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파기

복귀를 앞두고

불안 잠재우기

by 혜안

슬슬 직장 복귀가 다가온다. 몸은 집인데 마음은 벌써 병원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 같다. 일할 때 내가, 그리고 내 감정이 어땠는지 스멀스멀 떠오른다. 요새 별거 아닌 일에도 크게 불안해하고 잠 못 이루는 건 이 때문일지도. 직장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또다시 수많은 죽음에 직면하고 셀 수 없는 응급에 숨 막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푹푹 나온다.


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다. 간호사라는 얘기는 몇 번 했지만 중환자실에서 일한다는 얘기는 처음 하는 듯하다. 사람을 간호하고 돌보는 일을 선택했는데, 애석하게도 살아있는 이만큼 죽어가는 이와 죽는 이를 많이 본다. 많이 무뎌졌다. 더 이상 환자 때문에 혹은 덕분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불안하고 화나고 무서운 감정은 생생하게도 살아있어서 두렵다. 언제까지고 살아 숨 쉴 건지, 제발 잠시라도 멈춰 줄 수는 없는 걸까.


지금보다 연차가 덜 찼을 때는 응급일 때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뭘 해야 할지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이 환자에게 당장 가슴압박을 시행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뭐 해요!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가슴압박을 했었다. 내 환자였는데. 2분 간격으로 리듬 분석해 달라, 3분 간격으로 에피네프린을 달라고 소리치며 움직이지 않는 저 심장과 다르게 내 심장은 너무나 뛰었다.


길거리에 쓰러져 맥박이 없는 여성에게 가슴압박을 했을 땐 내 목소리도 심장도 고요했다. 다 끝나고 나서야 조금 상기됐을 뿐, 그 순간에는 지독하게도 차분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응급의 압박은 하루하루 무게를 덜었다. 물론 놀라고 두려운 건 마찬가지인데, 첫 CPR 만큼 내 심장은 요동치지 않게 됐다.


사람이 더 무서워졌다. 죽어가는 이보다, 시끄럽게 알람을 울려대는 응급보다, 사람이 무섭다. 내가 바쁜 게 무섭다. 내가 바빠서, 환자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내 할 일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인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길 때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게 어떻게 죽음보다 무서워질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웃긴 건 대개 간호사라면 이럴 것 같다는 점이다.


인계 직전 내 심박수는 가뿐히 100을 넘는다. 이 환자를 처음 보는 선생님이 뒤로 오는 경우 내가 심장계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출근 전, 스마트워치에 찍힌 내 심박수가 200이 넘은 적 있다. 흉통과 함께 찾아온 호흡곤란 때문에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러고도 출근했지만.


사람을 살리고자 한 일인데 왜 나는 죽어가는 것 같은지. 출근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 불안에 시달리며 사는 게 맞는 걸까. 남들도 이러고 사는데 왜 나만 약한 소리를 하는 걸까. 사람인에 들어가 간호사 공고를 뒤적거리다가 곧 뒤로 가곤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좋은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의식은 있으나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환자와 필담을 나눴다. 나더러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물었다. ‘제일 열심히 일하시는 듯.’이라고 덧붙인 말에 환자 앞에서 소리 내 웃은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또 트레이닝을 받던 시절, 그렇게 혼나며 성장하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여 줬던 환자,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곤 애써 웃던 환자, 덕분에 응급상황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받았던 칭찬, 환자 파악을 열심히 했다며 감탄하시던 선생님들…


돌이켜보면 울고 힘들었던 것보다 좋았던 게 먼저 떠오른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진작 병원 밖에서 무엇이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무서우면서 사람이 준 좋은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무섭고 두렵겠지. 심장이 쿵쾅거리겠지. 그럼에도 사람이 좋은 기억을 주고 사람 덕분에 웃겠지. 내 뒷선생님이 칭찬을 하시기도 하겠지. 복귀를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듯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거다. 좋은 것만.


그냥, 나처럼 각종 기억에 시달리며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해 또 작은 내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약보다 효과적인 불안 다스리기가 있기도 하니까.


어차피 복귀하면 병원 얘기를 줄곧 쓸 것 같은데, 이를 참지 못하고 벌써 써 버린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 아주 약간의, 정말 약간의 설렘도 같이 있다는 것.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으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 덕분에 웃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일하러 가는데 이건 좀 너무 과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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