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파기

각설이

by 혜안

죽지도 않고 또 온 각설이.

한참 제목을 고민하다가 ‘죽지도 않고 돌아온 각설이’라는 문장이 자꾸만 생각났다. 내 얘기 같았다. 문득 각설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져 검색해 봤다. 장타령꾼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렇구나.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즉각즉각 떠오르는 대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또는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붙잡아 쓰려한다.


죽으려고 했다.

잔뜩 상처를 냈고 내 몸무게에 따라 적합한 실혈양을 계산했다. 그만큼의 실혈을 내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몸 어느 곳에 혈관이 있고 얼마나 찔러야 동맥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중환자실 간호사니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섭기도 했다. 얼마든지 죽을 수 있겠구나. 그토록 많이 봐온 죽음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결과는 보이는 바와 같이 죽지 못했다.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너무 필요했다. 제발 나 좀 살려줘. 제발 나 좀 안아줘. 제발 나를 필요로 해 줘. 나라는 사람을 알아봐줘.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나는 살 가치가 없어. 그러니까 죽어야 해. 무한으로 돌고 도는 굴레.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옥죄는 굴레. 자발로 끊을 수 있는 건지 미칠 것만 같은 굴레. 나의 가치를 타인을 통해 확인하려 하고 내 무가치를 느끼는 날에는 충동이 심해졌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죽어갔다. 감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하루하루였다.


어느덧 여름은 찾아오고 날씨는 무더워져만 가는데, 반소매를 입지 못한다. 팔을 아무에게도 보이기 싫다. 너무 더운 날에는 거즈를 덧대고 나간다. 그럼에도 어찌 살았느냐 혹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럴 만큼 죽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고, 그만큼의 용기가 없는 겁쟁이여서일지도 모르고.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다. 1577-0199에 전화를 했다. 하고, 하고, 또 했다. 그 어느 한 번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았다. 109번에 전화를 했다. 마찬가지였다. 죽으려면 대기표를 끊어야 하나 보다. 모든 게 허탈해졌다. 거대한 덩어리조차 날 버렸구나. 내가 내민 손길을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구나. 지옥행에도 티켓팅이 필요하다. 허무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냥. 그냥… 전신으로 퍼져나간 우울이 마침내 우심방을 통해 들어오고 심장에 고이고이 고인 순간, 그대로 사르르 스며들었다. 하늘로, 땅으로도 꺼지지 않고 온전히 오로지 내 몸에 그대로. 매일매일 우울과 싸운다. 울고 또 운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너무 무너져서 차마 글을 쓰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이런 내가 무슨 공감이 되고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하고.


아직도 모르겠다. 안 될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냥. 그냥… 나를 위해서도 쓴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쓴다. 이로 인해 타인의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고. 팔이 탁자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린다.


세상에는 따끔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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