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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랑 Nov 14. 2024

성희롱.




성희롱.

  

‘미친개’ 불리는 김현수 선생의 만행은 끝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교실 뒤편에 책상을 하나 놓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병원에서나 볼 법한 파란 천과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만든 칸막이를 가져와 설치했다.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당황스럽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김 선생의 냉랭한 눈빛과 거친 손짓에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김 선생은 교실에 조용히 서 있는 여자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칸막이 뒤로 들어가게 했다. 평소에도 그의 폭력성과 위협적인 행동에 익숙해 있던 아이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불러들여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칸막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시선은 음울하고 불쾌하게 변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다른 아이들도 서서히 김 선생의 의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아이들에게 다가가 부적절한 말을 건네며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아이들은 차마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할 공포를 속으로 삼켜야 했다.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조차 김 선생의 만행은 서슴없이 자행되었고, 아이들은 매일 아침 등교하는 것이 공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는 숨 막히는 족쇄처럼 아이들을 옥죄어 갔다. 친구들끼리 수군거리며 두려움 속에 서로를 위로했지만, 누구도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김현수 선생의 만행은 점점 깊어졌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강호국민학교 교실 뒤편, 파란 천과 알루미늄 프레임의 칸막이 안은 아이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들이나 나래 같 부잣집 자식들은 그곳에 들어 일이 없었지만,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여자아이들에게는 그곳이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불려  아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칸막이 뒤로 들어가야 했고, 괴로움의 시간이 지난 뒤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자리에 앉아야 했다. 다른 친구들이 재잘거리며 시간보내는 동안, 지옥에 불려 간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두려움과 불편함을 꾹꾹 누르며 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교실이라는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조차 자신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상처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무거운 비밀이 되어, 그들을 더 고립시키고 있었다. 칸막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리 없는 친구들도, 묘하게 조용해진 그들에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것이 두려워졌고,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교실 뒤편 칸막이 너머에서 여자아이들의 낮은 신음소리가 간혹 흘러나오곤 했다. 부반장 철수는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해 교실에 남아 있었지만, 그 소리는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무언가가 되어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지만, 아직 어린 철수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철수는 두려움과 혼란을 느꼈다. 그는 책상 위의 답안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지만, 귓가에 스며드는 낮은 신음 소리는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녔다. 눈앞의 글자들이 희미해지고, 빨리 교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철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심지어 모든 것을 상의하던 반장에게 조차 이 얘기만은 하기가 힘들었다.


교실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어두운 공기가 자신에게도 닿는 것 같았다. 철수의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점점 깊어졌고,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며 자리 잡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성인이 된 강호국민학교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TV 화면 속에 낯익은 얼굴이 등장하자 모두의 손이 멈췄다. ‘미친개’ 김현수 선생이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교사상을 수상하고 영웅처럼 무대에 서 있었고, 방송에서는 그의 ‘헌신적인 교육철학’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길수의 치킨집에 하나둘 모여든 친구들은 말없이 술잔을 채웠다. 병준, 철수,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공유한 친구들이 다시 모인 자리에서, 술잔을 비울 때마다 그들의 가슴속엔 쓴웃음과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저 사람이… 자랑스러운 교사상이라니…"

병준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이, 그리고 칸막이 뒤에서 느꼈던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우린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지?” 철수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다른 친구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그들은 그날의 무력함과 세상에 대한 불신을 입속에서 되새겼다. 마음 깊은 곳에 억눌린 채 남아 있던 감정들이 하나씩 피어오르며, 모두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묵묵히 술잔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길수의 치킨집에서는 웃음소리 하나 없이 쓸쓸한 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과 그날의 기억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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