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사라져
시간이 멈춘 어느 마을에,
하얗고 뽀얀 아이와
피에 절어 냄새마저 지독한 아이가 살았다
두 아이는 언제부터인지 잘은 모르지만
둘도 없는 친한 친구였다
너무나도 친했다
밤에도 손을 꼭 잡고 잠을 잤으며
낮에도 손을 꼭 잡고 밥을 먹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함께일 것임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헤어짐이라는 단어조차 그들에겐 있을 수가 없는 단어였다
항상 함께였다
어른들이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얗고 뽀얀 아이는 작은 소녀가 되어갔고
피에 절어 냄새마저 지독한 아이는 잔인한 소년이 되어갔다
그래도 둘은 손을 놓지 아니했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손을 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자
어른들은 두 아이를 떼어 놓으려 노력했다
소녀하고 소년이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 이유는 둘에게는 변명거리로도 들리지 아니했다
여전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손을 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어른들은 둘을 떼어놓기로 결정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소년과 소녀의 꼭 잡은 손을 떼어놓으면 되는 거였다
어른들은 갑자기 달려들어
소년과 소녀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소년의 힘이 워낙 강해 강제로는 어려웠다
다시금 방법을 모색한 어른들은
방심한 틈을 타, 소년의 팔을 잘라버렸다
둘은 떨어졌다
소년은 쓰러졌고 소녀는 울고만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소년은 깨어날 줄 몰랐다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숲에 버려졌다
소녀는 계속해서 울고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소년은 숲의 왕이 되었다
잔인하고 지독한 피의 왕
모든 숲의 왕이 되어 소녀를 찾아왔다
팔을 잃고 소녀를 잃었던 그때를 잊지 못해 소녀를 찾아왔다
마을에선
과거의 소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야기를 파는 장님을 만났다
장님은 소년을 보자 반가운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슬픈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를 많이 그리워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년은 어떤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거칠어지고 더러워진 살결만큼이나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였다
장님은 그 누구의 돌봄을 받지 못하였다
과거에 뽀얀 소녀는
소년이 숲에 버려진 그때,
두 눈을 잃고
사람들에게 버려졌다
소년을 잃고 삶을 잃어버렸다
소년이 숲의 왕이 되어 소녀를 찾는 동안
소녀는 장님이 되어 세상을 잊어버렸다
장님이 되어 소년을 기다린 소녀
숲의 왕이 되어 소녀를 찾은 소년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시 잃어서는 안 되는 것들
다시는 서로를 잃어버리고 헤어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다시는.
2007년 어느 날
원래 이글 이전에 쓰던 시리즈들이 있었는데
다 없애버렸습니다.
스스로가 파기시켰다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감정과 기억으로 다시 쓴,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
이야기 같지만 산문시라고 보기엔 이상한가요?
그냥 글을 쓰고 평가받던 저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추억 속에 끄적여 놓은,
글 들중 찾은건 이거까지가 마지막인것 같네요.
혹시 더 찾게 되면 또 올릴께요.
아마 더 찾는다면 1990년대 글일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