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세상이 다 언 것 같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군대의 겨울은 언제나 춥지만 재수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이제 병장 계급장을 달았지만 제대의 꿈에 부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장 계급은 장교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의미 외에 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때문에 다들 병장진급에 들떠 있을 때, 재수는 제대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앞으로 뭘 해 먹고살 것인지 막막해서 오히려 속이 타 들어갔다. 정음과 재회 전엔 그리워서 속이 시커멓게 타더니 이젠 그녀 앞에서 당당하고 싶어서 속이 탔다. 그러나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낸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정음과 재회한 지 벌써 네 달이 넘었고, 정음을 보기 위해 포상휴가를 그렇게 고대했건만, 좀체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가장 추운 1월, 혹한기 훈련을 마쳤으나 그건 웬만한 부대가 겨울이면 으레 하는 훈련이라 포상휴가는 없었다. 그래서 재수는 정음이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는 걸 알면서도 염치 무릅쓰고 면회 와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두 달 넘도록 목 빠지게 기다렸건만 답장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혹시 다른 남자가 생긴 건 아니겠지?’
군대란 그런 곳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연락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군대의 폐쇄적 환경은 쓸데없는 불안과 엉뚱한 상상을 절로 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런 군대의 속성을 다 아는 재수는 쓸데없는 상상이라 마음을 고쳐먹어도 그때 잠시 뿐, 이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군대 와서 생긴, 뭔가 느낌이 안 좋으면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이 또 도진 것이다. 문득, 입대 전 친구들의 당부가 떠올랐다. 여자 때문에 탈영하거나 자살하지 말라고. 실제로 몇 개월 전, 인근 부대에서 애인이 고무신 바꿔 신었다는 이유로 탈영 소식이 전해졌었다. 재수는 친구들의 당부를 비웃었었고, 실제로 일어난 탈영 소식도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어느새 몇 달 편지 없다고 정음을 두고 고무신 어쩌고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불안과 초조감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전투 축구가 있던 토요일. 이제 재수도 고참 축에 들어 패스 안 한다고 욕먹을 짬밥이 아니었다. 그러나 체육훈련을 마음대로 빠질 짬밥은 또 안 돼서 차라리 골키퍼를 맡기로 했다. 정음의 무소식에 맥이 빠져 뛰고 싶지도 않았다. 재수는 문득 교육대 입소 날, 덕환이 말한 봉화직염이 생각나 공이 날아와도 몸을 날려 막는 짓은 절대 안 하기로 마음먹고 허수아비처럼 골대 앞에 서 있었다. 괜히 골 막겠다고 몸을 날렸다가 팔, 다리 어디 한 군데라도 까지기만 해도 절단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봉화직염. 실제로 절단된 사례를 본 적은 없지만, 팔다리가 퉁퉁 부은 대원들은 몇 있었다. 재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음을 위해서도 몸만큼은 성하게 제대해야 했기에 재수는 그저 발이 닿으면 막고, 손이 안 닿으면 볼이 들어가거나 말거나 그냥 냅뒀다. 그때 쫄따구 하나가 재수를 다급히 부르며 달려왔다.
“노 병장님. 애인이 면회 왔지 말입니다?”
‘왔구나. 드디어 우리 정음이 왔구나. 으이그. 언제 온다고 답장이라도 하고 올 것이지.’
재수는 쫄따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무반으로 튀어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어찌나 허둥댔던지 바지를 입다가 몇 번을 넘어질 뻔했다. 군복을 제대로 입었는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내달려 단숨에 면회장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맹~수!!”
PX병이 힘차게 경례를 붙였지만, 재수는 그냥 오른팔을 무 자르듯 획 저어놓고는 정음을 찾았다. 이곳저곳 면회 중인 가족들 사이로 창가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달리듯 다가서던 재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정음이 풍기는 그녀만의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역시나 정음이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 지수가 앉아 환하게 웃으며 재수를 반겼다. 뜨악했다. 아마도 행정반에선 또래의 여자가 면회 왔다니 무조건 애인이라 여겼을 거였다. 정음과 우연히 재회를 했던 날 딱 한 번 같이 술을 마셨을 뿐이지만, 어쩐지 대화를 더 많이 주고받았던 지수였다. 말수가 별로 없는 정음과 달리 밝고 명랑한 지수는 그날, 그 자리를 주도했었다. 재수도 구김살 없는 지수의 웃음에 자기도 모르게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져 농담과 군대 우스갯소리를 들려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남자 면회를 오다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먼 이곳까지 면회 온 지수에게 반가운 척은 해야 했기에 재수는 지수의 어깨를 툭 치며 경례를 했다. 지수는 예의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막 경례를 했다.
“니가 여긴 웬일이야? 면회 온 거야?”
“참, 나. 면회장에서 면회 왔냐고 물어?”
“아니.. 그게.. 니가 면회 올 줄은..하하.”
재수는 이상한 기분과 정음에 대한 궁금증을 묻은 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수는 그런 재수를 아랑곳 않고 들고 온 삼단 찬합부터 열었다. 찬합에는 고기와 과일, 과자가 형형색색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재수는 그 정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확실히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러나 재수에겐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음이 왜 안 왔는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정음이는?”
“아유~ 일단 먹기나 하셔. 힘들게 음식 싸 온 사람 앞에 두고 정음이부터 찾아? 참 서운하네.”
“으허허. 그치? 알았어. 잘 먹을 게.”
재수는 지수의 말투로 보아 정음에게 적어도 자기가 생각하는 불길한 일은 생긴 것 같지 않아 안심이 됐다. 해서 지수의 정성을 봐서라도 궁금증을 억누르고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지만, 지금 이 이상한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 음식 맛을 느끼지 못했다. 재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수는 재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이번엔 정성껏 손으로 고기를 상추에 싸주었다. 하, 참. 이게 뭐지? 재수는 무척 어색했지만 거부하자니 지수가 무안해할 거 같아서 하는 수 없이 받아먹었다. 재수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지만, 애써 맛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서 빨리 지수의 입에서 정음의 얘기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재수의 기대와 달리 좀체 정음의 얘기를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재수는 지수가 또다시 싸준 고기를 물리고는 물었다.
“지수야. 정음이는 왜 안 왔어?”
“정음이 요즘 엄청 바빠. 수습이 끝나서 정식 디자이너 됐거든. 근데 그 회사가 작은 회사라 사람은 몇 없고 일은 많아서 혼자 일 다 하나 봐. 그래서 나더러 대신 가달라고 부탁했어.”
지수는 싸 놓은 고기를 그대로 든 채 말했다.
바빠서라니, 쓸데없는 상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다행이라 생각됐지만,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음을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건 재수로서는 있을 수 없었다. 해서 재수는 지수더러 대신 면회 가달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위하고 있음에 고마워하고, 정식 디자이너가 됐다니 그 또한 기쁜 일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자 갑자기 식욕이 돌았다. 재수는 지수가 들고 있는 쌈을 잡아당겨 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활짝 웃으며 고기를 우걱우걱 씹는 재수를 지수는 아까보다 더 흐뭇하게 바라봤다. PX에 간식을 사러 온 말년 유 병장과 쫄따구 채 상병이 재수와 지수를 흘깃거렸다. 면회 온 사람을 고참에게 인사시키는 건 당연한 의례여서 재수는 내키지 않지만, 그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 지수를 인사시켰다.
“워우~ 엄청 미인이시지 말입니다?”
“노 병장님, 능력 있지 말입니다?”
설레발을 친 그들은 고기며 과일이며 과자를 제 것 마냥 마구 집어 먹었다.
‘으휴. 누가 군바리 아니랄까 봐.’
“채 상병. 너 뭐 사러 온 거 아니냐? 안 살 거야?”
이러다 짧은 면회 시간을 그들에게 다 뺏길 것 같아 재수는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스모크 치킨 사러 왔는데, 이게 더 맛있지 말입니다.”
정음이 못 온 것이 안 그래도 서운했던 재수는 눈치 없기로 조 중사급인 놈이 쥐어 패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음~ 그래? 이게 더 맛있어? 그럼, 다 처먹어라. 여기 과일도 먹고 과자도 먹고.. 아니다 아예 이 찬합 들고 저기 가서 다 처먹어라.”
찬합을 통째로 들어 보이는 재수의 싸늘한 표정에 그제야 분위기를 감지한 채 상병은 입에 넣던 고기를 슬그머니 도로 놓았다.
“야, 이 새끼야. 입에 넣은 고기를 더럽게 누가 먹으라고 다시 놔? 다시 안 집어넣어?”
“야. 그만 먹고 일어나자. 우리 노 병장 도졌다. 그러게 왜 고기에 환장한 놈처럼 집어 먹고 지랄이야?”
욱하는 성질이 도진 걸 안 유 병장은 고기를 다시 입에 넣는 다시 채 상병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다. 그러자 채 상병의 입에서 고기가 도로 튀어나왔다. 채 상병은 테이블에 떨어진 고기와 재수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재수가 도로 집어넣으라는 턱짓을 하자 채 상병은 같은 고기를 세 번째 입에 넣고 돌아섰다.
“아니에요. 여기 음식 많아요. 더 드세요.”
이래저래 당황한 지수가 일어나 돌아서는 그들을 말렸다. 그런 지수를 재수는 잠자코 팔을 잡아끌어 앉혔다.
“재수 씨. 왜 그래. 그러다 고참한테 미움받으면 어쩌려고.”
“아냐.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나도 이제 병장이야. 아무한테나 얻어맞고 그러지 않아. 맞을 건 옛날에 다 맞았어.”
재수의 말에 지수의 표정에 안도감이 돌더니 이내 다시 흐뭇한 표정이 되어 재수 가슴에 붙은 계급장을 만지작거렸다.
“맞네. 우리 재수 씨, 고참 병장이지?”
순간, 재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혈기 왕성한 군바리 가슴을 만지는 것도 모자라 우리 재수 씨라니. 혹시 했지만 설마 하고 재수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수야. 오늘 잘 먹었다. 이제 일어나자.”
음식이 반도 더 남았지만 재수는 찬합을 덮었다.
“왜? 더 안 먹고.”
“많이 먹었어. 그리고 중식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금방 배가 부르네.”
“그럼 커피라도 마셔.”
지수는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준비해 온 유리 커피 잔에 따랐다. 그냥 종이컵을 사 오면 될 것을. 재수는 지수의 정성이 놀랍기도 하면서 부담이 됐다. 친구 부탁으로 면회를 대신 온 것치곤 정성이 보통이 아닌 데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도 무언가 달랐다. 그 정성을 봐서라도 재수는 커피를 숭늉 마시듯 후루룩 꿀꺽 삼켰다. 그리고 지수의 커피 잔이 비워지기도 전에 보온병을 닫았다. 그리고 지수에게 고개를 까딱여 이제 일어나자는 시늉을 했다.
“재수 씨 오늘 외박 아니야?”
“응..?? ..그.. 외박은 맞는데, 뭐.. 굳이..”
애인이 오면 특별한 부대 사정이 없는 한 무조건 외박이 주어졌다. 하지만 재수에게는 지수와 외박을 나가는 건 무척 어색한 일이었다. 외박을 나가면 자야 하고, 그럼 모텔에 가야 할 텐데. 어우. 생각만 해도 이상한 짓이었다. 그렇다고 방을 두 개 잡고 따로 자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와~ 군인이 외박을 마다하다니. 왜? 나랑 외박 나가는 게 이상해서 그래?”
재수는 지수가 사람 마음을 꿰뚫는 재주가 있는 가 보다 생각했다.
“아니, 그게.. 이상하다기보다.. 그 뭐냐..”
마음을 들킨 재수는 당황해서 어물거렸다.
“그냥 나가서 술 한 잔 하고, 잘 땐 손만 잡고 자면 되지.”
지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나랑 손잡고 자자고?”
재수는 기겁을 해서 얼굴까지 벌게졌다. 그 모습을 본 지수는 킥킥대고 웃으며 찬합을 싸기 시작했다.
“갈 거야. 갈 테니까 걱정 마셔.”
‘휴~ 그럼 그렇지. 농담이겠지.‘
눈을 곱게 흘기는 지수를 보고 재수는 장난에 당황한 자신이 부끄럽고 또 왠지 미안했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지수는 말이며 행동, 표정까지 밝은 여자였다. 그래서 그때도 지수와 더 많은 얘길 주고받았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밝은 지수가 찬합을 들고 일어서는 그때, 재수는 지수의 얼굴에 스치는 서운함을 보고 말았다.
짧은 면회가 끝나고 위병소 앞에 두 사람은 어색하게 섰다. 지수는 괜스레 먼 산을 봤고, 재수는 헛기침만 해댔다.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먼 이 이곳까지 온 지수를 너무 빨리 돌려보내는 게 아닌가 싶어 재수는 미안했다.
“야, 근데 너 원래 음식을 잘하냐? 보통 솜씨가 아니던데?”
재수는 어색함을 깨려고 지수를 치켜세우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됐어. 할 말 없으면 그냥 잘 가라고 해.”
확실히 지수는 상대 마음을 읽는 건 고수였다. 지수에게 또다시 마음을 들킨 재수는 이제 너스레는 그만두기로 했다.
“지수야.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진짜야.”
“고맙긴. 다음에 또 올게.”
거리낌 없이 말하던 지수도 재수가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진심으로 말하자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그래. 그때는 정음이도 꼭..”
“알았어. 그놈의 정음이, 정음이.. 정음이 닳겠다.”
“...으허허. 그거야 뭐.. ”
“근데, 재수 씨, 편지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야? 군대에서 그렇게 시간이 많아?”
“....!! 응? 그걸 니가 어떻게...”
"툭하면 편지 오니까 알지?"
"그니까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고?"
“엥? 재수 씨 몰랐어? 정음이랑 나랑 한 집에 사는 거?”
“엥? 둘이 같이 산다고?”
“참나. 그걸 여태 몰랐다니. 정음이도 자취하고 있었고, 나도 부모님 잔소리 싫어서 집 나와서 살림 합쳤잖아. 월세 반씩 내고. 그게 언젠데.. 아! 하긴.. 요즘 편지가 없어서 재수 씨는 모르겠네.”
“그걸 니가 또 어떻게 알아? 지수 너 혹시 우리 편지 주고받는 거 다 보고 있어?”
“...?? 무슨 소리야. 정음이 맨날 밤늦게 들어오니까 편지 쓸 시간 없겠다는 거지.”
“아, 하긴 그렇지.”
지수가 둘 사이에 깊숙이 들어앉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까부터 지수의 행동이 부담된 데다 지금 당황한 듯 말투가 재수는 영 찝찝했다. 그러나 재수는 먼 길 온 지수를 짧게 만나고 보내는 미안함이 앞서 찝찝한 기분을 털어버리기로 했다.
“잘 가.”
지수의 말대로 재수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며 지수의 어깨를 툭 치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자 지수는 곱게 눈을 흘기더니 홱 돌아섰다.
“지수야. 조심해. 넌 예뻐서 군바리들이 납치할 수도 있으니까 한눈팔지 말고 곧장 시외버스 타야 돼.”
재수는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괜한 농담을 지수의 등 뒤에 날렸다.
“아니. 나, 이 동네 쏘다닐 거야. 그러다 납치될 거야.”
지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뾰루퉁하게 대답하며 위병소를 나갔다. 재수도 피식 웃으며 돌아서 내무반으로 향했다.
그날 밤 침상에 누운 재수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낮에 면회실에서의 지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심란했다. 친한 친구가 부탁했다고 면회를 대신 온다? 그 정도로 자신과 친한 사이인가? 게다가 싸 온 음식이며 커피며 친구의 부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성이었다. 물론, 정음과의 편지에서 지수의 안부도 물었고 지수도 정음의 편지를 통해 답을 했긴 했다. 그러나 그건 친구끼리의 예의였다.
‘우리 재수 씨.’
재수는 자꾸 그 말이 떠올랐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던 지수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수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친 서운한 기색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군대 와서 처음으로 정음이 말고 딴 여자를 떠올리는 자신이 정음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