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참 하루가 짧더라

주제 에세이 #23. 하루

by 어슬

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어설프게 요기를 하고 다시 누워서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좀 확인하고 있자면 곧 점심이다. 그래도 휴일인데 좀 근사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씻고 나선다.


주말의 교통체증에 숨이 막힐 때쯤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라도 한잔 마실라 치면 벌써 오후가 반은 지나갔다. 장도 봐야 하고 세차도 해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큰일이다. 서둘러서 일주일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다.


마트에서 사 온 고기를 꺼내서 굽고 와인도 한 병 딴다. 버섯이니 아스파라거스니 몇 가지 채소를 잘라 같이 구워서 접시에 담아내면 제법 그럴싸 한 저녁이 완성된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정리하고 영상으로 남의 인생을 훔쳐보다 잠이 든다.


노래 가사 마냥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지 모를 일이다. 겨우 세 끼 밥 챙겨 먹고 달리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하루가 어디로 다 가고 없는지 정말 이상하다. 너무 이상해서 오늘 하루 뭐 했나 일일이 따져보면 분명히 내가 그 시간들을 다 쓴 건 맞다. 그런데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싶게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반면, 어떤 날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전날 못 마친 보고서를 작성해서 업무시간 시작하자마자 서둘러 보고하고 아침 회의 몇 건을 하고 나서 커피 한 잔 할 때쯤엔 이미 심신이 지쳐 마치 퇴근시간 같다. 그런데 시계를 보면 아직 점심시간도 한참 멀었다. 오후 내내 화장실도 못 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틈틈이 전화를 받고 메일을 쳐내다 시계를 봐도 퇴근시간은 오지 않는다.


대체로 내가 기다렸던 날들은 서둘러 지나가버린다. 모처럼 여유가 있는 날, 평소에 그리웠던 사람을 만난 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멀리 떠난 날, 이런 날들은 야속하게 기다려주지도 않고 하루가 가버린다. 너무 힘들고 짜증 나고 지치고 아픈 날들은 제발 좀 빨리 지나가라고 빌어도 좀체 끝나지 않는다.


세상이 이치에 맞으려면 반대여야 하지 않나 싶다. 기다려온 날들은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러주고, 피하고 싶은 날들은 빠르게 지나쳐 가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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