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삶

이 나이가 되어도 사는 게 참 어렵습니다

by 어슬

일을 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벌써 직장을 여러 번 옮겼다. 그 사이에 직종도 한 번 바꿨다. 사람들은 내 이력서를 보고는 '경력이 화려하다'고 하고, '왜 이런 결정들을 했냐'고 묻는다. 나는 언제나 그때그때 타당한 이유를 잘 만들어 붙였다.


그렇지만 항상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스스로에게 '그저 힘든 상황을 피해 도망친 것은 아니냐'고 묻는 목소리가 있다. 모두들 으레 그렇겠거니 하고 넘기는 문제들을 잘 넘어가지 못하고, 마음속에 묻어놓고, 그게 결국은 탈이 되어,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은 아니냐고.


성격이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기억력이 좋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니 사는 게 항상 좀 어렵다. 쉽게, 많이 느끼고, 오래 기억한다. 이런 특성들이 곁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빈번하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좀처럼 무뎌지지 못하고, 잊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정말로 피곤한 일이다.


구태여 퇴근 이후의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힘든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시작했지만, 어쩌면 낮 동안 너덜너덜해진 자존감을 기우러 도망쳐오는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나의 특성은 글을 쓰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어울리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기로 한 것이 무엇 때문이든지 간에 내가 지금껏 도망치는 삶을 살아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수월해질 만도 한데, 어째 갈수록 어려워진다. 감사하게도, 이런 내 인생에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어온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몸을 기대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힘든 삶을 그나마 버틴다.


언젠가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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