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조금 어이없게 찾아온다. 요즘 좋아. 잘 지내. 하다 하다 ‘행복해’라는 말까지 한 날에. 행복이란 단어를 꺼낸 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했던 때, 뜬금없이 나 왜 이렇게 좋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불안과 밤새 싸우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얘가 혹은 모두가 나를 떠날 거란 불안. 나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걱정은 곧 확신으로 바뀌고, 심장박동을 덧없이 띄운다. 심장이 쿵쿵. 요동치는 속도가 귀에 생경하게 들린다. 곧이어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실 자체가 불쾌해진다.
듣기 싫고 느끼기 싫어. 심장을 부여잡을 수도 없는데 숨이 차오른다. 헐떡거리고 있으니 불과 몇 시간 전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던 내가 떠오른다. 미친 게 분명하지. 제정신이 아니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내 말과 생각에 또 상처를 받는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할까. 무엇에 가슴이 철렁거릴까. 더듬거리는 사고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혼자 남을 것이고 다 나를 지겨워할 것이라고. 이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데 도저히 혼자 살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절대 외로이 살 수 없으면서 남을 두려워하는 나. 누구보다 타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면서 무서워하는 나.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 같아서 항불안제를 먹었다. 먹고 좀 진정이 되기를 기다린다. 낮 근무였으면 이미 일어났을 새벽이었다. 조금씩 진정되는 심장과 몰려오는 졸음을 반가워하며 까무룩 잠에 들었다.
불현듯 잠에서 깼을 땐 정오도 안 된 제법 아침이었다. 그냥 계속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어. 수면제를 지금 먹기에는 이따 먹을 약이 없을 테니 수면유도제를 찾아 먹었다. 한 알로는 택도 안 될 것을 알기에 두 알을 먹고 반신반의한다. 두 알로는 잠이 오려나. 한 시간 정도 멀뚱멀뚱 있다가 또 잠에 들었다.
효과는 꽤 괜찮았다. 중간에 한 번 깼지만 늦은 오후에 일어났다. 몽롱했다. 진정된 몸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나는 진정 상태.
약 기운에 취해 멍 때리고 있으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네. 악착같이 견디고 있구나.
밑도 없이 무너질지언정 끝도 없이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안을 다스리고자 하고 나를 쉬게 했다. 그거면 되지 않나. 내가 신도 아니고 감정을 버튼 하나로 다스릴 수도 없는 마당에, 뭐든 동원하고자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닌가. 정신병이라 한들 약으로 고치려 하지 않았나.
어떻게든 좋은 말로 포장하고 싶고 끝을 내고 싶은데, 그 이상 다독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안 죽었네. 대단. 또다시 불안이 찾아온다 해도 똑같이 벌벌 떨 것이고 똑같이 꿈으로 회피하려 할 것이다. 온종일 자고 일어나 그래도 잘했다며 조금이나마 위로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인드를 바꿔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들 한다. 난 못 하겠다.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아직은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말하고 싶었다. 우리끼리 잘 견뎌 보자고. 안 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서로 너 잘했고 너 대단하다고 칭찬이라도 하자고. 조금은 민망한 기억을 더듬고 다듬은 단 한 가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