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드릴까요, 올려 드릴까요

주제 에세이 #11. 커피

by 어슬

대학교 때 우리 학교 앞에는 아주 오래된 카페가 있었다. 역전앞 다방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카페에서는 사이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알코올램프로 물을 가열하면 뜨거운 물이 위로 올라가 커피를 우려내고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그 커피를 마실 땐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좋아서 가끔 그 카페를 찾았다.


취업을 하고는 S 커피전문점의 단골이 되었다. 메뉴는 늘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컵 사이즈는 그날의 피로도에 따라 결정되었다. 제일 큰 벤티 사이즈를 찾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때는 커피가 생존이었다. 속이 쓰릴만큼 커피를 달고 살아야만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서 밤 열두 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그 후로 직장을 여러 번 옮겼지만 어딜 가든 캡슐커피는 사무실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쉬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일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손쉽게 내려 마실 수 있는 캡슐커피에 굴하지 않겠다며 핸드드립 세트를 구입했다. 탕비실 구석에서 커피를 내리는 나를 동료들은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커피 향이 좋다며 찾아온 동료들과 커피를 나눠 마실 때는 내리는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캡슐커피를 마시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편리성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여과지를 통과해 떨어지는 핸드드립 커피의 맛을 즐기기엔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구멍 뚫린 알루미늄 캡슐을 통과해 내려온 커피를 꽤 오랫동안 마셨다. 이러다 알루미늄 중독이 되는 건 아닐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즈음 모카포트를 장만했다. 모카포트는 커피 추출 방식이 사이폰과 비슷하다. 아래에 물을 넣고 그 위에 커피를 넣고 끓이면, 물이 끓어 올라가서 분쇄된 원두를 지나면서 커피가 추출된다. 그렇지만 사이폰 커피가 핸드드립처럼 커피 지나간 물 맛이라면, 모카포트는 압력식이라 커피 맛이 에스프레소와 더 가깝다.


볶은 콩물을 우려내는 것은 똑같은데 그 우려내는 방식에 참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 커피를 내린다고 말하지만 올려야 하는 커피도 있다. 사약처럼 쓰게 추출되는 커피가 있는가 하면, 보리차처럼 밍밍하게 완성되는 커피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올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내리는 걸 선호할지도 모른다. 내가 올리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올리는 것만이 옳은 방법인 건 아니다. 내리는 방식이 더 많이 사용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도 있다.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도 선호와 취향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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