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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Apr 07. 2023

망가진 사람들의 초능력

일기

퇴사할 때 일 년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거라던 전 직장 동료의 말이 마음에 남아 연락을 했다. 회사에서 음식 냄새와 땀에 쩌든 모습이 아닌 밖에서 서로 산뜻한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퇴사할 무렵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낌새를 챘던 건지 갑자기 집에 초대해 밥을 먹이고 잠이 들 때까지 수다를 떨었던 게 너무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계속 보고 싶었던 친구다. 4개월 만에 만났는데 1년 만에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상하게 나도 그랬다.


새삼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민망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인중이나 보며 이야기할 때가 많다.


밥을 먹고 가벼운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도 헤어졌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며,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에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하고많은 시간을 두고 왜 꼭 그 시간에 보고 싶을까, 나도 바꾸고 싶은데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그런지 꼭 영화관에서 보는 것 같다. 어젠 더 웨일을 봤고 보다 보니 주인공처럼 양손으로 입에 핏자를 쑤셔 넣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는데 꾹 참았다가 다음날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영화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고, 문득 낮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 갑작스레 집에 초대했던 건 아마 내가 걱정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극 중 초비만 환자에게 샌드위치며 치킨을 못 이긴 듯 계속 주는 간호사도, 지방으로 캠프파이어를 할 수도 있겠다며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딸도, 피자를 배달해 주며 괜찮냐고 계속 묻는 배달원도 뭔가 잘못된 방식이지만 결국 그를 구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행동들이 그를 향한 ‘관심’ 이란 것을 알아차린 그의 긍정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 계속 망가져 가는데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왠지  마음이 아팠다. 고통에 빠진 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겐 가혹하지만 타인에게 관대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그들은 빛을  동경하게 때문에 타인이 가진 아주 작은 빛도  발견해낸다. 그것은 망가진 사람들만이 가진 초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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