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김밥 맛집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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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에는 라면이 국롤이라는데 갑자기 술안주로 김밥이라니.
늦은 밤에도 밥과 함께 술 한잔이 가능한 곳이길 바라며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지키는 것이 밥통에 밥을 채워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요즘처럼 1차 밥손님이 방문하지 않거나 늦은 저녁밥손님이 없을 땐 밥솥에 밥이 넉넉하다.
예전부터 그랬다.
밥통이 밥이 많을 땐 밥을 쉽게 잘 소비하는 방법은 김밥이었다.
김밥은 이상하게도 질리지 않는다.
김밥 싸는 건 참 쉽고 재미난 일이다.
물론 김밥을 전문가(?)처럼 능숙하니 잘 만든다는 것은 아니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후다닥 말아서 완성한다는 것뿐이다.
언젠가부터 만들게 된 김밥에는 밥이 좀 많이 들어간다.
넉넉한 한 공기 반이 들어가고 김밥재료는 그저 냉장고와 야채실에 있는 대로가 된다.
야채가 비싼 지금은 햄과 계란보다 고급재료가 되어버렸지만 햄 또는 계란만 넣은 김밥을 만들기도 하고 야채만 한가득 들어간 김밥을 만들기도 한다.
하루가 지나면 팔 수 없는 밥솥의 밥들로 볶음밥도 해보고 밥전도 만들어봤지만 인기메뉴는 역시 김밥이었다.
술보밥상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서비스 안주가 나갈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재미가 방문객을 즐겁게 한다.
그들은 이런 걸 주면 어떻게 하냐면서 조언하지만 버려지는 것보단 나은 활용도이고 아껴서 아무에게도 관심 못하는 음식재료라면 너무도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받지 못한 식재료들은 유독 상한 모양새마저 더욱 초라하고 곰팡이 모양마저 슬퍼 보였다.
밥손님이 많지 않다는 것은 매출이 적다는 의미보다는 방문객의 수와, 방문하는 팀이 적다는 것이다.
준비된 식재료보다 소비되는 것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이고 버려질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버랄바엔 나누자.
초저녁부터 김밥을 열심히 만들었다.
10줄 정도 만들어서 초저녁 고기손님들에게 식전 서비스로 내어드렸다.
맛있다고 더 달라고 하신다.
고기 구어드릴 손님들에게 김밥이라니 이건 매출 말아먹는 의미도 아니고 그래도 늘 남는 장사일 수는 없으니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맛있게 즐겁게 먹자.
한 테이블에 김밥 2줄을 썰어드렸고 1줄은 저녁밥이 애매한 옆집 사장님께 드렸다.
남은 김밥은 또 다른 손님들에게 주었다.
맛있는 중식당에 다녀오셨다는데 탄수화물이 부족하셨는지 두 분이서 김밥 2줄 다 드시고 또 달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남은 김밥은 계산서에 꼭 올리라고 한다.
팔 생각이 없었는데 김밥을 팔았다.
간판이 켜져 있는 것은 저녁 6시부터 늦은 밤 10시 전후지만 준비와 정리를 포함하면 훨씬 더 오래 가게에 머무른다. 물론 간판불이 꺼져있어도 장사를 하고 있고 사람들이 방문하며 음식을 주문받고 판매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간판불이 켜진 시간만 장사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간판불이 꺼진 시간에는 혼자 감당하지 못하는 업무량이라 커튼을 닫거나 간판불을 끄고 장사하기도 한다.
오다가다 들르는 주변인들, 단골손님을 포함한 그녀들은 그런 사정을 너무도 잘 알아서 가게 주변에 어스름한 빛이 아른거리면 커튼을 들추고 전화를 걸어와서 "많이 바빠? 도와줄까?"를 물어온다.
이틀연속 김밥을 말아서 그녀들에게 대접했다.
단골손님들이다.
술을 많이 마시고 매상을 많이 올려서 단골손님이 아니다.
오며 가며 안부를 묻고 도와주려고 먼저 다가오고 남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어 먹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지만 여자의 동지 역시 여자다.
선의의 경쟁자이며 조력자이다.
이웃집 사장님이지만 한 잔 하러 올 수 있는 고객이 되기도 하며 신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같은 메뉴지만 다른 음식을 팔 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혼자 방문해서 소주 한두 잔 먹고 가는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다 보니 친해졌다.
이젠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들르기도 한단다.
참새방앗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비스로 내어준 비스킷이 맛있다며 인터넷주문을 대신해 주고 주문한 비스킷을 받으러 왔다가 한 잔 하다 보니 근처에 살며 아는 그녀들이 모여든다.
모르는 관계 같았지만 모이고 보니 다 아는 관계들이다.
"오늘은 기분도 좋고 언니들도 있으니 켈리 한 병 먹자!"
따끈한 김밥과 쟁여놓고 먹으려 한 비스킷, 한 봉지에 8개 만원 하는 귤을 술안주 삼아 누구는 소주 한 잔 하고 누구는 맥주 누구는 물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시간을 가졌다.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데 우리는 그저 재미난 친구가 되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김밥과 함께 스며들었다.
모이고 보니 각자 남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남편이지만 부인에게는 유독 가혹하고 나쁜 남자인 남편들, 자상할 때보다는 제멋대로가 많은 남의 편들. 비공식 안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분명히 비가 오는 날인데 김밥 덕분인지 봄날같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김밥이 술안주가 되네. 맛있다~"
김밥에 맥주를 마시게 먹던 언니는 아쉬운 듯,
"김밥 그냥 주지 말고 팔아~ 진짜 맛있다."
내가 김밥이 진짜 맛있는 걸까? 아님 바로 손질한 재료에 따끈한 밥에 적당한 간을 한 김밥이라 맛있는 걸까?
나의 김밥을 자주 먹는 언니는 자꾸만 팔아보라고 권유한다.
김밥집을 하나 만들까.
이름은 참새방앗간.
때마침 아무도 오지 않았고 거리에도 아무도 없었다.
참새방앗간처럼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스며들겠지만 오늘은 오늘, 순간대로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녀들이 하나둘 떠나고 간판불을 끄고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비가 오니 길고양이들도 조용하다.
이런 날은 비를 맞으며 커피와 연초 한 개비가 딱 맞을 것 같지만 문을 닫고 집으로 간다.
켈리는 최근에 나온 맥주인데 가벼운 맛과 은은하고 연한 갈색병이 매력적이라 여자분들이 좋아한다. 왠지 다음날 숙취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고 음료수 같은 느낌도 있다.
(맥주도 많이 마시면 숙취가 넘쳐흐른다. 과음금지!)
덴마크산 프리미엄 맥아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는 유독 에일(Ale)보다는 라거(lager)가 인기가 많다.
맥주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인 라거(하면 발효맥주)인데 카스도 라거에 속하며 해외 맥주 중에는 칭다오, 코로나, 칼스버그, 기린, 하이네켄 등이 있다.
라거 맥주의 맛의 공통점은 가볍고 청량감이 있다는 것인데 목 넘김에서 왠지 탄산이 톡톡톡 튀는 느낌과 음료수같이 깔끔함이 특징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난 확실히 라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