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차출-
아직 봄이었지만 신병 교육대의 4월, 아니 저주받은 땅의 4월은 아직 춥기까지 했다. 역시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지 어느새 교육훈련도 막바지에 이르러 마지막 과정인 총검술 훈련이 시작됐다. 하지만 말이 교육훈련이지 아마도 군기 잡는 게 교육대의 본래 목표인 듯 실수도 없는데 오전 내내 얼차려가 이어졌다. 뒤로 누워 좌우로 구르거나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같은 건 차라리 본격 얼차려를 위한 몸 풀기이고, 엎드려뻗쳐, 쪼그려 뛰기, 원산폭격, 뒤로 취침 후 발 들고 좌우로 움직이기, 선착순 뺑뺑이 등 군대 내 얼차려 종류를 다 습득시키려는 듯 오전에 벌써 훈련병들 진을 다 빼놨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또 다시 총검술 훈련이 시작됐는데 이미 진이 다 빠진 훈련병들은 악으로 버티며 가까스로 오후를 보내야 했다. 군대는 까라면 까는 동네라는 건 알지만 재수는 훈련을 받으면서 궁금했다. 이런 걸 왜 할까? 오와 열을 맞추고 손발을 맞춰 걷는 제식훈련은 군대의 상징 같은 거라 그러려니 했는데, 이 따위 총검술은 대체 어디다 써먹으려고 훈련을 시키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허수아비를 상대로 일대일 맞짱 뜬다면야 모르지만 상대가 사람인데 찌르고, 베고, 차는 각 동작들을 하기위해 각을 잡는 동안 상대는 미쳤다고 기다려 주겠느냐 말이다. 허수아비랑 칼싸움 시키려고 한창 젊은 청춘들을 징집하진 않았을 텐데 뭐 하러 제식처럼 행동을 일치시켜 찌르고 치고 베고 차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북한군을 허수아비로 보는 게 분명했다.
아무튼, 총검술 훈련이 한창이 던 어느 날.
그날은 재수의 앞 기수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다. 연병장 스탠드에 앉아 선배들의 수료식을 본 감동이 좀체 가시지 않았던 날이기도 했다. 그날 수료식에서 본 선배들은 매일 얼차려에 시달리느라 동네 거지와 다름없던 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새로 지급된 A급 군복으로 갈아입고 손발 각도까지 자로 잰 듯 칼같이 맞춘 그들의 사열(부대의 훈련정도나 사기를 지휘관에게 보이는 의식)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손발이 영 안 맞고 늘 그렇듯 여전한 고문관 몇 명 때문에 교관과 조교에게 얻어맞고 얼차려를 당하는 모습을 봤다. 저래가지고는 당장 내일 수료식에서 쪽팔림이나 안 당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똑같은 인간들이 하루 만에 저렇게 달라 질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분명, 잘 할 수 있음에도 얼차려 받는 걸로 시간 때우는 게 좋아서 일부러 대충 한 게 아니라면, 어쩌면 부모님이나 친지들, 친구들에게 자기도 이제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갑자기 없던 열정이 솟아나고 하필 그러한 마음이 우연히 다 같이 일치돼서 된 게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실제로 그들 가족들이 앉은 스탠드에선 탄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열 마지막 단계는 기계화 사단에 걸맞은 위용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훈련병들의 총검술이 마지막 함성으로 끝남과 동시에 몇 대의 자주포가 엔진소리를 우렁차게 울리며 연병장 외곽을 채우고, 최신 전차와 장갑차가 연병장 한가운데로 돌진해 360도 회전하는 기동시범을 보이고, 곧바로 전투기들이 연막을 뿌리며 곡예시범을 하며 연병장을 스치듯 날자 스탠드에선 우레와 같은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훈련병 가족들은 아예 에어쇼 관객이 된 듯 하늘을 우러르느라 자기 자식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기까지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같이 진흙탕을 박박 기던 선배들을 기억하는 재수로서는 수료식이란 게 군인 당사자보다 수료식에 참관한 가족들만을 위해 철저히 기획된 것 같아 껄끄러웠지만, 정확히 일치된 동작과 단결된 그들 모습에 재수도 처음으로 군인이란 존재가 근사해 보였고 어쩌면 군대가 멋진 곳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대체 어디다 써먹으려고 총검술 훈련을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교육대 훈련이란 보여주기 위한 훈련. 그것도 확실히. 딱 그것이었다.
수료식이 끝난 연병장엔 스탠드에 버려진 쓰레기와 함께 수료를 마친 선배들에 대한 부러움만이 오후 햇살과 함께 짙게 남았다. 그리고.......
재수는 덕환과 함께 싸리나무 빗자루로 연단을 열심히 쓸고 있었다.
“야. 이거 다음에 이거냐?”
재수 역시 일주일 뒤에 있을 수료식에서 부모님께 멋진 군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았다. 의무대에서 보낸 5일의 공백이 부담되기도 했다. 재수는 빗자루를 총 삼아 덕환에게 늘 꼬이는 총검 순서에 대해 물었다. 다들 총검술은 16개 동작이라는데, 한 동작마다 서너 단계의 순서가 있으니 외우는 머리는 절대 안 되는 재수에겐 수십 여 개의 수학 공식 같은 동작이 돼 놔서 거의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야. 넌 사회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냐?”
무슨 훈련이든 제일 먼저 나서서 제일 열심인 재수를 이해 못하는 덕환이 교육대 시절 내내 했던 말이다.
“아니, 그리로 넘어가면 안 되고 여기서 이리로 넘어가라고. 답답한 새끼야.”
희한하기로는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군대에 관한 상식부터 남들 모르는 규칙과 요령까지 꿰차고 있는 녀석은 늘 그렇듯 총검술 역시 순서만큼은 교관만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머리에 든 지식과는 별개로 실제 상황에서는 형편없는 녀석인지라 실제 수료식에서 잘 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 녀석이 다른 곳도 아니고 군대에서 필사적인 재수에게 툭하면 거슬릴 만큼 핀잔을 주면서도 또 아예 외면은 않고 동작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도와주는 걸 봐도 희한한 놈은 분명했다. 그렇게 봄 햇빛 내리쬐는 한낮 교육대 연병장 연단에서 재수는 덕환과 장대 빗자루를 들고 총검술이라는 보여주기 끝판 왕 훈련을 익히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 옆으로 군용 지프차가 한 대 멈춰 섰다. 차 넘버가 1로 시작하는 걸 보아 어는 부대인지 몰라도 부대장이 탔을 거라고 덕환이 일러줬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없는 놈이었다. 부대장이라니. 재수는 괜히 긴장돼 하던 동작을 멈추고 무작정 거수경례를 했다. 열린 차창 너머로 특전사나 공수부대만 입던 무시무시한 위장복을 입은 누군가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수와 덕환은 위장복을 보는 순간부터 바짝 얼어 버려 거수경례를 하면서도 계급조차 보지 못했다. 그 지휘관은 잠시 둘을 훑는 듯 노려보다가 행정반으로 사라졌다. 얼었던 순간이 지나자 덕환은 저 위장복은 전투 시 어떤 효과가 있고 국산보단 미제가 땀 흡수가 좋다는 둥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처럼 별 알 필요 없는 군대 지식을 읊어댔다. 재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덕환은 정보를 담당하는 국군기무사나 안기부 체질이지 싶었다.
둘이 빗자루를 총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총검술 연습에 열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신 조교가 행정반으로 둘을 불러들였다. 둘은 다시 얼었다. 거긴 좀 전에 무시무시한 위장복을 입은 누군가가 들어 간 곳 아닌가? 긴장한 몸을 질질 끌고 들어선 행정반엔 역시나 아까 그 위장복 사내가 매우 근엄한 자세로 소파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위장복의 위엄과 달리 그는 무척 자상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소령으로 같은 계급이지만 교육대 대장이 그 옆으로 앉아 자신들을 맞이하는 걸 보니 아마도 위장복과 일반 군복의 차이 아닐까 싶었다. 교육대 대장은 서류 파일을 뒤적이며 둘의 인적 사항과 훈련 평점 등을 그에게 보고했다. 둘은 대체 뭔 일인가 어리둥절할 뿐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어 그저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이윽고 교육대 대장의 브리핑이 끝나자 위장복이 재수에게 물었다.
“너는 사격도 만발을 했네?”
“77번 훈련병. 네, 그렇습니다.”
“훌륭해. 아주 좋아. 으허허~ 훈련성적도 좋은데 정비시간에 총검 연습까지.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군인형이야. 으허허~”
재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내가 어느 부대 지휘관으로써 봄바람 즐기며 드라이브 하던 중 우연히 빗자루로 총검 연습을 하는 매우 갸륵한 훈련병을 지나치지 못하고 선심을 베풀어 포상이라도 하려는 은혜로운 분인 줄, 그렇게 뜻밖의 휴가 기회가 주어지는 행운 뻗친 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재수는 입대 영장을 받은 이후 인생에 가파른 변주가 시작된 걸 잊고 있었다.
“너희 둘은 오늘부로 맹수부대 정찰대 병력이다. 축하한다.”
뭐시라? 맹수부대? 정찰대? 재수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말뜻을 알아차리자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잊고 덕환을 쳐다보았다. 덕환도 재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재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둘은 교육대 대장과 그보다 훨씬 높은 어떤 위장복 사내 앞에서 감히 서로를 벙 찐 얼굴로 쳐다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렇게 물어 보고 싶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신 것 같은데 우린 여기 병력이 아니라 저~기 수방사 병력이라구요.’
또박또박 따지고 싶었다.
‘못 믿으시겠다면 타 부대 병력이라고 포상휴가도 취소시킨 저 교육대 대장 새끼한테 물어보시라구요!!’
그렇게 소리쳐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마음속 울부짖음이었을 뿐 감히 훈련병 주제에 입 밖으로 낼 소리가 아니었다. 재수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위장복 사내와 교육대 대장은 벌써 일어나 서로 흡족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재수는 또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제발 잘못 들었기를, 이게 꿈이기를 바라던 중 위장복이 문을 열며 말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수료식 끝나고 부대에서 보자.”
위장복은 아직 뭔가 대단한 착오가 있으리라는 재수의 믿음이 헛된 것임을 그렇게 확인 사살하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던 행정반엔 신 조교만 멀뚱히 서있는 둘을 무척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고, 재수가 힐끗 본 덕환의 눈은 거의 반쯤 풀려있었다. 하도 어이없고 비현실적인 현 상황에 넋을 놓고 서 있는 둘을 깨운 건 교육대 대장이었다.
“야, 니들 뭐하고 섰냐? 안 나가?”
둘은 얼이 빠져 그대로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어쭈. 이것들 봐라? 경례 안 해?”
아, 그렇지. 아무리 좆같은 상황이라도 경례는 해야지. 군댄데.
“맹수~”
재수는 맥 빠진 목소리로 경례를 했다. 의도한 게 아니라 하도 비현실적 상황이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야. 신 조교. 쟤들 안 되겠다. 데리고 가서 좀 굴려.”
그러든가 말든가. 재수는 구르는 데 이력이 난데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저 새끼는 뭐지? 왜 갑자기 나타나 혼을 쏙 빼놓고 가는 거지? 지가 뭔데 나를 자기네 부대로 맘대로 데려가는 거냐고? 수방사가 홍어 좆이야? 그렇게 만만해?’
재수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 누군가에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속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신 조교를 졸졸 따라갔다. 군대 지식에 빠삭한 덕환도 제 영역 밖의 일인지 초점 잃은 눈과 허~ 하고 벌린 입으로 신 조교 뒤를 따랐다.
“너희들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신 조교는 얼차려를 주는 대신 어질할 만큼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 뒤에서 담배를 건네며 물었다. 아마 자살이라도 할 줄 알았는지 둘의 표정 뿐 아니라 몸을 위 아래로 훑는 신 조교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심각해 보였다. 그 심각한 표정이 재수의 마음을 더 무너지게 했다. 자살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정찰대가 자살을 할 만큼 갈 곳이 못 된다는 뜻이겠지. 담배 연기가 한숨과 섞여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맘 단단히 먹어라.”
으레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찰대란 곳은 정말이지 지옥 그 자체였다.
“일단 거기는 저녁 점호 인원과 아침 점호 인원이 달라. 밤새 몇 명씩 병원으로 후송되거든.”
“술집에서 깽판 쳐도 헌병들도 거기 애들은 안 잡아가. 불쌍해서.”
“공수훈련, 특공무술, 전투수영.. 하여간 특전사랑 공수부대랑 합쳐 놨다고 보면 돼.”
신 조교가 들려준 그곳의 사정을 듣는 동안 재수는 어질해서 몸이 휘청거렸다.
"아씨. 이놈의 똥냄새."
황당한 일을 당하면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아 화풀이를 하는 버릇이 튀어나왔다. 정신이 혼미해진 건 신 조교가 들려준 정찰대의 정체였기 때문인데 똥내 나는 화장실을 욕했다. 그의 말은 훈련병들이 괜히 뻐기느라 과장해서 하는 말과 다르기 때문에, 이미 짬밥을 먹을 만큼 먹은 조교가 들려준 신뢰도 높은 정보이므로 설마 할 수 없어서 더욱 어질했다. 실제로는 특전사도 아니고 해병대도 아니고 UDT는 더욱 아닌 그놈의 정찰대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기에 육군 땅깨 주제에 이런 무지막지한 훈련을 다 합해서 하는지.
재수가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정찰대는 원래 이런 거였다. 한 소대나 중대 단위로 적진으로 향할 때, 전방의 위험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그중 몇 명을 선발해 앞으로 보낸다. 그들이 정찰대다. 적이 있으면 후다닥 도망가서 후방 팀에게 보고하고 같이 싸운다.
'이게 정찰대의 임무라고!! 내가 본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정찰대는 다 그랬다고!! 그런데 맹수부대 정찰대는 지네가 뭐라고 특수 훈련이라는 훈련은 죄다 하느냐고!!'
수방사 병력이라고 사격 만발을 하고도 휴가도 못 갔지만, 곧 수방사로 가서 남은 훈련만 마치고 곧장 휴가를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 악물고 견뎠는데, 기절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고 행군을 마쳤는데, 어디? 정찰대? 그 무지막지한 곳으로 가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행군 때 앰뷸런스를 벌써 탔지. 씨발. 내가 왜 미쳤다고 버텼겠냐고?’
행군 때 차라리 앰뷸런스를 탔다면 수료가 미뤄졌을 테고 적어도 수방사 병력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재수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곳으로 가게 된 현실도 기가 막혀 죽겠는데 신 조교에게 들은 그곳의 정체는 재수를 아예 실신 직전까지 몰고 있었다. 그리고 신 조교의 마지막 정보가 정찰대의 정체를 밝혔다.
“거긴 한 달에 한 번씩 북한의 날이라고 해서 종일 북한말 써야 돼. 그리고 북한 소총 사격이 있고 북한말 시험도 봐.”
그랬다. 그곳은 간첩 사관학교였다. 적어도 재수가 생각하기에 버젓이 부대 막사까지 차려 놓을 만큼 대놓고 간첩을 키우는 곳이었다. 신 조교의 말에 따르면 맹수부대 정찰대는 전쟁이 터짐과 동시에 적진 한가운데로 날아가 낙하산을 타고 산속에 숨어 적의 동태를 수집하는 임무를 기본으로 삼는 부대란다. 오랜 전통의 수색대 내 경수색대를 따로 독립시켜 정찰대라 명명하고 기본 임무 외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건 니들이 알아서 하시고요, 왜 멀쩡한 수방사 병력을 니들 마음대로 빼 가냐고. 이 개새끼들아.’
재수는 울분이 턱까지 차올라 숨이 막혀 주저앉고 말았다. 신 조교는 그런 재수의 어깨를 힘주어 잡으며 한 숨을 쉬었다.
“니들. 하여간 잘 버텨야 돼. 알았지?”
마치 중상을 입은 전우를 적진에 두고 떠나는 병사처럼 걱정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신 조교는 돌아섰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됐는지 신 조교는 담배를 통째로 던져주고는 막사로 사라졌다.
신 조교가 사라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수와 덕환은 똥내 나는 재래식 화장실 벽에 얼굴을 나란히 묻고 통곡을 했다.
“모난 놈 옆에 있으면 정 맞는다더니.. 꺼이꺼이~~”
“야, 노재수. 이 재수 없는 새끼야. 청소하라면 청소나 할 것이지 왜 빗자루 들고 총검을 가르쳐 달라고 지랄을 해서는..”
“내가 어쩌다가 재수 없는 놈 옆에 있다가 같이 날벼락이나 맞고.. 꺼이꺼이~”
“너, 이 새끼야. 내가 보충대에서부터 뭔가 께름칙하더라니. 그때부터 너를 아예 모른 체 했어야 되는데, 괜히 군대 좀 안다고 깝죽대느라 씨부리다가.. 꺼이꺼이~.”“아~~씨발. 뭐 이런 좆같은 경우가 다 있냐 말이야. 으아!!!”
“너 버스에서 자꾸 나한테 들이댈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어. 뭔가 불길한 게, 재수 없었다고 새끼야.”
“엄마 아부지. 씨발, 나 이제 어떡해. 맹수고 나발이고 그것도 미치겠는데 웬 정찰대냐고요!!!”
“형!! 형은 알아? 정찰대? 원래 이런 좆같은 부대가 있었어?”
덕환은 한탄을 하다가, 울다가, 불현듯 화를 냈다가, 싸늘한 표정이 되어 재수를 비난하다가, 하늘을 우러르며 제 가족을 찾는 둥 실성한 것 같았다.
“아까 신 조교가 그러잖아. 생긴 지 얼마 안 됐다구.”
재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퍽 하고 느닷없이 덕환의 주먹이 재수의 입술을 강타했다.
“주둥이 닥쳐. 이 씨발 놈아.”
맞고는 못 사는 재수도 이때만큼은 어쩔 수 없어 가만히 입술만 쓰다듬었다. 다른 건 인정할 수 없지만 자기가 빗자루 들고 총검술 가르쳐 달라고 한 건 맞으니까.
“아니. 이건 뭔가 이상해. 아무리 특수정예부대라 해도 수방사령부에서 차출한 병력을 일개 소령이 재 차출을 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냐?”
질문하듯 혼자 중얼거리는 덕환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얼이 빠진 표정에 풀린 눈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실성을 했나. 아까 신 조교가 그랬잖아. 누군가 빽써서 제 아들들 집어넣고 우리가 밀려난 것 같다고.”
다시 한 번 던환의 주먹이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수는 슬쩍 상체만 움직여 덕환의 주먹을 피했고 상체 힘을 실어 주먹을 날렸던 녀석은 재수 허벅지에 하체를 올려놓고 물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이런, 씨발. 이거 뭐야. 어느 개새끼가 여기다 오줌을 갈긴 거야.”
침을 퉤퉤 뱉으며 제 얼굴을 문지르는 덕환의 표정을 보니 실성한 것 같지는 않았다.
“너 정찰댄지 뭐시긴지 거기 가도 나 아는 척 하지 마. 난 절대 니 동기 아니야. 그니까 내 근처에 오지도 마. 알았지? 오기만 해봐.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아주 그냥 확 자살을 하든가 탈영해 버릴라니까.”
재수는 덕환이 주절대며 뱉는 저주와 같은 욕을 온 몸으로 받는 동안 재수는 앞으로 펼쳐질 지독한 군생활보다 그녀를 볼 날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이, 어쩌면 아예 사라지고 있음이 끔찍해 진저리를 쳤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하루 빨리 휴가를 나가 재회를 해야 하는 절박함이 사격도, 행군도 이를 악물게 했건만 이제 다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때문에 재수는 교육대의 남은 일주일 동안 몇 번이나 탈영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를 어찌어찌해서 만난다 한들 탈영병 신분으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다시 뭔가 확실히 꼬여 가고 있음이 분명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 자기를 엉뚱한 길로 이끄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만날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가자, 가. 정찰대든 정찰대 할아버지든 가자. 그렇게 특수 훈련이 많으면 포상휴가도 많을 거 아닌가. 좋다. 가서 가장 먼저 휴가를 받는 이등병이 되자. 그리고 나머지 휴가란 휴가는 죄다 받아버리자.’
재수는 입대할 때 휴가란 휴가는 다 받아 내리라는 다짐을 이젠 아예 군 생활 신념으로 바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