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28화

-하극상-

by 미스틱

재수가 넋 나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 부대에 도베르만 개 두 마리가 생겼다. 부대장이 어디서 주워 온 건지, 사 온 건지 몰라도 정찰대에 어울리는 수색견이라며 대원들 전부를 모아놓고 개 자랑을 했다. 그리고 재수는 그 개들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훈련 및 부대활동에서 열외 시키는 명분이었지만, 어쨌든 재수는 한순간에 군견병이 됐다. 처음 개밥을 들고 사육장으로 가던 중 재수는 자신의 군 생활이 참 개 같다고 생각했다. 휴가를 위해서였지만 온갖 훈련을 다 소화해 내고, 구르고 굴러 겨우 먹은 짬밥인데, 이제 개밥이나 들고 다니다니. 지난 군 생활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젊은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와 박박 기고 있는데, 겨우 개 주제에 담벼락에 기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병장 짬밥 군인이 주는 개밥을 편안히 처먹다니. 해서 개밥을 던져줄 때마다 재수는 이상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런데 희한도 하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재수는 그 개들이 위로가 됐다. 밥이 아니어도 멀리 재수가 보이기만 해도 꼬리를 흔들고 반가워 정신 못 차리고 날뛰는 개들이 사랑스럽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개들과 실없는 대화를 할 때, 비록 말을 못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개들의 눈빛엔 진정한 애정이 담겨 있어서 재수는 자신을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존재가 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자 재수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비록 한 달여의 시간이지만 정음을 잊을 수 있겠다는 희망 아닌 희망을 스스로에게서 보았다. 살면서 딱 두 번 본 여자를 두고 평생 사랑할 것처럼 애태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정음의 입장에서도 애타게 찾은 자신을 잠시 사랑했을 수는 있지만, 딱 두 번 보고, 편지 좀 주고받았다고 해서 진심으로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서 누군가 자신보다 더 사랑해 주고 더 많이 같이 있어준 남자를 만나게 됐다면 어쩌면 마음이 변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재수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겨우 온전히 정신이 들었을 때, 재수는 정음을 이제 잊기로 마음먹었고 한편으로 그런 자신에게 놀랐다. 질긴 잡초처럼 사신 부모님에게 그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보고 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체화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진 들, 어쨌든 정신줄 놓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꿈틀거려 그녀를 다시 한번 잊기로 마음먹게 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재수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 어머니는 자신과 누나가 태어나기 전, 자식이 넷이나 있었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넷을 키우다 맏이였던 큰딸을 병으로 잃은 후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자신과 누나를 낳았고, 먼저 낳은 둘째 아들이 사고로 죽었을 때 어머니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밭일을 나갔더랬다. 재수 나이 다섯 살 때였다. 죽음의 의미를 몰랐던 나이임에도 유난히 자신을 아꼈던 형이라서 충격과 함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무섭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나 큰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역시 어머니는 장례만 치른 후 슬픔을 미루고 장사를 나가서 또 한 번 놀랐지만, 이미 머리통이 큰 후라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됐었다. 아직 남아 있는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의 자식을 위해 슬플 겨를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역시 강남 한복판에 무허가 천막을 치고 살던 때, 철거반이 한 달에 두 번 꼴로 나타나 대나무에 식칼을 매달아 천막을 쭉쭉 찢어 놓아도 이튿날 뚝딱 다시 천막을 치고 버텼으며, 기어이 철거반이 천막을 무너뜨리고 쫓아내자 한강으로 통하는 하수로를 따라 난 보행로에 다시 천막을 치고 하숫물 냄새를 맡으며 살기도 했었다. 분명 입에 풀 칠 하기도 어려운 형편임에도 누나와 자신의 입학을 미루지 않았고, 달러돈을 써서라도 상급학교에 진학시켰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재수가 아는 강함이란 버티는 거였다. 기어이 쓰러지더라도 기어코 일어나는 것이었다.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거였다.

자식을 셋이나 잃은 고통조차 삭이며 온갖 희생을 하고 사신 제 어머니에 비추어 지금 자신은 여자 하나 때문에 세상 끝난 듯 굴었음이 부끄러웠다. 때문에 지금도 오직 제 걱정만 하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또 그 무렵, 덕환이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재수네 소대로 찾아와 위로해 준 것도 힘이 됐다. 자신 때문에 이 그지 같은 부대로 배치받고 다리까지 부러졌건만, 그래도 교육대 동기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준 덕환이 고맙고 또 고마워 힘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 남은 군 생활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마음을 수없이 다지고 다져도 재수의 마음 한켠에 미련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무언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재수가 조금씩 군인다운 면모를 되찾은 건 자신의 부사수가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녀석은 키도 작고 어딘가 여리 여리한 게 도무지 힘든 정찰대 생활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재수를 걱정하게 만들었고, 역시나 출신을 보니 충청도 어디서 음악다방 DJ를 하다 왔다는 사실도 재수의 걱정을 더욱 키웠다. 대원 차출을 담당하는 행정계 주임 원사는 PX로 들어오는 맥주와 고기를 빼돌린다는 소문이 파다한 터라 아마도 술에 취해 교육대에서 아무나 찍어 온 게 바로 부사수 이 놈일 거라 생각했다.

정찰대에는 그들만의 관례가 여러 개 있었는데, 부사수가 첫 휴가를 나갈 때 사수가 군복을 다려주고, 군화에 얼굴이 비치도록 광을 내주는 것과 부사수 머리는 사수가 직접 깎아주는 것도 그것의 일부였다. 그러니 부대원 전부는 상병 계급장을 다는 순간 머리 깎는 기술, 일명 깍새 기술을 배워야 했다. 재수의 부사수가 들어왔을 때 소대장은 다른 상병을 시켜 머리를 깎아주도록 지시했으나 재수는 극구 본인이 하겠다며 부사수를 끌고 깎새실로 향했다. 소대장은 불안했으나 어쨌거나 다시 적극성을 찾은 재수를 보고 다행이라 여겼다.

“너 음악 많이 알겠다. 그치?”

“네. 조금 알지 말입니다”

“그래. 앞으로 음악 얘기 좀 많이 해주라. 나 음악 무지 좋아하거든.”

“네. 알겠습니다.”

“근데, 너 운동할 줄 아는 건 있냐?”

“운동은 전혀 모르지 말입니다.”

“아예 한 적도 없다고? 축구도?”

“전 운동신경 없지 말입니다.”

“...너, 어째 좀 좆 된 것 같다.”

“......”

“아무튼 훈련 나가면 요령 잘 피워서 대충 흉내만 내. 그리고 차라리 몇 대 맞아. 그렇게 맞다 보면 고참들도 그러려니 널 포기할 거니까. 니 몸으로 남들처럼 들이댔다간 바로 의무대 갈 거 같다, 임마.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새끼가 대답은 씩씩하네.”


재수는 능숙하게 바리깡을 놀렸다. 보통 이등병은 빡빡, 일병부터 상병까지는 앞머리가 살짝 보이도록, 병장은 옆과 뒷머리만 바리깡을 치고 윗부분은 가위질을 해 살짝 넘길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을 남겨놓는 것이 깎새의 기본이었다. 재수는 목수였던 아버지를 닮았는지 손재주가 있어 머리 깎는 기술이 남달랐다. 그래서 장교나 부사관도 재수에게 머리를 맡길 정도였다. 재수는 일부러 이등병인 부사수 머리를 상병급으로 깎아줬다. 어차피 재수에게 제 머리를 맡기려는 대원들이 많았기에 누구를 어떻게 깎든 시비 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부사수가 들어온 지 며칠 안 돼 소대장인 김 소위가 전출을 가게 됐다. 군 생활 통틀어 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겨우 넘기고 있던 재수는 상병 때부터 의지했던 김 소위의 부재는 재수를 다시 한번 낙담하게 했다. 더구나 새로 부임한 소대장은 이등병과 일병 때 소대장이었던 조 중사였다. 재수 누나가 결혼한다는 이유로 상병 때 재수를 그렇게 괴롭히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가까스로 기운을 차리던 재수는 다시 기운이 빠지며 불안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무식한 조 중사는 소대 내 작은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안 되니 곧 무슨 사고가 터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조 중사는 기어이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날은 전투 축구가 있는 일요일이었다. 다들 악을 쓰며 연병장을 휘젓고 있었고, 아직 만사 귀찮은 재수는 역시 골키퍼를 맡고 서 있었는데, 자꾸만 부사수가 눈에 거슬렸다. 뛰긴 뛰는데, 공은 이미 지나갔건만 그제야 상대편 무리를 쫓아 뛴다거나, 운 좋게 제 앞으로 공이 와도 차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꼴이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고참들에게 욕 들어먹는 거야 벌써 이력이 났겠지만, 저렇게 뒤뚱거리다간 크게 자빠지거나 데굴데굴 구르거나 할 것이 뻔했다. 재수가 골대에 서서 어리바리한 부사수를 지켜보며 불안 불안하던 그때, 부사수가 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순간을 본 재수는 분명 다리가 부러졌을 것을 직감하고 부사수를 향해 내달렸다.

‘미련한 새끼.’


부사수는 공을 사이에 두고 상대와 똑같이 정면으로 발길질을 한 것이다. 두 다리가 같은 속도로 정면으로 부딪치면 약한 놈 다리가 부러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없기로서니 이렇게 미련할까. 에라이..’


재수는 부사수를 들쳐 업고 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곧장 앰뷸런스에 실려 간 부사수는 그날 저녁에야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멋쩍게 웃으며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거기까지는 부사수의 운동신경 부재의 문제니 부대 문제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한 달 후 부사수가 의무대에서 깁스를 풀었을 때였다. 내무반으로 들어와 씩씩하게 경례를 하는 녀석을 볼 때까지만 해도 재수는 이제 깁스를 풀었음을 다행이라 여겼다.

“저 힘줄이 끊어졌지 말입니다?”

“뭐? 힘줄? 인대?”

“네. 이제 말라붙어 붙이지 못하지 말입니다.”

“아니, 그걸 처음에 군의관이 몰랐단 말이야?”

“네. 의무관은 뼈만 부러진 줄 알았다고 했지 말입니다.”

“그럼 앞으로 절뚝거리며 장애인으로 살라고?”

“아마 그렇지 말입니다.”


이 황당한 사건을 마치 남의 얘기하듯 무덤덤하게 말하는 부사수의 뺨에 재수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이 미친놈아, 넌 지금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너 앞으로 장애인으로 살아야 돼.”

재수에게 뺨까지 얻어맞은 부사수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녀석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자기한테 닥친 얼마나 큰 사건인지.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생각하니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이 된 재수는 제 손이 부끄러웠다.

“너 의병 전역해. 내가 소대장한테 얘기해서 제대시켜줄 게.”

군대 와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고 마음 시커멓게 썩으며 지낸 재수는 진심으로 부사수가 불쌍했다. 그러나 부사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 역시 그것뿐이었다. 일개 사병이 군의관을 고소할 수도 없거니와 부모가 나선다 한들 그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할리 만무했다. 일반 사병이 사고 나서 다치면 군대가 하는 조치는 의병 제대뿐, 보상은 물론 사과조차 하지 않음을 재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 중사는 그마저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부사수를 PX병으로 내려 보내는 게 그가 한 일의 전부였다. 부대장에게 사건을 제대로 보고하지도 않았을 게 뻔했다. 입대할 때만 해도 군대에 관해 무지렁이나 다름없던 재수도 부대 내 사고가 나 소문이 퍼지면 진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니 진급에 목을 맨 장교나 부사관들은 어떻게든 사고를 무마하고 묻어버리는 데 급급한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더구나 조 중사는 아마 부대장에게 질책받는 것도 무서웠을 것이다. 무식한 조 중사니까. 아무리 짬밥이 많아도 부사관이라는 자격지심에 장교한테 말 한마디 못하는 병신이니까.


안 그래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재수였다. 이놈의 군대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던 정음을 보려고 개고생 해야 했고, 군대 때문에 정음을 말 한마디 못 듣고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했다. 그런 군대가 이제 부사수놈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놓고도 어떤 사과나 보상도 없이 그냥 절룩거리며 PX병으로 남은 군 생활을 마치라니. 재수는 이제 군대가 지긋지긋했다.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났다. 자신의 인생이 이 그지 같은 군대 때문에 너덜너덜 해진 것 같았다.

재수는 행정반 문을 발로 쾅 차고 들어갔다. 선임상사와 조 중사는 커피를 마시며 낄낄거리다 깜짝 놀라 커피를 쏟았다. 멀쩡한 애를 장애인으로 만들어 놓고 끼리끼리 논답시고 장교 없는 행정반에서 부사관들끼리 낄낄거리는 모습에 재수는 울화가 치밀었다.


“소대장님. 장 이병 왜 의병전역 안 시켜준 겁니까? 내가 분명 의병처리 해야 한다고 말했잖습니까?”

“뭐? 너 갑자기 그 얘긴 왜,,,”

“군대서 다리병신 됐으면 군대가 책임지지 못할망정 의병전역은 시켜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임상사는 재수가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벌써 눈치를 까고 커피 잔을 들고 슬그머니 행정반을 빠져나갔다.

“야. 노 병장. 잘 들어봐. 불명예스럽게 의병제대하느니 편하게 PX병으로 남은 군 생활 마치고 명예롭게...”

“소대장님. 장 이병이 정신병을 앓았습니까, 군 생활 적응을 못했습니까? 본인 문제가 아니라 시키니까 하기 싫은 축구 하다 다리 부러졌고, 군의관 개새끼가 처음에 인대 끊어진 걸 못 봐서 애가 장애인이 됐는데, 그게 왜 불명예제댑니까?”

“야, 임마. 의병제대는 다 불명예제대지 정신병은 뭐고 적응을 못하는 건 또 뭔 소리야?”


드디어 재수의 꼭지가 돌았다.


“그럼, 그렇지. 뭔 소린지 모르겠지? 무식한 새끼. 너 부대장한테 보고도 제대로 안 했지?”

“뭐. 새끼? 이런 미친 새끼가,,,지금 누구한테...”


조 중사는 재수에게 와락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조 중사는 특공무술 3단, 태권도 4단 보유자였다. 재수도 싸움하면 한 가닥 했지만 그를 상대로 주먹다짐으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꼭지가 돌면 앞뒤 안 가리는 재수였다. 처음에 재수는 조 중사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조 중사의 목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벽에 몰아놓고 면상에 주먹을 꽂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럴 새도 없이 조 중사의 주먹이 재수의 명치를 강타했다. 가속이 붙기엔 짧은 거리지만, 역시 평생 무술만 한 놈이라 그런지 재수는 그 한방에 숨이 턱 막히고 상체가 앞으로 훅 꺾였다. 다시 한번 조 중사의 주먹이 재수의 왼쪽 뺨에 작렬했다. 재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재수의 머리통이 잡아끌려 올려졌다. 그리고 이번엔 재수의 오른쪽 턱에 조 중사의 주먹이 꽂혔다. 재수는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상태에서 조 중사의 군홧발이 재수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흐헉!’


재수는 바닥을 뒹굴었다. 태어나 그렇게 완벽하고 처참하게 두들겨 맞은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찬 콘크리트 바닥이 얼얼한 뺨에 닿자 속이 시원했다.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 왠지 마음속 깊이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더 맞고 싶었다. 그래서 재수는 몸을 일으키는 척하다 홱 돌아 조 중사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조 중사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는 사이 재수의 왼 주먹이 다시 한번 조 중사의 턱을 강타...할 뻔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조 중사의 돌 같은 손날이 재수의 목젖을 찔렀다.

‘켁’


어찌나 손가락 힘이 좋던지 재수는 그 한방에 목을 잡은 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대원들이 사단장에게 시범 보이느라 한 흉내 내기 특공무술과 확실히 달랐다. 진짜 특공무술 3단이 맞나 보았다.

‘개새끼. 싸움 좆나 잘하네.’


재수가 목을 잡고 괴로워하자 조 중사는 씩씩대며 재수 주위를 맴돌았다. 아마도 더 팰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재수는 무술 고단자에게 맞은 게 쪽팔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 중사의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기어코 한대라도 더 때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조 중사가 재수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재수는 번개같이 책상 위 명패를 집어 조 중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조 중사가 머리통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재수는 한 대 더 후려치고 싶었으나 남은 기운이 없었다. 주먹 몇 대와 손날 공격 한 번에 이렇게 무력해지다니. 역시 무술 7단은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구나 싶었다. 재수는 더 때리고 싶고, 더 맞고도 싶어서 비틀거리며 조 중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명패로 머리를 맞은 충격이 컸는지 조 중사는 어떤 방어도 못하고 달려드는 재수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재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조 중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 했으나 재수의 주먹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야. 일어나. 더 때려. 일어나라고 이 새끼야. 더 때리라고!!!”


재수는 악을 쓰며 조 중사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힘에 부쳤다. 조 중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몸을 뒤척일 뿐이었다. 그제야 바닥에 흥건한 피가 재수 눈에 들어왔다. 재수는 포기하고 조 중사 옆에 드러누웠다. 얼굴 전체가 얼얼하고 목이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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