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계절이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잎사귀는 미처 다 돋아나지 못했고 바통을 이어받듯 피어야 할 꽃들도 아직 피지 않았다.피었다 떨어진 건지, 피어나고 있는 건지 듬성듬성 바람에 뜯긴 모양새.
봄에 이렇게 비가 자주 내렸었나 싶을 정도로 흐린 날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잠깐 맑고 내일부턴 또 비가 올 거란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애매한 날씨가 뛰기엔 최적인 날씨라 30분을 달렸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옆 길엔 최근에 강한 바람이 불었었는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나무 주변으로 지난번보다 훌쩍 자란 잡초들만 무성하니 곧 풀 벤 향기가 이 길을 가득 메우겠다. 그나저나 저 기울어진 나무들도 베어질까.
달리기는 오래전에 시작했다. 감기가 걸렸을 때 감기약을 먹는 것처럼 우울함엔 달리기가 최고의 약이다. 생물학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시작은 날듯이 가볍지만 숨이 찰 무렵엔 내 몸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 시점이 지나면 꿈 속을 뛰는 것 같은 황홀경에 이른다. 그땐 나의 몸도 없고 고통도 없다.
인스타그램에 연애를 시작했다는 친구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피드를 보니 사별로 괴로워하며 썼던 지난날의 글들은 모두 없어지고 달리기를 하고 글 쓰고 공부했던 일상들만 남아있다. 아직 피지 않은 계절 사이의 우리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