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퇴사할 때 일 년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거라던 전 직장 동료의 말이 마음에 남아 연락을 했다. 회사에서 음식 냄새와 땀에 쩌든 모습이 아닌 밖에서 서로 산뜻한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퇴사할 무렵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낌새를 챘던 건지 갑자기 집에 초대해 밥을 먹이고 잠이 들 때까지 수다를 떨었던 게 너무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계속 보고 싶었던 친구다. 4개월 만에 만났는데 1년 만에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상하게 나도 그랬다.
새삼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민망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인중이나 보며 이야기할 때가 많다.
밥을 먹고 가벼운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도 헤어졌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며,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에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하고많은 시간을 두고 왜 꼭 그 시간에 보고 싶을까, 나도 바꾸고 싶은데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그런지 꼭 영화관에서 보는 것 같다. 어젠 더 웨일을 봤고 보다 보니 주인공처럼 양손으로 입에 핏자를 쑤셔 넣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는데 꾹 참았다가 다음날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영화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고, 문득 낮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 갑작스레 집에 초대했던 건 아마 내가 걱정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극 중 초비만 환자에게 샌드위치며 치킨을 못 이긴 듯 계속 주는 간호사도, 지방으로 캠프파이어를 할 수도 있겠다며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딸도, 피자를 배달해 주며 괜찮냐고 계속 묻는 배달원도 뭔가 잘못된 방식이지만 결국 그를 구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행동들이 그를 향한 ‘관심’ 이란 것을 알아차린 그의 긍정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 계속 망가져 가는데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왠지 더 마음이 아팠다. 고통에 빠진 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겐 가혹하지만 타인에게 관대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그들은 빛을 늘 동경하게 때문에 타인이 가진 아주 작은 빛도 잘 발견해낸다. 그것은 망가진 사람들만이 가진 초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