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
뻔해서 좋았다. 6년 전 겨울, 흡사 소개팅 열차를 탄 것 같이 많은 남녀가 첫 만남을 가지고 있던 강남역 레스토랑에서부터. 의례 그렇듯 세 번째 만남에 고백을 할 걸 알았고 1년 후 즈음 우리가 결혼하게 될 줄 알았다.
영화관에서 7번 방의 기적이나 신과 함께와 같은 영화만 볼 것 같은 사람, 미술관에선 멈춰서는 일 없이 30분이면 나올 것 같은 사람. 내가 즐겨 듣는 음악들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 사람.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부부에게는 아이가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세상의 논리대로 사는 사람 같아 좋았다.
나는 그의 평범함 속으로 들어가 뻔하게 살고 싶었다. 예측 가능하고 안온함 삶,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저녁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는 그런 삶 말이다.
3월 3일은 우리가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원하던 대로 살고 있느냐? 그럴 리가!! 그동안 우리의 생활은 원하던 것과는 꼭 반대로 흘러갔고 앞으로도 순탄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라고 하는 흔한 주례사를 들을 때마다 좀 더 멋있는 말을 해줄 순 없나 뭘 저렇게 당연한 소리를 할까 싶었는데 그건 정말 두 사람 간의 각고의 노력과 운까지 따라줘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맹세까지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기간 내 알게 된 것은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발휘되는 남편의 인내와 올곧음은 절대 평범한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뻔한 건 멘탈을 잃고 바가지나 긁어대는 나였다.
그를 많이 사랑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일들이 우리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오히려 더 커져간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구멍이 클수록 그만큼 더 크게 메워버리는 걸까, 나는 자주 이 경이로움에 취한다. 그걸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결혼생활이 고맙다.
5년이란 세월이 손을 한 번 쥐었다 편 것처럼 금방 지나갔다. 어느새 같은 표정으로 웃고 같은 표정으로 우는 우리 앞에 남아있는 날들이 뻔하든 뻔하지 않든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