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관리

퇴사일지 15

by Juas

퇴사를 한지 이제 4개월 차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많은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밥도 많이 먹어본 놈이 잘 먹고 돈도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쓴다고 했던가, 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초반엔 루틴 앱이며 스케쥴러에 그날의 일정을 빼곡히 적어 놓고 미션 클리어하듯 하루를 지내야 안심이 되었는데 오래가지 않아 그만뒀다. 시간이 이렇게 많은데 왜 맨날 바쁜걸까 의아해서였다.


애초에 시간도 사람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인데 자꾸 통제하려고 하다 보니 처리하지 못한 일들만 마음속에 짐으로 쌓여가고 오늘도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침대로 베개로 꿈속으로 빚쟁이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건 회사를 다닐 때의 삶과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이룬 것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다, 이렇게 해서 그나마 사람구실 하고 살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이 방법 말고는 내 삶을 굴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인 것 같아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누가 들으면 게으르기 짝이 없고 한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그냥 눈 떠지면 일어나고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고 잠이 오면 잔다. 그날의 중요한 일 하나만 끝내자 라는 목표만 두고 나머지 시간에 뭔갈 촘촘히 끼워 넣지 않기로 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사는 게 아니라 통으로 살아보는 거다. 이게 괜찮은 방법일지 아닐지는 지나고 나면 알게 되겠지. 다만 허투루 쓴 시간들 덕에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초조함과 불안함 불확실성이 말끔히 사라진 삶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내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친절이 아닐까. 초조해질 때마다 일곱 살 나에게로 돌아가 말한다.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해 뭘 이루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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