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대 배치-
덕환은 지프차에 앉아서도 재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런 녀석에게 뭐라 말을 터야 할지 재수도 막막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제법 큰 개천을 건너자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호루를 씌우지 않은 지프차 뒤로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금방이라도 둘을 덮칠 듯 따라왔다. 악명 높은 곳은 가는 길부터 험난한 건가? 재수는 교육대를 떠날 때부터 불길함에 짓눌려 있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인데 죽기야 하겠는가? 사고만 안 난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래도 긴장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여자가 니 안부 묻더라.’
재수는 어머니의 말을 애써 떠올렸다. 그녀와 재회의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졌다는 사실을 되뇌었다. 그러자 확실히 용기가 솟았다.
“보이냐? 저~기 빨간 건물. 저게 우리 부대 막사다. 신식이지?”
선탑 자리에 앉은 오십 줄의 행정계 주임원사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저 멀리 신식 막사가 보이고 그 위로 육군 헬기가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군 생활이 시작될 곳에 헬기가 날아다니는 게 이상했다.
“원사님. 부대에 헬기가 왜 있습니까?”
덕환이 또 오지랖이야? 하는 표정으로 재수를 쳐다봤다.
“음.. 그건 말이야. 우리 부대는 육군 항공대랑 막사를 같이 써. 연병장 옆에 활주로도 있어. 막사를 같이 쓰긴 하지만 걔네들은 우리한테 쪽도 못 쓰니까 신경 쓰지 마. 기껏 앉아서 헬기나 조종하는 것들이라 특수 훈련하는 우리를 오히려 하늘에서 우러러보니까 자부심을 가지도록! 알았나?”
“넵!!”
‘하늘을 나는 그들이 땅에서 박박 기는 정찰대를 우러러본다고? 말이 되나? 나도 신 조교한테 들은 얘기가 있는데. 지랄하네.’
재수는 텅 빈 내무반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누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얼차려부터 시킬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눈알만 굴려 내무반을 훑어봤다. 문엔 ‘1소대’라 적혀 있었고 각자의 관물대 밑엔 매트리스와 모포가 칼각으로 접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관물대에 적힌 고참들 이름마저 무섭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천 이불을 각을 저렇게 잡을 수 있을까?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 오른편 관물대에 재수 이름 석 자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고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어색한 자신의 이름. 양 옆 고참이 자신을 노려보는 듯했다. 재수는 일어서진 못하고 엉덩이를 질질 끌어 제 이름 앞으로 갔다. 작은 꼬투리도 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무반 문이 쾅하고 열렸다. 재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경례를 했다. 땀 냄새가 훅 밀려왔다.
“너구나? 손 내려, 임마.”
재수의 손을 툭 쳐 내리게 한 그는 운동복 차림에 키는 작지만 인상 좋은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난 최정식이야. 상병 1호봉이고. 넌...재수. 노재수? 음.. 하여간 잘 왔다.”
군복 명찰을 유심히 보고도 비웃지 않은 최 상병. 천만다행이었다. 사수는 사람 좋은 얼굴에 말투도 다정했다. 입소 후 처음 맞는 행운이었다.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입어. 오늘 전투축구 날이라 다들 축구하고 있어.”
최 상병은 재수의 관물대에서 친절히 운동복을 꺼내 주며 말했다. 재수는 번개 같은 속도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축구면 축구지 전투는 또 뭐냐? 총 쏘면서 축구하나?’
재수는 너무 서두르다 운동복 바지에 걸려 옆으로 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최 상병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연병장 옆에서 두 팀으로 나뉜 고참들이 무언가 심각히 의논을 하고 있었다. 작전타임 시간인 것 같았다. 최 상병이 그중 한 팀에 재수를 소개하자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모든 시선이 재수에게 쏠렸다. 식은땀이 다시 흘렀다. 그러나 약 삼초 정도 재수를 위아래로 훑어본 고참들은 다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넌 뭐냐?’ 식이었다. 뻘쭘했다. 이윽고 운동장으로 일련의 무리들이 뛰어 들어가고 재수는 일련의 앉은 무리들 앞에 서 있게 됐다. 이때, 덕환이 재수와 마찬가지로 선임병과 함께 뛰어와 다른 무리들 앞에 섰다. 확실히 녀석은 늘 느렸다. 이번엔 다른 소대로 배치된 게 분명했다. 녀석에겐 다행이겠다 싶으면서도 왠지 서운했다.
“아야. 너 이름이 뭐냐?”
아버지와 같은 사투리. 전라도 고참이었다.
“네! 노재수입니다.”
일초의 정적 후 웃음폭탄이 터졌다.
“고향은?”
“서울입니다.”
웃던 고참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워매. 서울 뺀질이가 또 들어와 부렀네.”
“전 병장님. 저 같은 서울 뺀질이가 들으면 참 섭섭하지 말입니다?”
멀끔한 얼굴의 누군가 서울 출신인 듯 따지듯 말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와 표정엔 아양이 가득해서 재수는 고참 앞에서의 쫄따구 태도를 엿보았다.
‘이런 거구나.’
“크흠. 알았응께 응원 한번 혀 봐라.”
재수는 선수로는 많이 뛰었지만 응원이라곤 해 본 적 없었다. 막막했다. 퍼뜩 떠 오른 건 TV에서 본 농구 경기 치어리더들이었다. 이어 교육대에서 배운 국군 도수 체조가 떠올랐다. 치어리더들이 하는 응원 동작과 유사했다.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고참들이 이번엔 집단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자기 배를 부여잡고 우는 고참도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라도 전 병장이었다.
“하~ 이런 또라이 새끼 보소. 시방 재롱잔치 허냐?”
앗! 이건 아닌가? 이때, 호각 소리가 들리고 옆 소대 무리들이 우~~ 함성을 질렀다. 선수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고 앉아있는 무리들 앞에 선 덕환도 재수와 같은 요구를 받았는지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엉덩이까지 흔들면서.
‘미친놈. 여기가 싸제야? 곧 대가리 꼬라박겠군.’
그때, 재수는 덕환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래. 군인이면 군가지.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곧 재수는 대가리를 꼬라박았다. 머리를 박고 생각해 보니 자신이 부른 ‘전선을 간다’ 군가는 멜로디가 좀 슬프긴 했다.
'진짜 사나이 부를걸.'
벌린 가랑이 사이로 운동장을 누비는 고참들이 거꾸로 보였다.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통증을 참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덕환은 쉬지 않고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고 그 앞 앉은 고참들은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젠장. 트로트였구나.’
재수가 깨달음과 동시에 후회를 할 때 가랑이 사이로 욕이 섞인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야. 나한테 넘겨. 넘기라고!!”
“야, 너 이 씨발 놈. 길게 안 차?”
“어쭈. 이 새끼 봐라. 축구장에서 걸어? 니네 오늘 점호 때 보자.”
“야! 막아. 막으라고. 이런 개새끼가.. 몸으로 막으라고.”
“어쭈. 이것들 봐라? 니네 지금 몸 사리지? 알았어. 이따 점호 때 보자.”
살벌했다. 축구를 하는 건지 패싸움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상대를 잡아끄는 건 기본이고 정강이를 노골적으로 걷어차고 드리블하는 선수에겐 육탄 공격이 들어갔다. 재수는 왜 전투축구라 하는지 깨달았다. 그나저나 머리가죽이 다 벗겨지는 것 같아서 재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찰대 연병장 모래는 교육대 모래보다 훨씬 굵었다.
내무반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최 상병이 재수에게 담배를 건넸다.
“재수야. 군대 응원은 무조건 노래야, 노래. 군가는 구보나 도보 행진할 때 하는 거야. 알았지? 그리고 앞으로 고참들이 노래 부르라면 무조건 트로트 불러. 뽕짝 알지? 그런 거 부르라고.”
대체 군인으로 행동하란 거야, 싸제인으로 행동하라는 거야? 재수가 복잡한 머리를 문지르니 손에 피가 묻어 나왔다.
“괜찮아. 그거 자고 나면 딱지 앉아,”
역시 정찰대였다.
자대 배치 첫날이 그렇게 저물고 정비 시간이 됐다. 재수 역시 개인화기를 닦고 있는데 내무반으로 누군가 들어와 전 병장에게 복귀 보고를 하고는 재수를 훑어봤다. 전 병장이 내무반 최고참인가 보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신고내용을 들으니 의무대에 갔다 온 모양이었다. 신 조교에게 들은 바대로 의무대 가는 건 일상인가 보았다.
“김 상병. 얘가 니 부사수야.”
최 상병이 재수를 소개했다. 응? 최 상병 니가 사수 아니고?
재수를 빤히 쳐다보는 김 상병은 진짜 뺀질이처럼 생긴 데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느낌이 영 안 좋았다.
“주환아. 니 부사수도 서울이란다. 좋겄다. 아부지, 아들 다 뺀질이라서. 소대 잘 돌아가겄어.”
전 병장이었다. 사수라는 김 상병은 전 병장 눈을 피해 재수에게 눈짓으로 말했다.
‘따라와.’
김 상병과 재수가 마주 선 곳은 막사 옥상이었다. 담배를 꼬나물고 재수 주위를 빙빙 돌며 그가 말했다.
“서울이라고? 뭐 하다 왔냐?”
“호떡 팔다 왔습니다.”
김 상병의 눈이 치켜떠졌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김 상병이 머리를 후려지는 바람에 재수의 군모가 휙 날아갔다.
“진짭니다.”
쩝.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아쉬운 걸까?
“여동생 있냐?”
“없습니다.”
“누나는?”
“있습니다.”
“그래?”
김 상병의 눈이 커지면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됐다.
“예쁘냐? 몇 살인데?”
“스물넷이고 못 생겼습니다.”
“이 새끼가. 누가 소개시켜 달래? 그냥 사실대로 말해.”
“진짭니다. 진짜 못생겼습니다.”
“........ 대가리 박아.”
씨발. 이딴 새끼가 사수라니. 그럼 그렇지. 이미 꼬인 군 생활이 자대라고 풀릴까. 회색 시멘트 바닥이 까맣게 보였다. 이미 까진 머리가죽으로 시멘트 가루가 박혀 들었다.
자대 배치 첫날의 얼차려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후에 치른 전투축구에서 고참들이 악을 쓴 ‘이따 점호 때 보자.’란 말은 그냥 다그침이 아니었다. 저녁점호가 끝나고 당직 사관이 ‘취침!’을 외치자마자 전 병장은 소대 전원 깍지 끼고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만약 또 원산폭격을 시켰다면 이미 까질 대로 까진 재수의 머리가죽이 남아나지 않았을 거였다. 문제는 교육대 얼차려는 정해진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할 교육이 있어서인지 대개 십 분 안에 얼차려를 풀었건만 이곳은 도대체 삼십 분이 지나도 얼차려를 풀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였다. 잠을 안 재우려나? 종일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온몸이 뭉쳐 굳은 재수가 버티지 못하고 제일 먼저 쓰러졌다.
“하이구야. 제일 쫄따구가 제일 먼저 쓰러지는 구마? 빠질 대로 빠져 가지구...”
퍽! 몸을 일으키려는 재수의 옆구리에 전 병장의 발등이 꽂혔다. 재수는 숨이 턱 막혀 옆으로 뒹굴었다. 이어 도미노처럼 침상 인원 전체가 무너졌다. 고참들이 다시 자세를 잡는 동안 재수는 고참을 쓰러뜨렸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발길질을 당했다. 밟히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호흡이 안 돼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얼차려 열외를 받은 병장급 고참들은 태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씨발. 자세를 잡게 해 주고 얼차려를 시켜야지 일어나기도 전에 왜 자꾸 패냐고. 개새끼야.’
이를 악물고 겨우 자세를 잡았건만 내무반 문이 왈칵 열리며 당직사관이 소리쳤다.
“야, 전병장 그만해라. 다른 소대 애들 못 자잖아.”
겨우 자세 잡았더니. 뭐지. 이 서운함은?
재수는 이튿날은 고참들에게 폐 끼쳤다는 이유로, 셋째 날은 애인이 없다는 이유로, 넷째 날은 누나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하여간 갖가지 이유로 이 고참 저 고참에게 구타와 얼차려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재수는 내무반 생활 규칙도 외워야 했고 총기 일련번호도 외워야 했으며 부대 고유 구호와 부대 고유 군가도 외워야 했다. 한자라도 틀리면 여지없이 발길질이 날아들거나 얼차려가 실시됐다. 이등병 주제에 코 골았다는 이유로 불침번에게 개머리판으로 이마를 강타당하기도 해서 잠도 선잠을 자야 했다.
어떻게 한 주가 지났는지 모르게 주말이 됐다.
토요일 오후, 재수는 계단 옆에서 담배를 물고 서서 오른쪽 약지를 문지르고 있었다.
“미련한 놈. 딱 눈치 봐서 적당히 쓰러지고 한두 대 맞고 또 자세 취하고 해야지, 그걸 끝까지 그러고 있냐?”
옆에서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던 최 상병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배치받은 후 셋째 날도 역시 어김없이 저녁 점호 후 얼차려기 실시됐었다. 하지만 그날은 전병장이 뭣 때문인지 뚜껑이 제대로 열려서 미친개 마냥 날뛰다 교육대에서도 받아 보지 못한 얼차려를 시켰는데, 그것은 관물대에 발을 올린 상태로 헬맷을 바닥에 놓고 헬멧 위에 군번줄을 놓은 후 깍지 낀 손가락을 군번줄에 올려 버티는 신종 얼차려였다. 얼차려에 익숙한 고참들도 이 신종 얼차려에는 맥을 못 췄는데 체중의 절반 이상을 깍지 낀 손가락에 실어 버티느라 손가락뼈가 부러질 듯 아픈데 둥근 헬멧 위에 군번줄을 놓고 그 위에 깍지 낀 손을 놓고 있자니 본능적으로 체중을 줄이려 온몸에 힘이 들어가 몇 십 초 만에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 땀이 군번줄 위에 떨어지고, 그 땀에 손은 미끌미끌 흔들리기 시작하고, 일 분이 채 안 돼 미끈하는 순간 옆으로 뒹굴고, 이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재수가 미끄러져 넘어지면 제일 쫄다구가 하늘 같은 고참들에게 폐 끼쳤다는 이유로 발길이 날아들고, 다시 미끄러지고, 또 폐 끼치고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전 병장이 스스로 고안했다는 이 얼차려는 얼마나 심층적 연구를 했는지 1차, 2차, 3차 고통을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가하며 제일 쫄다구에겐 심리적 부담감까지 얹는 과학적 설계임에는 분명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삐뚤어진 인성의 전 병장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고문이란 게 이런 걸까? 그날 재수는 전 병장이 고문 기술자로 보였다. 그날 삐끗한 재수의 오른쪽 약지가 부기가 가라앉고 나니 중간마디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기형이 된 것이다. 재수는 전 병장이 제대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했다. 전 병장만 없어도 숨구멍이 트일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제대하면 전라도 땅 끝까지라도 찾아가 평생 기어 다니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가 제대하면 당장 휴가를 나가 복수하고 싶었지만 일단 그녀부터 만나야 했으므로 아쉽지만 미뤄야 했다.
“...후~~ 최 상병님. 이거...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이제 해만 져도 가슴이 쿵쾅거리지 말입니다.”
“뭐, 얼차려 말이야? 야. 곧 끝나. 신병 들어오면 원래 일주일은 빡세게 굴리는 거야. 우리도 다 겪었어. 삼 년을 이러면 다 탈영하고 자살하지 누가 버티냐?”
최 상병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새 담배를 물었다.
“재수야. 당분간은 없겠지만 자주 맞고 자주 얼차려 받을 거야. 다른 곳은 사단장이 말이라도 구타 금지 어쩌고 하지, 여기 와서는 그런 말도 안 해. 암묵적으로 군기 빡세게 잡으라고 지시하는 거야. 구타와 얼차려로 군기 잡겠다는 발상이 한심하지만 어쩌겠냐. 까라면 까야지. 그냥 받아들여. 그게 마음 편해. 매번 이유를 따지면 괴롭고 힘들어서 못 견뎌. 적당히 요령 부리면서 버티라고.”
담배 연기를 길게 뿜는 최 상병의 표정은 초월한 듯했다. 후임 누구에게나 친절할 뿐 아니라 경우 바른 그는 언행에서 풍기는 푸근함과 달리 간혹 군대 자체를 비난할 때 표정은 사뭇 달랐다. 그는 대학시절 열혈 운동권이라 안기부에서 깜빵과 지원입대 중 선택하라고 해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가끔 군 생활이 유치한 병정놀이라는 둥 어차피 사병은 총알받이임에도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짬밥 놀이를 하는 병신들이라 둥 군대를 비웃는 말을 하는 이유가 그래서였을 거라 짐작만 할 뿐 재수는 그가 하는 철학적이고 비유 가득한 말들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와서 두들겨 패고 혹독한 얼차려를 주는 게 싫고, 어쨌거나 그녀와 갈라놓은 건 군대이므로 이 갈리게 군대가 싫을 뿐인 재수는 최 상병이 단순무식한 놈으로 여길까 그저 입 다물고 있었다. 재수에게 친절할 뿐 아니라 예의 바른 최 상병은 또 많은 고참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투와 굼뜬 행동이 고참들이 그에게 구타나 얼차려를 주는 표면적 이유였지만 재수가 보기에 그보다는 능글능글 거리는 최 상병 특유의 표정 때문인 것 같았다. 고참들이 지시를 할 때도, 그로 인해 지적을 받고 욕을 얻어먹을 때도, 결국 얼차려를 받을 때도 그는 순순히 따르기는 하는데 꼭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니 고참으로서는 얼차려를 주면서도 이상하게 자기가 불쾌할 것이었다. 재수가 보기에 최 상병의 그 특유의 표정은 군대를 비웃고 그에 충실히 따르는 상대를 조롱하는 거였다. 그러고도 역시 느리고 무심하게 그 얼차려를 받아들이는 그가 신기했다.
내무반에 들어와 이번엔 최 상병이 내무반 청소에 관해 규칙을 일러줬다. 사수라는 작자는 또 의무대에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최 상병이 재수의 사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 계급에 따라 청소 구역이 다르고 같은 계급이라도 호봉에 따라 구역이 또 나뉘었다. 재수가 맡은 구역은 창문과 창틀이었다. 재수는 가장 힘든 바닥 청소일 줄 알았는데 이층에 위치한 내무반이라 짬밥이 낮은 재수를 위험한 곳에 배정한 듯했다. 그리고 한 고참이 재수보다 이주 전에 온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는 니 동기나 마찬가지라고.
‘응? 군대 이 주면 엄청난 짬밥 차이 아닌가?’
유경아. 서울 출신에 곱상한 얼굴, 이름까지 여성스러운 그 역시 나머지 한쪽 창틀을 맡았는데, 그는 맹수 교육대가 아니라 논산 훈련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재수와 같은 호봉으로 취급을 받았고 재수에겐 존댓말 사용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맹수 교육대에 비하면 논산 훈련소의 훈련은 애들 장난이라는 게 이유였다. 치사했다. 혹시 맹수가 아니라 고양이 새끼 아닌가 싶었다.
재수는 처음부터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논산 훈련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그가 왠지 불쌍하기도 했지만 서울 출신인 것도, 입대 후 보아 온 ‘나 군인이야.’ 같은 이미지와 상반된 작고 귀여운 얼굴의 외모도 마음에 들었다. 그 역시 청소를 하면서 눈짓으로 호감을 보였고 이로써 재수는 자대에서 한 명의 친절한 고참과 한 명의 고참이자 동기, 자신을 저주하는 동기 한 명을 두게 됐다. 서로 말을 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들만 따로 만날 기회도 없지만 자대가 하도 살벌해서 그런지 재수는 그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을 느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둥 과장됨 없이도 누군가 동질감을 느낄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재수는 난생처음 깨달았다.
자대 배치 후 한 달간 재수는 그녀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베개에 머리만 대면 어느새 아침이었고 이리저리 구르다 보면 밤이었다. 그동안 얼차려나 구타가 육체적 고통이었다면 이놈 저놈 애인 있냐는 질문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녀 생각만 하면 안 그래도 서글프고 안타깝고 원통해 죽겠는데 무슨 고장 난 녹음기처럼 보는 놈마다 애인을 물어보는 통에 그냥 쏴 죽이고 영창 갈까 싶기도 했다.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순간 그때부터 소설을 써야 했으므로 없다고 털어놓으니 없다고 지랄이었다. 한 달쯤 지나 부대 전원이 재수가 애인 없음을 다 알게 된 뒤, 이번엔 소대 서열 두 번째 고참이 재수에게 물었다.
“너 연예인은 누구 좋아하냐?”
아~. 지겹고 끈질긴 것들. 남의 사생활이 왜 그리 궁금한 걸까?
“......네, 강수지 좋아합니다.”
재수는 지겨워서 하는 수 없이 아무나 갖다 대기로 한 게 '보랏빛 향기'의 강수지였다. 떠오르는 대로 아무나 대기는 했지만 영 구라도 아니었다. TV에 강수지가 등장했을 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외모에 홀리긴 했으니까. 하지만 재수는 도둑이 제 발 저려 자신의 땜질에 확신을 주기 위해 싸인 받으러 쫓아다니기도 했다고 생 구라를 보탰다. 허나 재수는 거짓말도 하면 안 되는 팔자인지 며칠 후 그 서열 두 번째 고참이 TV를 보다 말고 급하게 끄더니 재수의 담당 청소 구역을 바닥으로 바꿔버렸다. 그날 저녁에 안 사실은 강수지가 심신인가 뭐시긴가 하고 연애를 한다는 뉴스가 터졌다고 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재수가 알면 이층에서 뛰어내릴까 봐 바꿨다나? 재수는 그 얘기를 듣고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가 이등병 주제에 고참 앞에서 웃었다고 맞았다. 쫄다구 대하기를 동네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들이 연애 관계로 죽고 사는 일엔 참 예민했다. 어쨌든 재수는 구라 친 이유로 힘든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군대에선 진짜 여자 말고 할 얘기가 없나 보았다. 자대 배치 후 재수에게 관심도 없던 사수와 보초 근무가 잡힌 날이면 재수는 아침부터 우울했다. 놈은 쉴 새 없이 자기가 입대 전 사귀었던 연애 얘기로 보초 시간 두 시간을 꽉 채웠는데, 어릴 때 관심을 못 받고 컸는지 재수의 리액션이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대가리박아를 시켰다. 그렇다고 리액션이 너무 과해도 안 됐다. 진심이 느껴지도록 반응해야 했다. 반응이 작위적이다 싶으면 총구에 손가락을 끼고 소총 전체를 들어 올리는 엽기적인 체벌이 가해졌다. 얘기도 좀 공감이 가야 적절한 반응을 하지, 재수는 그의 얘기를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데다 온갖 제 자랑이었다. 그의 구라 속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제 앞에만 서면 마법에 걸린 여자처럼 고백을 했다.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전국구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걸 제 얘기처럼 꾸민 것이 분명했다. 놈은 상상 속에서 세상 모든 여자를 사귀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놈이 꼭 연쇄 살인범이던데. 재수는 같이 보초를 서다 그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한 번은 그 얘기 저번에 들은 얘기라고 했다가 보초 시간 두 시간 내내 엎드려뻗쳐를 당하기도 했다. 변태 새끼.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구라 밑천이 다 떨어졌는지 재수의 과거 연애사를 펼치라고 음흉한 눈길로 다그쳤다. 재수는 군바리들이 좋아할 만한 연애사가 없어 고심하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떠올렸고 이내 몸서리를 쳤다. 놈 같은 저질 변태 새끼 앞에서 그녀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녀가 더럽혀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자동으로 대가리박아를 해버렸다.
자대배치 후 한 달쯤 지나 부대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재수는 비로소 그녀의 모습이 다시 선명해졌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일부러 더 그녀 모습을 떠올렸다. 꿈으로 이어지길 기도했다. 그러나 그녀는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재수가 어머니께 편지를 부친 지 일주일이 됐건만 아직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내 얘기를 전하셨을까? 그녀를 알아보고 만나기는 했을까? 어쩌면 어머니가 말한 여자는 그녀가 아닌가?’
재수는 날이 갈수록 불안감이 심해져 별별 공상으로 괴로워하며 침상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