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에세이 #18. 자동차
최근에 차를 샀다. 여태 차 없이 지낸 이유는 간단했다. 내 차를 소유하고, 유지하고, 운전하는 모든 행위가 귀찮았다. 그만큼 게으르게 살았다.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다. 아침저녁 내가 운전할 필요 없이 편하게 출퇴근을 하는 대가라면 차량 유지비와 기사 월급 대신 택시비 정도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택시로 갈 수 없는 거리는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탔다. 불편한 줄 몰랐다.
그런데 차를 사고 보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일단 남의 차에 비해서 너무나 쾌적하다. 좌석부터 미러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져 있는 데다가 이전에 누가 앉았을지, 누가 머리를 대었을지 상상할 필요도 없이 매번 나만 앉는 것이 분명한 시트에 앉으면 차 안에서 나는 냄새조차 익숙하다. 담배냄새를 머리가 아프게 맡으며 이동할 필요도, 아침 댓바람부터 본의 아니게 친목 도모를 할 필요도 없다. 누구와 어딜 가든 내 차로 이동하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언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집 근처에 커피를 사러 나가는 것부터 햄버거를 픽업해오거나 포장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는 일들도 귀찮지 않다.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일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한밤중에도 한 바퀴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올 수 있고, 주말에 어딜 잠시 다녀오고 싶으면 시동만 걸면 된다. 이동의 자유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지인들이 자기 차를 가지는 것의 의미를 그렇게나 떠들어댈 때에도 한 귀로 듣고 흘렸었다. 내 차를 가져보고 나서야 아 이게 그들이 이야기하던 즐거움이구나 싶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보기 전에는 깨닫기 어려운 존재다.
물론, 차를 가진다는 것은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매년 세금도 내야 하고 보험료도 내야 한다. 정비하고 세차하고 연료도 보충해줘야 한다. 차뿐만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소유하는 만큼, 유지하고 보수할 의무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무래도 소유에서 오는 즐거움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오랫동안 고수했던 소신을 버리고 유지할 수 있는 동안은 차를 소유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얻어낸 이동의 자유를 가급적 자주 누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