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Day3) #3

트래킹#2 : 클라이네샤이덱 - 알피글랜

by MySnap

클라이네샤이덱역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알피글랜까지 트래킹 하는 코스 입구로 갔다. 여기로 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약간 의아했다. 혹시라도 누가 가면 따라갈 심산으로 기다렸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길래, 그냥 일단 가보자란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이 길을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거 북벽을 옆에 두고 나란히 걸어가는 코스인데, 아무도 오지 않으니 이 길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코스 전체를 전세 낸 기분으로 여유 있게 걸으니 이런 여유도 없었다.


사실 사람이 오지 않는 것보다 더 걱정인 것은 멀리서 몰려오는 먹구름과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1시간 반만 걸어가면 되기에, '그 사이에 설마 별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이미 1시간 반을 걸어오고 잠시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전혀 부담되거나 무리되지 않았다. 길도 쉬웠을 뿐 아니라, 이렇게 좋은 경치를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걷는 그 자체가 참 행복했다. 그린델발트에서 보이던 아이거 북벽이 웅장한 자태로 옆에 있는데, 아무리 걸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코스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없어서, 조용하고 방해받는 것이 없기에 그냥 여러 생각들을 하며, 노래를 들으며 걷기에 아주 좋은 코스였다.


퇴근길에 버스를 탔는데, 사람 없이 여유롭게 집에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진을 찍을 땐, 파란 하늘을 좋아한다. 사진을 찍어도 이쁘게 나올 뿐 아니라, 빛에 의해서 사진의 느낌이 완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트래킹을 할 때는 구름이 몰려오고 햇빛도 나오지 않았다. 사진 찍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트래킹 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상쾌하게 걸을 수 있었다.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업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쉬지도 않고 이 길을 타고 올라가는데, 옆을 지날 때 그 숨소리가 정말 거칠었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잠시 길옆에 서서 응원해주었다. 괜히 방해되어서 멈추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전거를 가끔씩 타지만 업힐 할 때 중간에 멈춰버리면 다시 올라가기 정말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트래킹을 해본 것은, 지리산 둘레길을 돌아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코스 하나만 말이다. 그때도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스위스에서 하는 트래킹은 아마 내 평생에서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스위스 여행을 한다면, 꼭 트래킹은 한 번쯤은 해보기를 추천한다.


걷다 보면, 빙하가 녹아서 만든 계곡들이 간간히 나오는데 식수를 퍼갈 수 있도록 만든 시설도 있었다. 이 또한 자연과 하나가 되도록 만든 작은 배려인 것 같았다.

걷다가 자연을 바라보다가, 또 걷다가 바라보다가 이를 반복하다가 그냥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이렇게 좋은 곳을 잠시 쉬면서 즐기기로 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좀 식히며, 체력을 다시 보충했다.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생각보다 꽤 나가기 때문에 (대략 5kg 이상) 한 번씩 근육을 풀어줘야 했다. 그냥 무식하게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어깨에 무리가 와서 가방 자체를 던져버리고 싶어 질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니 멀리서 오던 먹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비라도 내리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다시 정리하고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중간중간에 만났던 사람들이 이정표 앞에 다들 멈춰 서서 코스를 보고 있었다. 알피글랜 방향을 확인하고, 길을 다시 걸었다. 워낙 사람들이 없다 보니, 이렇게라도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내가 올바른 길로 왔구나란 안도감도 들었다. 그래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사람이 오는지 확인을 했다.



혹시나 스위스에서 트래킹을 계획 중이라면, 카메라는 꼭 챙기길 추천한다. 비싼 등산화나 좋은 장비는 전혀 필요 없다. 걷기 좋은 신발과 땀 배출 잘되는 옷이면 충분하다. 가끔 가다가 옷이 과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다.


이 산을 몸소 다 체험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면 그냥 가볍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 코스는 그냥 하염없이 아이거 북벽을 따라 걷는 것이다. 이 길을 몇십 분째 걷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그게 매력인 것 같다. 가끔씩 걷다 보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언덕을 넘어갈 때마다, 한 번씩 뒤돌아볼 때마다 항상 새로운 장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 순간이 행복해진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기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알피글랜에서 타야 할 기차였다. 저 차가 막차는 아니겠지란 생각을 지나갈 때마다 하면서 바라보았다. 저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하면 부러워하였으려나? 이렇게 좋은 곳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걷다 보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퍼붓는 소나기가 아닌, 기분 좋게 내리는 비였다. 마치 봄비 같이.


스위스 비는 맞아도 괜찮을 것 같아. 깨끗하니깐.


비를 크게 피하지 않고 작은 우산을 꺼내서 즐기면서 갔다. 카메라도 잠시 가방에 넣고 와이프와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한 발라드를 틀고 걷기 시작했는데, 스위스 여행에서 즐겼던 트래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는 지금이었다. 나와 와이프가 같은 생각을 했다.


트래킹 중 비가 온다고 낙담하지 말아요. 분위기 좋은 음악과 같이 걸으세요.



카메라도 넣고, 한 우산을 같이 쓰고 천천히 걸으며 감상에 젖었는데, 어느새 비가 그쳤다. 우산을 넣고, 다시 걸었다. 오히려 비가 계속 오기를 바랐다.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고 마냥 나쁜 것 많은 아니었다.


1시간 30분쯤 넘게 걸었을까, 저 멀리 목적지인 알피글랜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두 번째 트래킹이 끝나는 시점이다. 아쉽기도 했지만, 내려가서 시원한 맥주도 한잔 생각났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열차 시간을 보니 5분 뒤에 기차가 도착한다고 했다. 다행히 많이 기다릴 필요도 없이 딱 좋은 시간에 온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딱딱 맞을 때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다. 멀리서 천천히 내려오는 기차를 타고, 다시 목적지인 숙소가 있는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기차를 내리자마자, 아이거 북벽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다. 해기 늦게 지기 때문에 이미 저녁 시간이었지만,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자리 좋은 곳은 없어서 찾아서 올라가다가, 구석에 괜찮은 곳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를 주문했다.


트래킹 후에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다. 천천히 맥주를 즐기고 아이거 북벽을 안주삼아, 여유를 즐겼다. 아침부터 융프라우, 트래킹 코스 2개를 완주하고 왔더니 맥주 몇 모금에 금세 나른해졌다. 유심이 없는 여행객이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잠시나마 문명과 접속을 하고, 숙소에서 다시 짐을 풀고 씻고 나오기로 했다.



먹구름이 몰려드면서 간간히 보이는 파란 하늘과, 계속 바뀌는 날씨를 보며 씻고 나왔다. 잠시 나른해져서, 누웠는데 금세 잠들어버렸다. 잠들기 전에 본 마지막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고 난 스위스에서 잊지 못할 두 번째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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