정동진역사 신축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지금의 건물보다 7배나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정동진의 바다와 하늘과 갈매기처럼 신축역사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마주 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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