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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Nov 23. 2023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작은 식당

설렘으로 기록되는 운영일지

+91

주 4일 근무와 주 52시간 근무시간 보장, 자영업자가 월급을 받는 직장인보다 2~3배 이상 벌기 위해선 꿈도 못 꿀 근무조건이다. 자영업자, 사장님으로 살아본 91일은 매일 수면부족과 체력의 고갈, 감정노동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많은 이윤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버팀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성실하다는 단어를 체험 삶의 현장으로 배우고 있다고 보면 맞다.

어떤 날은 하루를 바쁘게 보냈음에 감사했다.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만날 때, 셀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고객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주인장인 나도 셀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떠올린다.

고객의 생각은 정확히 짐작할 수 없지만 주인장 입장에서는 매출이 오르는 것에 대한 설렘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순간 스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들의 동요에 흔들리지 않으며 늘 하던 대로 머릿속을 정리하며 몸은 눈보다 빠르게 준비한다.


작은 식당을 준비하며 운영 목표가 몇 가지 있었지만 그중 몇 가지는 지킬 수 없는 목표가 되었다.

지켜지지 않은 목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고객과 술을 마시지 않는다.

2.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남겨둔다.

3. 가족과 같이 일하지 않는다.

.

.

.

고객과 술을 마시지 않는 것, 그 대상이 누구인가 어떤 상황인가가 중요했지만 고객과 지인의 경계가 애매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때는 전혀 모르는 관계였지만 서빙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 오래전 알았지만 잊고 지냈던 지인인 경우도 많았다.

동네가 작아서 모든 고리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운영 목표가 지켜질 수 없는 조건 중 하나였다.

그래 하나는 그렇다고 하지만 책 읽고 글을 쓰는 것, 지키기 어려웠던 것은 체력과 예측할 수 없는 장사의 일정이었다. 예약 손님만 받는 곳도 아니며 고객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재료 준비와 장사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든 과정들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사장님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내게,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말 그대로 사치였다. 장사가 잘되면 숨 쉬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모든 것을 장사에 쏟아야 했다.

또한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바쁘거나 아파서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초보 사장님인 나의 조리능력은 편차가 심해졌고 그럴 때면 엄마와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결국 모든 것이 서툴렀고 울 수 있는 날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다가 즐기기로 마음먹고 거절할 수 없는 손님들의 배려에는 응하기로 했다.

"안 바쁘면 와서 한 잔 하자~"

"저 소주를 못 마셔요."

"그럼 너 먹고 싶은 거 가지고 와~"

그럴 때마다 울고 싶었던 속마음과 술 한잔에 날려버리고 싶었던 소소한 속상함들을 지인들의 배려로 풀어냈다. 작은 가게이고 고객과의 관계가 가깝다 보니 멀리할 수 없는 연결고리들, 지연과 학연 또는 일부러 찾아오는 고마운 분들. 그들은 내가 술을 잘 못 마시는다는 착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저 소주만 못 마실 뿐인데...... 그들의 오해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소주를 못 마시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대 초반 술자리를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다. 사람도 좋아했고 술도 맛있었다. 주량이 무엇인지 취중실수는 다 용서된다고 믿으며 놀던 시절, 소주의 도수를 점점 내려갔고 소주의 도수가 내려갈수록 순해진다는 사람의 말과 다르게 순해진 소주는 많이 먹게 되고 자꾸 체하게 되었다.

어쩌면 체할 정도로 급하게 많이 마신 술이 문제였을까.


소주만 생각하면, 빈 소주병만 봐도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고 결정적인 한방은 회사 생활 중 회식에서의 과한 음주문화였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안 죽을 만큼 먹었던 소주병들은 열손가락을 넘겼는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는 정말 질려버리게 되었다.


20대 소주의 추억은 질리고 질려서 완전 너덜너덜해진 채로 마음에서 떠나버렸다.

30대가 넘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위해 선택했던 청하는 참으로 편안했다. 다른 이들이 반갑지 않은 추억은 나와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청하는 불편했던 소주에 대한 기억을 묻어주는 좋은 술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술은 멀리하게 되었지만 새로이 사귄 친구가 알려준 새로운 청하(별빛청하)는 가볍고 맛있었고 좋은 사람과 마실 때는 더욱 포근했다. 

도수가 낮아서 부드러운 청하는 청주의 한 종류이며 은은한 향과 가볍게 즐기기 좋으며 차가울수록 그 매력이 더해졌다. 그랬던 청하가 화이트와인과 탄산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느낌으로 진짜 별빛을 넣은 것 같은, 가볍게 마시기엔 너무도 고급스러워져 다시 만났다.

너무 반가웠고 지인과 함께 할 즐거운 시간을 위해 이윤과 상관없는 사심으로 재고를 채웠다.

장사를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어 많이 팔리는 술이 어떤 종류인지도 어떤 술로 냉장고를 채워야 할지도 모른 채 기대감으로 냉장고 한편을 채웠다. 지나고 보니 바보 같았던 판단 같지만, 삶은 늘 그랬듯 예측할 수 없었고 지인과 즐거운 시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던 지인은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의 경계가 발견되었고 당분간은 술과 스트레스는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별빛청하 마시는 영상을 편집하며, 장소는 술보밥상입니다.


처음부터 팔 수 있는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판단이 시간이 지날수록 재고라는 부담감으로 작용되었다.

공자가 말하길 마흔은 불혹: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했고 현실은 많이 달랐다. 마음은 단단해질지언정 몸은 마음과 다른 관리가 필요한 때다. 

마흔이 넘어가서 아프지 않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


냉장고 한편, 친구의 건강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마음과 재고에 대한 어리석은 걱정.

그렇게 소주를 못 마시는 나는 혼자이게 되는 시간에 별빛청하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의 창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가까운 지인들의 배려로 별빛청하를 한 병씩 없애기 시작했다.


지금은 뒤늦게 별빛청하의 매력에 빠진 지인들이 생겨났다.

덕분에 악성재고가 될 뻔했던 별빛청하는 인기품목이 되었다. 늘 가게를 찾아주는 고객이자 지인들에게 감사함과 배려를 선물 받는다.

많이도 모자라고 부족한 지구별 여행자이자 초보 사장인 내게 조언과 가르침을 아낌없이 알려주는 매일의 고객들에게 아직도 보답할 능력이 없는데...... 모래 위에 돌탑을 쌓는 것처럼 위태롭지만 그래도 성실을 쌓아가면 모래도 진흙처럼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질 거라 믿어본다.



20대는 소주에 빠져있었다면 30대는 청하에 절어있었답니다. 

40대가 되어서는 더욱 순하고 부드러운 별빛청하와 와인에 빠져 버렸네요.

물론 늘 내돈내산은 아니지만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매일 애주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는 애주가와 술고래의 피가 늘 흘러넘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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