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속도를 줄여 국도를 달리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퇴사를 한 후 발을 들인 개인사업자의 길은 마치 제한속도가 30km인 길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더디고 더디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루하루가 바쁘고 가빴다. 결과는 며칠 내로 나왔고 성과는 길어봤자 몇 달, 무엇을 기다려야 할 일도 인내해야 할 일도 없었다. 끝없이 스크롤할 수 있는 sns 속 세상처럼 멈춤 없이 이어지는 하루의 과제들.
그런데 퇴사와 함께 내 인생의 스크롤이 멈춘 것만 같다. 다음 과제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았고 백지처럼 주어진 하루는 온전히 내가 채워가야 했다. 문득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꽉 채워진 스케줄을 보며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한 후 아침마다 많이 달렸다. 하루에 하나라도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처음엔 2분, 5분, 10분을 걷고 달리다 이제는 45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됐다. 바람을 가르며 가뿐하고 아주 멋지게 달리는 모습이면 좋겠지만 실상은 걷는 듯 아주 천천히 뛴다. 핸드폰에 찍힌 나의 속도는 8'17''.
8'17'', 이것이 세상의 진짜 속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이룬 것들은 얕은 웅덩이의 물처럼 곧 증발해 버리고 남아있는 것이 없다.
타인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 나의 꿈을 이루는 일보다 쉽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10여 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며 어렵게 배운 한 가지이다. 그동안 시달려왔던 알 수 없는 죄책감은 내 인생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이젠 사과를 먹고 싶을 땐 사과를 고르려고 한다. 바라왔던 삶을 내게 안겨주고 싶다. 편의로 거세해 버린 수백 가지의 감정들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 미련없는 척 해왔지만 사실은 내겐 모든 것이 의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되는 것은 아무 위험도 수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궁극적인 진실이고 나는 두려움 없이 산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고속도로에서 내려왔다. 이젠 나의 몸으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