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15화

-실종자 수색-

by 미스틱

재수가 초조해 정신병이 날 지경까지 이른 어느 날, 부대에 사이렌이 울렸다.

재수는 전쟁이 난 줄 알고 번개같이 일어나 군장부터 꾸렸다.


‘젠장. 긴장 풀린 고참 된 후에 전쟁 나라니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재수는 군장을 꾸리면서 아직 북한말이 아직 입에 배지 않아서 북한군이 툭 치면 대한민국 관등성명이 튀어나오는 제 모습을 상상했다. 더구나 아직 낙하산도 안 타봤으니 그냥 자유낙하해서 땅에 처박히는 상상도 했다. 이런저런 절망적 상상을 하며 군장을 꾸리는 재수를 보고 전 병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하하. 워매. 저 또라이 새끼 보소. 니 지금 뭐 허냐? 혼자 어디 갈라고 그러냐?”


재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군장을 꾸리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고 다들 군복만 천천히 입고 있었다. 뭐지?


“그래도 동작 하나는 잽싸구마. 아야. 군장 풀어라. 전쟁 아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이렌도 종류가 있었다. 전쟁이나 계엄 때와 경계 강화, 그리고 다른 이유로 급히 출동할 때 울리는 사이렌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울린 사이렌은 비상 사이렌이 아니고 실종자 수색을 위한 출동 사이렌이었다.


맹수부대가 위치한 지역에는 골이 깊은 산이 유난히 많았다. 또 요양원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치매 노인 실종 사건이 많았다. 집이나 요양원에 멀쩡히 계시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면 자식들은 당연히 경찰서로 연락을 취한다고 했다. 그러면 경찰서는 자기들이 찾을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정찰대로 연락을 하는 거였다. 허구한 날 산속에서 생활하는 부대인 데다 근방 모든 산의 지리를 꿰뚫고 있으니 실종자 수색엔 정찰대가 적격이었던 것이다. 고참에게 듣기론 일 년에 서 너 번은 그런 수색이 있고 고참들이 출동하면 대개 서너 시간 안에 실종자를 찾아낸다고 했다. 개중엔 멀쩡히 경찰서로 인계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이나 겨울에 실종사건이 생기면 이미 돌아가신 후 발견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쨌건, 그 험한 산에 열 명이 나가 서너 시간 만에 실종자를 찾는다니. 재수는 정찰대는 북한으로 넘어가는 훈련을 할 게 아니라 아예 실종자 수색대로 이름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대에 두더지마냥 땅이나 파고 들어가고 터지지도 않는 무전기를 두드리느니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게 진짜 국민을 위한 군대가 아니겠는가?


훈련이 많아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벼를 베거나 삽질하는 수해복구도 아니고 등산도 아니면서 그 험한 산 구석구석을 수색해 사람을 찾는 일까지 해야 한다니.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던 재수에게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 전해졌다. 실종자를 찾은 대원에겐 사단 포상휴가가 내려진단 거였다. ,


‘음.. 국민이 원하는 일이면, 그것도 사람을 구하는 일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군인이 나서야지. 암. 그렇고말고’

재수는 생각을 고쳐먹고 있을 때 방송이 터졌다.


"실종자 발생. 실종자 발생. 전 대원 반 군장으로 집합!!"


재수는 꾸렸던 완전 군장을 반 군장으로 바꾸며 생각했다.


‘홍길동처럼 이산 저산을 누비리라. 그래서 기어코 휴가를 받아 내리라.'


하지만 그건 이등병치고 너무 야심 찬, 아주 맹랑한 생각이었다. 실종자 수색은 전 대원 모두가 나가는 게 아니라 지원자에 한해서, 그것도 고참 위주로 선발한다는 것이라는 걸 재수는 몰랐다. 하~ 그 소식에 재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하늘은 어떨 땐 도와주고 어떨 땐 매몰찬 건지, 재수 앞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지원자가 아홉 명밖에 안 되는 거였다. 아니, 휴가가 걸렸는데 왜? 하루라도 빨리 휴가를 나가야 하는 재수의 절박함이 무대뽀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저도 출동하고 싶습니다.”

“넌 임마. 이등병이 무슨..”

“이병 노재수. 난 할 수 있다!!”


재수네 소대장인 조 중사라는 자는 공수훈련이니 특공무술이니 하는 일명 특수 훈련을 당당했던 무술 고단자였는데 태권도, 합기도, 쿵후 합쳐서 십칠 단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머리는 매우 나쁘다는 소문도 함께 돌았다. 실제로 암기가 필요한 훈련에선 자주 열외 되곤 해서 소문이 소문만은 아닐 거라는 의심이 있었다. 특히,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혼자 중얼거리며 각종 무술 동작을 하는 게 특기였는데, 술도 좋아해서 혼자 중얼거리며 쿵후 동작을 할 때는 십중팔구 술에 취해 있을 때였다. 언젠가는 대위 계급인 작전 장교가 훈시를 하는 도중 연단 밑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합기도 동작을 뽐내다 정신 사납다고 마이크로 욕을 먹기도 했다. 실제로 조 중사는 전술 훈련 때 보니 지휘 통솔 능력이나 전술 능력은 전무했다. 그는 오직 군인정신, 도전정신만 강조하는 불도저형 군인이었다. 아마 전쟁이 난다면 상황파악이고 나발이고 없이 무조건 돌격 앞으로만 외칠, 아니, 어쩌면 람보처럼 혼자 기관총을 난사하며 적진으로 뛰어들 인물이었다. 그래서였다. 부대 역사상 처음으로 실종자 수색에 이등병을 투입시킨 것은. 물론 재수가 조 중사 특성을 파악하고 그의 입맛에 맞는 소리를 외쳤지만 다른 소대장이었으면 절대 불가한 일이 벌어졌다.


“전 부대 모든 훈련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안 되면 되게 하겠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음. 진짜 할 수 있겠어?”


야심한 시각 비까지 쏟아지는 산속은 으스스했다. 재수를 포함한 열 명은 지도를 펼치고 각자 수색할 지역과 집결지를 정하고 흩어졌다. 재수가 배정받은 곳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길이었다. 아마도 선임병장이 이등병이라고 쉬운 산길을 배정해 준 것 같았다. 물론 고참들은 길도 없는 산비탈이나 바위능선을 뒤졌다. 아마 실종자 대부분이 산길보다 산비탈을 오르다 미끄러지거나 바위능선으로 추락해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한 거라 생각하니 재수는 고참들이 얄밉고 야속했다.


‘휴가 같은 건 쫄따구 한테 좀 양보할 것이지. 치사한 놈들.’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재수는 계곡 물소리를 따라 산길을 탔다.

산 중턱쯤 왔을까. 실종자가 등산객이 아닌 이상 정상까지 갔을 리 없다고 판단한 재수는 그때부터 횡으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판초우의를 입었지만 목부터 파고든 비가 온몸으로 파고들어 이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 실종자는 땅바닥 어딘가에 쓰러져 있으리라 판단한 재수는 눈을 부릅뜨고 나뭇가지로 나뭇잎 쌓인 땅을 휘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그때 재수는 무언가 물컹한 물체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중심을 잃고 데굴데굴 굴렀다.


‘뭐지. 사람인가? 사람이어야 하는데... 실종자가 맞아야 하는데...’


재수는 가까스로 몸을 멈춰 세운 후 다시 비탈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며 속으로 되뇌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 물체는 다시 본 재수는 흐헉! 하고 한숨 같은 비명을 질렀다. 시커먼 물체가 공중에 붕 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목을 맨 시체였다.


“삑~~ 삑~~”


재수는 눈을 질끈 감고 호루라기를 불어 댔다.


시체를 경찰서에 인계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땐 아직 새벽이었다. 수색 두 시간 만에 실종자를 찾아낸 것이다. 부대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다음날 부대장이 직접 내무반을 찾아와 재수의 공로를 치하했다. 덕분에 이등병을 수색작전에 투입시킨 소대장도 칭찬받았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사단에서 포상휴가가 내려졌지만 이미 정기 휴가자가 많아 보초를 설 사람이 없어 정찰대 대장에 의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인원 전부 휴가가 취소됐다. 부대 인원이 적은 게 문제였다.


‘씨발. 되는 게 없네.’


고참들이 지원을 꺼려한 이유를 재수는 그제야 알았다. 짬밥이란 그런 거였다. 그들은 어차피 휴가 못 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그지 같은 부대였다. 활주로까지 있는 항공대와 막사를 같이 쓰니 부대는 어마한데 정찰대 인원은 정예부대랍시고 대장과 장교, 부사관들 빼고 칠십 명 대원이 전부였다. 급조된 부대다 보니 항공대 막사를 빌려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그 적은 인원으로 남의 활주로 보초까지 설 이유가 없었다.


‘막사까지 빌려 쓰면서 뭐? 항공대 애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우러러본다고? 꼴값하네.’


재수가 어떤 일을 닥칠 걸 알고 준비할 때 가장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버릇이 생긴 건 이때부터였다. 죽어라 기를 썼건만 연거푸 휴가가 취소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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