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첫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유심비가 아까워 일정에 맞는 지도를 인쇄해서 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지도와 이정표를 보며 도시들을 찾아다녔는데, 시베니크(Šibenik)로 가는 길을 잘못 진입해서 엉뚱한 곳에 도착했었다. 생각보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진 거리에는 아무도 없어서 시베니크(Šibenik)에 도착 못한 줄 알았기 때문에 그냥 사진 한 장 남기고 떠났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던 중 여기에서 남긴 사진 한 장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오래된 특유의 빈티지함이 나의 감성을 자극해 다음 크로아티아 여행 때는 꼭 여기에서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6년 전에 촬영했던 그 포인트를 찾기 위해 몇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며 구글 지도에서 거리뷰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장소를 체크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찾고 보니 내가 사진을 촬영한 장소는 시베니크(Šibenik)의 끝자락이었고, 내가 촬영한 장면 시베니크(Šibenik)의 올드타운 중심이었다. 마치 어려운 방정식 문제를 푼 것과 같은 쾌감을 느꼈고, 이번 여행 일정에 시베니크에 숙소까지 예약해버렸다. 그래서 크르카(Krka) 국립공원에서 꿈만 같았던 물놀이를 마치고 시베니크(Šibenik)로 향하는 길이 매우 설레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로 물놀이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시베니크(Šibenik)의 야경을 감상하며 저녁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왔다. 따로 맛집을 찾아놓지 않았기 때문에 문 앞에서 마주친 숙소 주인에게 괜찮은 맛집을 추천 부탁드렸다. 종이에 가게 이름 하나 적어주며 여기가 가격도 좋고 맛있다는 말에 저녁은 무조건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Tip :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맛집을 모르겠다면, 숙소 주인에게 괜찮은 레스토랑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좋다. 그러면, 가성비가 좋은 집들을 알려주는데 대부분 성공한다. 블로그를 보면서 찾아가면 대부분 한국인들이 같은 요리를 먹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인의 추천 맛집을 가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숙소 위치가 약간 언덕 쪽에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밑으로 내려가면 바다가 나오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다른 도시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길도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그동안 저녁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수많은 인파들 때문에 고생을 했었지만, 여기서만큼은 조용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걷다 보니 바로 바닷가가 나왔고, 지도를 보고 숙소 주인이 알려준 레스토랑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길을 걷다 보니 흰 종이에 적힌 레스토랑과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그래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바닷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메뉴 주문을 하는데 가게 사장님이 흰 종이를 보더니 누가 줬냐고 물어봤다. 숙소 이름을 대며 거기 주인이 알려줬다고 하니,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너무 반겨주는 바람에 나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고, 주문한 음식들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친절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정말 맛있는 생선 요리와 샐러드를 즐기고 쉬고 있으니 사장님이 직접 만든 디저트라며 선물이라고 하셨다. 저 먼 나라에서 온 한국인이 종이에 자기 가게 이름을 적어서 들고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기분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는 말에 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디저트를 즐겼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먹었던 디저트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났더니, 배도 불렀지만 특히 마음이 더 많이 불렀다. 여행 중에 만나는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은 언제나 기분 좋게 해준다. 그날의 피로를 말끔하게 날려주는 사장님의 선물 덕분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올드타운의 내부로 들어가서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며 야경을 즐겼다.
그냥 발길 가는 대로 특정 목적지가 없이 걷다 보니 귓가에 기타와 건반의 연주 소리와 함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했던 시베니크(Šibenik)의 올드타운에는 노랫소리가 퍼졌고 길을 걷던 사람들이 모여 잠시 음악을 감상했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즐기다 보니 이내 하품과 함께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침부터 산책하고 바닷가와 크르카(Krka) 국립공원에서 물놀이까지 했더니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카메라 가방 무게는 10kg 수준이기 때문에 매일같이 이런 무게를 감당하며 여행하다 보니 점점 육체적 피로도도 같이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의 일정은 무리라는 생각에 숙소에 일찍 들어가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전날의 무거웠던 몸이 다행히 아침이 되자 많이 풀렸다. 그리고 오늘은 시베니크(Šibenik)에서 6년 전의 추억을 찾아 다시 기록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 6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젯밤에 못 봤던 곳들을 보기 위해 시베니크(Šibenik)의 올드타운을 크게 돌면서 외곽에 있는 사진 포인트를 향해 걸어갔다.
시베니크(Šibenik) 올드타운의 아침을 즐기며 걷다가,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그리웠던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리움과 아쉬움이 다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6년 전에 남겼던 장면과 똑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기록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리워했던 장면의 촬영을 마치고 난 다음 잠시 앉아서 감상했다. 그리고, 개운한 마음에 6년 전에 못 걸었던 길을 걸으며 시베니크(Šibenik)의 올드타운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전날 밤에는 어두워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만나며 시베니크(Šibenik)의 아침을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전날에 아름다운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퍼지던 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고, 거리에는 청소하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관광객들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 밑에 있는 빵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다음, 다시 짐들을 재정비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일정을 살펴보던 중, 눈에 이끌리는 장소가 보였다. 바로 ‘St. Nicholas Fortress’였다. 요새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지도상으로 보면 섬처럼 보였다. 그래서 못 들어가는 줄 알고 삼각형 모양의 요새가 궁금해서 사진만 남기려고 잠시 들리기로 했다. 여기로 가는 길도 생각보다 아름다워 중간에 내려서 그 풍경을 잠시 담고 다시 목적지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한 다음 바닷가로 가서 보니 요새가 보였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요새가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왼쪽에 길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는 관광객들은 없고 현지인들만 찾아오는 조용한 해수욕장이기도 했다.
Tip : 시베니크(Šibenik)에서 조용하게 해수욕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로 오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사람도 적고 그늘도 많아 정말 조용하고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곳이다
시원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요새를 향해 걷다가 만난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며 요새까지 이어져있는 산책길이었는데, 지도상에 표시가 없어서 섬으로만 생각했던 요새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게 걸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이곳에 대한 호기심이 없이 그냥 지나쳤다면 난 이런 곳이 있는지 평생 몰랐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요새와 육지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을 관통하는데 잠시 숲길을 산책하며 지나면 요새로 이어주는 길이 다시 나타난다. 여기가 또 하나의 사진 포인트가 된다. 여기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도 거의 없어 여유롭게 사진 찍기 정말 좋다. 샌들이나 아쿠아슈즈를 신었다면 물속으로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다.
이곳의 아쉬운 점은 딱 하나였는데, 요새 내부로 진입하는 길을 막아놔서 더 이상 구경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새 위로 올라가서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을 만났다는 것과 나만의 비밀 여행 포인트를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다음에 크로아티아를 또 오게 된다면 이곳을 다시 방문해서 해수욕도 즐기고 싶어 시베니크(Šibenik)의 일정을 2박으로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6년 전에 시베니크(Šibenik)인 줄 모르고 남겼던 사진 한 장이 이번 여행에서 예상하지 못한 선물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돌아왔다. 이런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 덕분에 난 사진과 여행은 절대 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