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면회-
토요일 오후. 모처럼 부대 전원 개인 정비 시간을 갖게 됐다.
다들 빨래를 하고, PX를 가고, 내무반에서 과자 파티를 하고 있을 때, 사수인 김 병장은 재수의 군복을 다리고 있었다. 재수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기 때문이었다. 재수는 그 모습을 답답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냥 입던 군복을 입고 그대로 가면 될 텐데 싸제인에겐 절대 박박 구른 티를 내면 안 된다며 사수는 마음 급한 재수를 그대로 보내주지 않았다. 다행히 자대에서 머리를 깎은 지 얼마 안 됐고, 군화도 평소 잘 닦아놨기 망정이지 아마 두발 정리와 군화 광까지 내라고 했으면 재수는 속이 터져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것이었다.
PX 겸 면회실에 들어서자 재수 부모님과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삼 개월 만에 만났을 뿐인데,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듯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재수가 면회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급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그녀의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들 걱정에 건강부터 묻는 부모님께 그녀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재수도 부모님 안부와 장사 소식을 묻고 다 같이 위병소를 지나 시내로 향했다. 부모님이나 애인이 면회를 오면 특별한 부대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외박이 주어졌기 때문에 재수는 좀 더 느긋할 수 있었다. 재수는 부대 근처 읍내에 불고기 집이 왜 그리 많은지 알게 되었다. 토요일의 읍내 불고기 집이란 불고기 집은 죄다 면회객들로 들어차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어렵게 자리 잡은 불고기 집에서 재수는 마치 며칠 굶은 놈 마냥 3인분을 혼자 먹어치웠다. 싸제인일 땐 그저 그랬던 불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평생 먹어 왔던 밥은 또 왜 그리 맛있는지. 군대 짬밥이 얼마나 후졌는지 실감하며 재수는 밥을 두 공기나 해치웠다. 그런 재수를 어머니는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고기를 굽느라 여념이 없었고, 재수 아버지는 늘 그랬듯 소주를 두 병째 비우고 있었다. 재수 누나는 자기를 흘끔거리는 군바리들을 같이 흘끔거리며 이쁜 척하느라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각자의 안부도 오갔고, 들어봤자 알아들으실 리 없는 군대 얘기도 할 필요 없어서 재수는 이제 그녀의 안부를 슬쩍 물었다.
“근데, 엄마. 저번에 얘기했던 그 여자. 아직도 안 나타났어?”
“...? 아~ 그 이상하게 화장한 여자 말이지? 왔었다, 왔어!!”
으아~ 드디어... 재수는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뭐래? 응? 내 안부 물어봐?”
“그럼. 물어보더라. 군 생활 잘하고 있냐고.”
아~ 드디어 살 것 같았다. 그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기쁘고 기쁜 나머지 목이 메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이렇게 어머니를 통해 내 안부를 전하고 주소를 다시 받아내면 되는 건데, 아 놔. 이렇게 풀릴 일을 난 왜 그동안 혼자 죽도록 마음 고생한 거야? 어쨌든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재수는 그간 교육대부터 지금까지 마음 고생한 게, 정신병이 걸릴 만큼 초조해했던 게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 소식은 재수의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했다.
“그리고 자기도 곧 직장 옮긴다더라.”
“....응? 직장?”
재수는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직장인이 아닌데?
“아, 학원 옮긴다고?”
“아니야. 저기 성수동인가 어딘가 백화점으로 간다더라. 거기 화장품 가게로.”
아니, 화장품가게라니. 설마 그녀가 요 몇 달 사이 화장품 가게 직원이 됐단 말인가?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이 덮쳤다.
“그 여자 웃긴다. 자기 직장 옮기는 걸 왜 엄마한테 말해?”
재수 누나가 톡 끼어들었다. 재수는 상추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재수 누나는 얼른 제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엄마. 그 여자 어떻게 생겼는지 다시 한번 얘기해 봐. 키는 이만하고 눈썹 화장 짙고.. 또.”
“그래. 키 그만하고 화장 이상하고 또...”
재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됐다.
“근데, 그 여자 너한테 쪽지 준 적 없다는데? 하여튼, 그래도 이 애미가 대뜸 주소 물어보는 건 좀 이상해서 어디서 일하는지 물어봤지.”
재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마친 냥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쪽지 준 적 없다고?'
재수는 이미 낙담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여자 알고 봤더니 엄마랑 같은 그 시장에서 일하더라. 그 왜 시장 입구에 화장품 가게 있지? 거기서 일한다더라.”
‘아니었구나.'
재수는 다시 한번 땅이 꺼지는 걸 느끼면서 한 여자를 떠올렸다. 시장 입구에 있는 화장품 가게 여직원이었다. 아침에 리어카를 끌고 지날 때면 일부러 문밖에까지 나와 인사를 하던 여자. 화장품 가게 직원이라 그런지 화장을 짙게, 그렇지만 촌스럽게 한 여자. 가끔 호떡을 사러 와 쓸데없이 무슨 음악을 듣는지, 자기에게도 한 번 들려 달라고 귀찮게 굴던 여자. 재수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던 여자.
재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먹었던 고기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잠깐 화장실 좀...”
“으이그. 미친 듯이 처먹더라니.”
화장실로 다급히 걸음을 옮기는 동안 등 뒤로 누나의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볼 힘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재수는 변기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먹은 걸 다 토했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어머니의 그녀 소식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어머니만이 그녀와 나를 연결해 줄 유일한 끈이었는데. 재수는 순간, 외박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내빼고 싶었다. 그리고 곧장 시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몇 킬로미터 못 가 검문에 걸릴게 뻔했다. 그렇다고 혼자 장사하느라 정신없는 어머니께 장사 때려치우고 시장 골목만 지켜보다가 자신이 말한 대로 생긴 여자를 찾아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몽타주를 그려줄 수도 없는 거였다.
그때였다. 속을 비워서 그런지 머리가 맑아지더니 순간, 재수의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게 있었다. 재수는 벌떡 일어나 휘휘 입을 손바닥을 문지르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왔다.
“누나는 그새 무지 예뻐졌네?”
난생처음 재수에게 칭찬을 들은 재수 누나는 어리둥절해서 고기쌈을 입에 넣다 말고 입을 벌린 채 눈을 껌뻑였다.
“뭘 그렇게 봐. 진짜 그렇다니까.”
어리둥절하긴 부모님도 마찬가지여서 재수 아버지는 입으로 옮기던 소주잔을 그대로 들고 재수와 재수 누나를 번갈아 봤다.
“이게 미쳤나? 너 군 생활이 그렇게 힘드니?”
재수 누나는 고기쌈을 접시에 놓고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로 재수를 바라봤다.
“어. 힘들어.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께 죄송하고, 그간 함부로 굴었던 누나에게도 많이 미안하더라고. 보고도 싶었고..”
재수의 말에 일동은 숙연해졌다.
“재수야.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야 돼.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니 몸 걱정만 해.”
재수 어머니는 또 눈물을 글썽이며 재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재수 누나도 일순간에 재수를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재수야. 나도 너 군대 가고 나니까 너한테 막 대한 게 미안하드라. 에휴~ 군대가 뭔지 왜 멀쩡한 애들을 끌고 가서는..”
이제 분위기는 잡혔다.
“누나.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하나 있거든? 좀 들어줄래?”
“뭐야. 말해. 군대 간 동생이 부탁하는데 뭘 못 들어주겠니?”
난생처음 동생에게서 외모 칭찬과 보고 싶었다는 가슴 찡한 소릴 들은 재수 누나는 역시 난생처음 안타까운 얼굴로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재수를 바라봤다.
“그게.. 시장에 보면 마트 있잖아. 거기 3층에 라사라 복장학원이라고 있어. 거기 가서 사람 좀 찾아주라.”
순간, 누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너 지금 나더러 사람 찾아달라는 거야? 그 여자?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 생판 모르는 그 여자를 나더러 찾으라고?”
“어. 그게.. 어떻게 생겼냐면..”
순간, 재수 얼굴에 상추가 찰싹 달라붙었다.
“그럼, 그렇지. 니가 뭔가 아쉬우니까 예뻐졌네, 보고 싶었네, 헛소리지. 에라이, 나쁜 새끼야.”
재수의 얼굴에 상추 하나가 더 달라붙었다.
“미친놈. 여자한테 홀려가지고 몇 달째 사람이나 찾아달라고 생난리고. 야, 차라리 KBS에 가서 이산가족 찾기를 해. 이 미친놈아.”
“관둬라, 관둬. 내가 부탁할 사람한테 부탁을 해야지, 성질 더러운 너한테 부탁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
“뭐? 너?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재수 누나가 상추를 또 집어 드는 순간 쾅 테이블 치는 소리에 둘 다 움찔해서 동작 그만 자세가 됐다.
“이것들이 시방 부모 앞에서 뭔 짓거리여? 왜 아까운 상추는 집어던지고 지랄이냐 말이여!”
좀체 말이 없던 재수 아버지의 불호령에 재수 누나는 공손히 상추를 바구니에 담았고, 재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긴 제 문제를 가족을 이용해 풀려고 한 자신이 한심했다.
그날 밤 모텔에서 재수 아버지는 일치감치 술에 취해 골아떨어졌고, 재수 누나는 모처럼 욕조에서 몸을 불리겠다고 욕실로 들어갔으며, 재수 어머니만 재수의 술잔을 채우고 안주를 먹이고 있었다.
다음 날 부대 면회소에 모인 네 사람은 어색한 작별식을 하고 있었다. 재수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내며 재수의 건강을 걱정했고, 재수 누나는 늦잠을 자느라 미처 못 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면회소로 소대장 조 중사가 들이닥쳤다.
“맹~~수~~!!!”
재수의 군기 바짝 든 경례를 보고 재수 부모님과 재수 누나는 재수의 안위와 직결되는 높은 사람임을 직감하고 얼른 일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어, 맹수! 노 이병 앉아, 앉아.”
평소 경례도 잘 받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절도 있고 근엄한 목소리로 맞경례를 하더니 친절한 목소리로 재수를 배려하고 있었다. 재수는 부모님 앞이니 무게 잡고 싶어서 그러려니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제가 노 이병 소대장입니다.”
조 중사는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스스럼없이 부모임 앞에 앉았다.
“아들 군대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이 많으십니까. 노 이병은 제가 책임지고 무사히, 몸 건강하게 제대시킬 테니 걱정 놓으시고...”
조 중사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깔고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었다.
“그리고 에.. 우리 노 이병 누님 되시죠? 노 이병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인이시고 무척 상냥하시다고.. 으하하”
재수는 소대장에게 제 누나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부대원들에게도 못 생겼다고 이실직고했다. 재수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재수 누나는 얼떨결에 칭찬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제 부모님과 재수를 번갈아 보는 표정으로 보아 당황한 게 분명했다. 누나는 남자가 집적대면 그걸 즐기는 여자였다. 하지만 재수가 보기에 지금 누나의 표정은 당황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게 분명했다. 하긴, 누가 작은 키에 상고머리, 시커멓고 소도둑처럼 생긴 그에게 호감을 가지겠나.
“노 이병 말대로 참~ 미인이십니다. 그래, 어떻게 애인은 있으신지...”
예의고 나발이고 재지도 않고 제 무식한 머리를 그냥 들이미는 또라이 조 중사의 황당한 질문을 받은 재수 누나는 어이없고 불쾌했지만, 재수의 군 생활을 좌지우지할 소대장이라니 어색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또라이 새끼.’
이제 그가 나타난 이유를 파악한 재수는 좌불안석이 됐다. 재수는 제 누나에게 눈짓으로 어서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고, 곧바로 눈치챈 재수 누나는 버스 시간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병소까지 따라 나오는 조 중사 눈을 피해 재수는 제 누나에게 신호를 계속적으로 보냈고, 재수 누나도 장단을 맞춰 아쉬워하는 재수 어머니를 이끌다시피 해서 위병소를 빠져나갔다. 재수가 누나와 호흡이 맞은 건 이때까 처음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무반으로 들어온 재수는 마치 고난이 작전을 마친 사람처럼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재수는 아까 제 누나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이산가족 찾기. 그거라도 해볼까 싶었던 것이다.
‘근데, 전쟁통에 헤어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주소 적힌 쪽지 한 번 받았다가 잃어버려서 그 여자를 애타게 찾는다고 하면 KBS가 그걸 받아줄까? 진짜 이산가족들한테 욕이나 처들어 먹는 건 아닐까? 이건 아닌 것 같고.. 가만. 'TV는 사랑을 싣고’ 란 프로그램이 있었지? 사랑.. 딱 맞는데? ...아차. 그건 연예인만 나오는 거지. 에라이.. ’
재수는 절망감에 빠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 오직 휴가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군대 휴가란 휴가는 다 받아내고 말리라.’
재수는 휴가 생각만 하느라 제 누나를 본 조 중사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