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조 중사-
산악 행군 훈련 날이 되었다.
재수는 교육대에서의 행군이 생각 나 며칠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군화를 직접 신어보는 등 치수를 세심히 살피고 그나마 잘 대해주는 고참들에게 발에 물집 안 잡히는 요령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요령이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말년병장들이 여자 스타킹을 신는 정도? 하지만 이등병이 스타킹을 구할 도리도 없고 그저 ‘비탈에서 발을 디딜 때 비스듬히 바닥에 군화가 박히도록 콱콱 밟아라.’가 전부였다. 도로도 아니고 오로지 산으로만, 그것도 야간에만 행군하는데 물집 안 잡힐 어떤 요령도 없다니.
‘저것들이 괜히 나만 뺑이 치게 만들려고 구라 치는 거 아냐?’
밤 10시. 행군이 시작됐다.
부대 앞 도로를 횡단해 곧장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산비탈이나 계곡 바위를 타고 무작정 산을 넘어야 했다. 캄캄한 밤에 눈에 불을 켜고 발 디딜 곳을 찾아가며 산을 오르다 보니 발이 아픈지 어떤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까딱하면 비탈을 구르거나 바위에서 추락하게 될 터여서 한발 한발 조심조심 디디며 걷다 보니 일반 행군보다 체력적으로 몇 배 더 힘들었지만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일은 없었다. 적어도 고참들이 구라 친 건 아니었다. 그저 다리 힘과 허리힘이 좋아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건 없었다.
교육대 행군과 다른 건 또 있었다. 그땐 50분에 한 번씩 10분간 휴식이 있었지만 정찰대 산악 행군에 그딴 게 없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산 정상에 도달해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마한 체력이 필요했다. 재수네 소대도 드디어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처음 휴식이 주어졌다. 그리고 재수는 교육대 행군과 또 다른 게 있음을 알게 됐다. 정찰대 산악행군은 휴식 때 앉아서도 안 되고 누워서도 안 됐다. 군장을 맨 채 무릎만 땅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쉬어야 했다. 그 이유는 앉거나 누우면 적과 조우했을 때 즉각 전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니, 정상에 우르르 모여 있으면 적이 발견하기 더 쉬운 거 아닌가? 우리 잡아가쇼 하고 정상에 우르르 모여 있으면서 적과 조우하면 대응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 재수로썬 우습기 짝이 없었다. 대체 정찰대 임무와 전술은 누가 짠 걸까? 재수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그놈이 누군지 국민 앞에 앉혀놓고 청문회를 하고 싶었다.
재수는 무릎 꿇고 엎드린 자세로 잘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일반 행군보다 몇 배의 체력을 쏟다 보니 그 자세에서도 눈이 감겼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꿈까지 꿨다. 재수가 산을 넘어 서울로 가는 꿈이었다. 산 너머엔 서울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재수는 군장을 맨 채 산비탈을 번개의 속도로 내려갔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곧바로 청담시장이 나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호떡을 굽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수는 그 차림 그대로 어머니 옆에 서서 잔돈을 거슬러 줬다. 완전 군장을 한 채로 돈을 받고 거슬러줘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무진동으로 자신 앞으로 다가왔다. 예의 그 우수에 젖은 눈빛이었다. 재수는 얼른 호떡 하나를 곱게 싸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금세 표정을 풀고 방긋 웃었다. 그녀가 방긋 웃는 순간, 때맞춰 ‘땅~’ 하고 캐논 변주곡이 흘렀다. 금은방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게 하나도 안 이상했다. 그녀는 그 리듬에 맞춰 고개를 살살, 우아하게 저었다. 호떡을 오물조물 먹으며 고개까지 젓는 그녀의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이 재수는 한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때 누군가 재수에게 소리쳤다.
“야! 어디쯤이야.”
지금 제 나와바리인 호떡집에 서 있는 자신에게 누가 감히 호령하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평소의 시장 모습일 뿐 자기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또다시 불같은 호령이 들렸다.
“어디냐고?!!”
그건 분명 소대장인 조 중사 목소리였다. 그때부터 재수는 이게 꿈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꿈에서도 꿈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깨기 싫었다. 계속 아니, 영원히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며 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조 중사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탕!!”
천둥처럼 메아리치는 총소리에 재수는 눈을 번쩍 떴다. 앞에는 조 중사가 씩씩대며 한 손엔 무전기 수화기를, 한 손엔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야. 10분 준다. 그 안에 도착 못하면 니들 다 쏴 죽여 버리는 거야. 알았어?!!!”
짐작컨대, 후발 2소대 도착이 늦자 조 중사의 또라이 버튼이 눌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야간에, 그것도 산악행군을 하면서 총을 쏘다니. 조 중사는 또라이가 분명했다. 조 중사의 또라이 짓은 다음 산 정상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에도 2소대가 도착이 늦어졌다. 재수는 또 총을 쏠까 봐 잠도 못 자고 엎드린 채로 조 중사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이번엔 무전도 안 때리고 혼자 쭈그리고 앉아 중얼중얼 2소대 욕을 하는데, 가만 보니 탄창에서 실탄을 뽑고 있었다. 재수는 대체 뭔 짓을 하려고 저러나 궁금해서 피곤도 잊고 조 중사를 살폈다. 조 중사는 실탄의 탄환을 하나하나 분리하더니 탄피에 든 화약을 제 앞 한 곳에 쏟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는...
군용 라이터를 켜더니 화약에 불을 붙였다.
‘퍽!!’
화약은 어마한 불꽃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터지듯 타 올랐다. 그리고 이내 화약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압권은 연기가 사라지고 난 후였다. 조 중사의 헬멧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고, 그는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그 모습이 하도 만화 같아서 대열 여기저기서 큭큭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재수는 웃을 수 없었다. 저 또라이가 자신의 소대장이라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저런 걸 소대장으로 뒀으니 앞으로 군 생활이 얼마나 험난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대체 저 또라이는 왜 저런 짓을 한 걸까? 혹시 한 겨울 산속에서 몸이 얼었을 때 몸을 녹이는 생존 방법을 보여주려고 한 걸까? 그렇다면 순식간에 터지듯 타버리는 화약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재수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또라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재수는 조 중사를 엽기 조 중사라 불렀다. 물론 속으로 말이다.
야간 산악 행군은 산을 열 개쯤 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대원들이 부대로 복귀한 시간이 다음날 오후 2시니까 꼬박 16시간 행군을 한 셈이었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과 험난하기로 유명한 운악산 그리고 관광명소인 유명산, 명지산 등 산 십여 개를 산길도 아니고 비탈과 바위를 타고 넘는데 16시간이라니. 재수는 고참들을 따라가기 바빴지만, 어쨌건 오랜만에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교육대 행군 때 질질 짜며 걸었던 것과 비교하니 더욱 그랬다.
행군은 끝났지만 정찰대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계속 됐다. 위병소를 지나자 연병장에 출장 뷔페처럼 음식이 쌓인 테이블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수는 그건 일종의 관습이고, 매우 좋은 관습이라고 생각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온 대원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 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착각임을 깨닫기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렸다. 대원들은 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씻지도 못한 채 군장만 풀고 연병장으로 집합해야 했다. 그리고 곧장 막걸리 파티가 이어졌다. 재수가 이상하게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테이블 건너편엔 장교 및 부사관들 아내들이 서 있었는데 아직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풀지 못한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식은 그들이 준비한 것 같았다. 아니, 왜 장교와 부사관 아내들이 대원들의 회식 음식을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 재수를 경악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자 갑자기 노래방기기가 켜지더니 아무나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테이블 너머에 있던 장교와 부사관 아내들이 앞으로 나와 대원들과 부르스를 추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재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들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아 지시에 의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장교와 부사관들은 테이블에 앉아 똥 씹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재수는 아무리 명령대로 움직이는 무식한 군대라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또 들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긴 군 생활을 할 자신의 자대이지만 정말이지 해괴망측하고 저급한 부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제대 후에도 정말이지 정이 안 갈 것 같았다. 지칠 대로 지친 대원들은 금세 취했고 이내 엎어지고 싸우며 여기저기서 난동이 일어났고, 막걸리 파티는 한 시간이 안 돼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