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에세이 #25. 산책
성인이 되기 전에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엄한 부모님 덕분에 만든 좋은 습관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학업까지 소홀히 하면서 운동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하루 새에 서울을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이나 왕복하는 일도 마다 않을 만큼 활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뚜벅이였던 내게 매일 한 시간 이상 걷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걷는 걸 유독 좋아하기도 했다. 번화가 골목들과 시장통, 공원이나 광장, 집 앞 동네길이라도 좋았다. 마음 맞는 사람과 이 얘기 저 얘기 떠들면서 걷다 보면 늘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걷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가게들과, 언제 마주쳐도 반가운 털 달린 친구들, 그 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내 곁을 스쳐 지나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취업을 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니 사실상 하루 종일 앉아만 있게 되면서 급격히 체중이 불어났다. 다시 열심히 운동도 해보고 식이조절도 해보고 술도 끊어보고 별의별 노력을 다 해봤던 것 같지만, 지금은 그냥 변한 나의 몸을 받아들이고 사이좋게 지낸다.
그래도 여전히 걷는 걸 좋아한다. 감염병이 세상을 뒤흔들면서 딱히 할 일이 없어진 요즘은 집 앞의 개천을 따라 난 길을 자주 걷는다. 앙상했던 겨울나무에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녹음이 우거진 사이로 매미 울음소리가 귀청 떨어질 듯 시끄럽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다시 눈 쌓인 길을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걷는 것,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던 낮은 아침 해가 점점 머리 위를 뜨겁게 비추는 걸 느끼는 아침 산책도 좋고, 반대로 밝은 대낮에 시작했는데 돌아올 땐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운이 좋으면 멋진 노을을 볼 수도 있는 오후 산책도 좋다. 흐린 날은 시원해서 좋고, 맑은 날은 쨍해서 좋다.
요즘 천변을 걷다 보면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을 많이 마주친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탄 사람, 킥보드를 탄 사람,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그렇지만 역시 나는 걷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걷는 건 몸보다도 마음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