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14화

-정찰 그리고 북한의 날-

by 미스틱

부대 일과와 얼차려, 구타 등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 갈 무렵, 정찰대의 기본 훈련인 정찰 훈련이 닥쳤다. 정찰대의 기본 훈련은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 한밤에 낙하산을 타고 적지라고 가정한 높은 산속에 투입, 산꼭대기에 비트라는 항아리 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잠을 잔 뒤 날이 밝으면 적지를 정찰해 후방에 무전을 날리는 훈련이었다. 훈련 전날 작전 개요를 듣던 재수는 아연실색했다.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첩보위성이 날아다니는 판국에 산속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서 적 동태를 살피다니.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었다. 툭하면 조롱하던 북한군의 전력에 비해 뭐가 첨단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선 땅 구덩이에 다섯 명이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잔다는 이 원시적 발상에 기가 찼다. 군인이 무슨 애벌레야? 그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 개요를 들으며 재수는 불쑥 한 사건이 떠올랐다. 그건 어릴 때부터 한 편의 만화처럼 들어온 ‘김신조 사건’이었다.

1968년. 북한 정찰국 소속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했다. 경찰과 총격전 끝에 대부분 사살되고 투항한 김 신조는 침투 목적에 대해 박정희 목 따러 왔다는 충격적 발언을 한다. 청와대 앞까지 침투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어린 재수와 친구들에겐 그들이 산으로만 시간당 10km를 달렸다는 점, 그러나 군인도 경찰도 아닌 나무꾼에게 발각됐다는 점, 본국에 무전을 쳤으나 회신 암호를 풀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살려 준 나무꾼이 신고를 해 서울의 경계태세가 증강됐다는 점, 국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청와대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검문하던 경찰과 입씨름하다 다가오는 시내버스를 군 병력으로 오인해 수류탄을 던진 후 교전이 시작되고, 이때 혼자 대열에서 떨어져 있던 한 놈은 경찰의 짱돌을 맞고 생포 됐다가 압송 후 무장해제 당하던 중 수류탄 핀이 뽑혀 어처구니없이 뒈진 점 등, 놀랍고 코믹하고 황당한 만화적 요소가 다 있어서 누구는 김신조 일당의 영웅담으로, 누구는 코미디로 여긴 사건이었다.


재수가 그 사건을 떠올린 건 자신이 속해 있는 정찰대 이름부터 임무까지 그들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간 고참들이 우쭐거리며 소개한 정찰대는 행군은 무조건 산으로만 하며, 산악구보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한 팀에 통신병 한 명은 꼭 있고, 통신병은 일정 기간 안에 암호 해독 교육을 수료해 비밀 인가증을 취득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북한의 날에는 종일 북한 말을 쓰고 북한군 소총 사격도 한다는 건 신 조교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이 얼마나 똑같은가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평시라 해도 자신들에게 김일성 목 따오라는 명령이 내려질지도 모를 일이고 적진까지 시간당 10km씩 산악구보로 침투해 북한 군복으로 갈아입고 어설픈 북한 말을 쓰다 짱돌을 맞고 체포되거나 실수로 뽑힌 수류탄에 장렬히 폭사할 수도 있는 거였다.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나 정찰대나 무척 어설픈 건 분명했다. 아마도 김신조 사건 이후 그들을 따라서 정찰대를 만든 건 아닐까 재수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달빛도 없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재수가 속한 1소대 1팀은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1분도 늦지 않게 임무 하나를 완수했다. 이제 비트라는 구덩이를 팔 시간이었다. 고참들이 쉴 동안 쫄다구인 재수와 성실한 최 상병이 먼저 야전삽을 들었다. 입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야 했다. 그리고 상체를 구멍에 처박고 오로지 팔과 손목 힘으로만 다섯 명이 들어갈 크기의 항아리 모양의 구덩이를 만들어야 했다. 재수는 힘차게 야전삽을 내리쳤다.


"깡!!"


분명 흙을 팠는데 바위 친 소리가 났다.

“야. 옮기자. 심하다.”


사수인 김 상병이 군장을 짊어지며 말했다. 최 상병과 나머지 고참들이 야전삽을 꺼내 들고 산개했다. 그리고 이곳저곳 여기저기 내리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바위가 없는 지점을 찾는 것 같았다. 깡! 깡! 깡!.... 퍽!!!!!

“여기다. 여기 파라.”


소대 세 번째 서열 심 병장이 말했다. 재수는 다시 군장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일 미터도 파 들어가기 전에 또 깡 하고 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심 병장님. 여기도 돌입니다.”


“그냥 파. 여긴 다 그래. 그 정도면 양호하다.”

이게 양호하다고? 그들의 훈련 지역 일대가 일명 마사토라고 했다. 암석이 부서져 흙이 된 거라나? 임무도 북한군 흉내를 내더니 암석도 흙 흉내를 내고 있었다. 부대 연병장 모래가 그래서 그렇게 굵은 거였다. 그래서 ‘대가리 박아’를 하면 머리껍질이 찢어지는 거였다. 재수는 돌인지 흙인지 모를 땅을 파며 생각했다. 야전삽과 부딪칠 때마다 불꽃을 튀기며 요란한 굉음을 내는데 이건 한밤중에 적진에 들어가 꽹과리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날 밤 다섯 명이 돌아가며 비트 하나를 파는데 꼬박 일곱 시간이 걸렸다. 어떤 팀은 팀장이 멍청해서 밤새 다른 지점에 비트를 파고는 결국 목표지점에서 종일 다시 파는 경우도 있었다. 하물며 만약 북한의 산이 돌산이면? 군인정신으로다가 밤새 삽으로 돌을 깨? 말 그대로 '삽질'을 하며 재수는 한숨인지 모를 숨을 몰아쉬었다. 구덩이에 상체를 박고 두 시간씩 삽질을 하고 나니 팔다리 후들거리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이 상태로 적을 만나면 총이나 제대로 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게다가 무전기는 통신두절 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무전기 안테나에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묶은 후 그 끝을 근처 높은 나무 꼭대기에 걸쳐 놓은 후에야 겨우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전파가 잡혔다. 해서 나무 타는 법도 배워야 했다. 식사도 비트 안에서 해결해야 했는데, 전투식량 봉지 안에 찬물을 부어 봉지채로 땅속에 묻고 그 위에 불을 피우는 희한한 방식으로 불려 먹었다. 어차피 불 피우는 건 똑같은데 왜 봉지에 찬물을 붓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비트 안에서 연기에 켁켁 대다 두더지마냥 한 사람씩 비트 밖으로 고개만 내밀고 산소를 흡입하는 짓을 반복해야 했다. 비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는 어떡하고? 북한군이 그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재수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는 불이 필요 없는 육포나 굳은 미숫가루 등 특전 식량을 먹어야 하는데 훈련이라 봐줬다나? 그래도 그런 개고생을 한 후 고참이 몰래 인가에 내려가 사 온 라면을 끓여 먹는 맛만큼은 북한군이고 뭐고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꿀맛이었다. 병장급 고참이나 되니 감시조나 순찰관 눈을 피해 인가로 갔지, 쫄따구였다면 벌써 걸려 군기 교육대 신세를 졌을 것이라고 최 상병이 일러줬다. 재수는 그날 야전 반합에 라면을 다섯 개까지 끓일 수 있다는 신비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튼 어설픈 간첩훈련을 한답시고 행군도 산악으로만, 그것도 야간에만 하고 불꽃 튀는 삽질을 하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적 탱크 삼아 무전 치는 병정놀이를 위해 삼 년의 청춘을 보내야 하나 싶어 재수는 소리 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신 조교에게 들은 북한의 날이 됐다.

그날은 정말로 기상부터 야간 점호 때까지 하루 종일 북한 말을 썼다. 담배도 긴장을 하고 피워야 하는 이등병 신세라 고참과 스치기만 해도 무조건 관등성명이 튀어나와야 했는데, 반사적으로 나오는 관등성명을 어찌 북한말로 한단 말인가. 재수는 뒤통수가 남아나지 않게 맞았다. 북한군에 발각됐을 때를 대비해 북한말을 배우는 것인데, 재수는 만약 북한에 침투해서 누군가 자신을 툭 치면 바로 대한민국 관등성명이 튀어나올까 겁이 났다. 해서 제발 긴장 풀린 고참이 된 후 전쟁이 났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교관을 맡은 2 소대장은 말끝마다 자꾸 특수 훈련이라고 했다. 특수 훈련이든 첨단 훈련이든 이런 건 안기부 같은 곳에서 특수 요원들에게 시킬 일이지 삼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북한 말을 쓴 사병 나부랭이들이 할 일인가?

북한의 날 하루 동안 재수가 조금이라도 훈련에 공감을 하거나 실감한 건 딱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북한 군복은 입고 벗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 북한 군복은 상의 윗부분에 서너 개 단추만 있어 티셔츠처럼 머리부터 집어넣어 입어야 했는데, 신축성이라곤 소가죽 같아서 벗을 때 거의 눈가리개를 한 채 코끼리 코를 하는 모양새가 됐다. 두 번째는 북한군이 된 기분을 살짝이라도 느낄 수 있는 AK 소총 사격이었다. 영화에서만 본 러시아제 소총은 그 위력이 어마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타겟이 너덜거릴 만큼 살상력이 뛰어나지만 탄환 구경이 국산 소총보다 훨씬 크고 그만큼 반동이 심해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단점이었다. 문제는 그걸로 야간 사격을 해서 열 발 중 여덟 발 명중 이하는 얼차려를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교육대 사격에서 만발을 한 재수도 턱걸이로 통과했으니 전쟁이 난다면 갈지자로 몸만 잽싸게 움직이면 총알을 피해 적의 코앞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재수는 생각했다.

오후에는 북한 관련 비디오를 시청했다. 왜 시청각 교육은 중식 직후에 하는 건지, 식곤증을 이기나 지나 보려고 하는 짓으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침부터 구르고 중식 후 컴컴한 내무반에 옹기종기 모여 지루한 비디오를 보며 졸지 말라는 건 재수에게는 그냥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좁은 내무반에 다 모여 있으니 열기와 이산화탄소가 졸음을 가속화시켰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는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게 시간이었다. 허벅지, 종아리, 허리 등 눈에 안 띄는 부위를 멍이 들도록 꼬집어도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은 마치 신경계가 따로 노는 듯 아무 도움이 안 됐다. 고참들은 TV화면을 보지도 않고 어떤 놈이 조는지 감시하는 게 임무인 것처럼 컴컴할 뿐 아니라 다닥다닥 붙은 그 많은 인원들 속에서 눈을 감는 쫄따구를 귀신같이 찾아내 헬멧으로 내리쳤다. 희한한 건 그렇게 맞고도 또 5분이 안 돼 눈이 또 감긴다는 거였다. 비디오나 좀 관심을 끌만한 거라면 또 모르겠는데 6, 70년대 북한 실상과 북한군 전력을 마치 지금 상황처럼 주절대는 내용이었으니, 재수는 자기같이 군대 무지렁이도 아는 거짓말을 저리 천연덕스럽게 목에 힘주어 말하는 걸로 보아 분명 국방부를 비롯해 별을 단 장군들은 사병 알기를 동네 유치원생으로 아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북한의 날 하루가 저물고 저녁 점호 때, 재수는 당직 사관에게 북한 말을 썼다가 헬멧으로 머리통을 맞았다. 북한의 날은 저녁 점호 시작으로 끝이 난 걸 몰랐다.

봄의 막바지가 되도록 소식이 없어 마음 졸이던 차, 재수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삐뚤빼뚤 맞춤법도 죄다 틀린 한 장 짜리 편지였지만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건강을 묻는 부분이 지루하게 이어지더니 마지막 부분에 재수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그녀에 대한 얘기가 달랑 한 줄 적혀있었다.

‘니가 말한 그 애는 도통 안 보인다? 나중에라도 보면 내 꼭 안부 전해주마.’

설마 학원을 옮겼나? 불안감에 기운이 쭉 빠졌다.


'아니다. 장사에 바쁜 어머니가 그녀를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녀를 못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말도 안 되는 군 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재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불안감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얼른 휴가를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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