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송-
부대원 전원은 한미 연합 훈련 예행연습을 위해 완전 군장을 하고 연병장에 도열했다. 그들은 단상을 향해 정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눈은 소 연병장을 향해있었다. 그곳엔 재수가 혼자 목봉을 하고 있었다. 보통 예닐곱 명이 같이 들어도 몇 십분 만에 힘에 부치는 목봉을 통나무 한쪽을 땅에 박고 반대편 쪽을 잡아 양쪽 어깨 위로 번갈아 옮기는 ‘나 홀로 목봉’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틀 전 난투극으로 부대장은 조 중사와 재수 둘 다 영창 행을 때렸다. 조 중사는 사건을 축소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소대원 관리를 해야 하는 소대장이 부대 내에서 소대원과 난투를 벌였으니 영창행이 당연했다. 또한 재수는 심각한 하극상에다 상관과 난투를 벌임으로써 부대 기강을 무너뜨렸으니 역시 영창 행이었다. 하지만 소대장만 영창을 가고 재수는 부내 내 군기 훈련으로 대체됐다. 이유는 정찰대의 고질병, 대원부족 때문이었다. 규모로는 군대 훈련 중 가장 큰 규모의 훈련인 한미연합 훈련이 코 앞인데, 다섯 명 정예팀으로 움직이는 정찰대에서 분대장이자 팀장인 재수가 빠지면 그 팀이 아예 훈련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휴가를 받고도 대원이 모자라 휴가를 못 가서 억울했는데 이럴 땐 대원부족이 재수의 영창 행을 막았으니, 재수는 지지리도 운이 없다가도 뜻밖의 행운을 얻기도 해서 자기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부대원 전원이 매일 예행 훈련에 지쳐있고, 재수는 일과 시간 내내 나 홀로 목봉을 한 지 5일째 된 날 밤이었다. 재수는 지친 몸을 뒤척이다 한 순간 옆구리가 찢어지는 듯 통증을 느꼈다.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옆 쫄따구를 불러 깨우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신음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서 재수는 하는 수없이 옆 쫄따구를 꼬집어 깨웠다. 옆 자리 쫄따구는 식은땀을 흘리는 재수를 눈을 비비며 바라봤다.
몇 분 후 재수는 의무대로 헬기 이송됐다. 그곳에서 진통제를 몇 대 맞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런데 역시 군대는 군대라 어이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몇 분 후, 입원실에 엑스레이 사진이 걸렸고 사진을 판독하던 군의관이 차트로 의무병 머리통을 후려쳤다. 엑스레이 사진 하나 제대로 못 찍느냐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재수의 상복부 사진엔 한쪽 갈비뼈만 보이고 반대쪽은 뼈가 보이지 않고 아예 허옇게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의무병 잘못이 아니었다. 다시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였고, 그제야 군의관은 재수의 왼쪽 갈비뼈와 폐 사이에 물이 꽉 들어차 아예 허옇게 나온 것임을 알아챘다. 부사수의 인대가 끊어진 걸 발견 못한 군대 군의관들의 수준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한참 사진을 뜯어보던 군의관은 혀를 끌끌 차며 늑막염이라고 말했다. 역도 선수들이 호흡조절 잘못하면 걸린다는 게 늑막염이니 아마도 나 홀로 목봉을 하다 걸린 게 분명했다. 이튿날 재수는 마산으로 가는 수송 열차에 실렸다. 그 수송열차도 군대가 군인을 소모품 취급한다는 걸 여지없이 확인시켜 줬다. 한량에 환자 18명을 뉘었는데 통로 양쪽에 야전침대를 3층으로 다닥다닥 붙여 놓은 터라 위 침대에 머리가 닿아 앉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침대 옆엔 플라스틱 소변 통을 붙여 놓고 환자 모두 기저귀를 채웠다. 열차에 환자를 위한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수는 위 침상에서 똥 싸는 소리와 냄새를 다 맡으며 마산까지 가는 일곱 시간 동안 영화에서 본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수없이 떠 올렸다.
마산 통합병원엔 특전사, 해병대, 특공대, 일반 부대원 등 전국의 각종 부대 환자들이 죄다 몰려있었다. 군대는 무조건 짬밥인데 죄다 모아놓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은 계급보다 얼마나 빡센 부대 출신 인가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 병실에서 특전사 일병과 보병 부대 병장이 기싸움을 하고, 해병대 병장이 특전사 병장과 기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수가 입실한 병실에도 해병대 병장이 있었다. 병실 모든 활동이 박 병장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꼴로 보아 그가 영화에서 본 감옥처럼 병실 방장임이 틀림없었다. 다행히 그는 재수에게 깍듯이 고참 대우를 해줬는데, 그는 병장 2호봉, 재수는 병장 3호봉으로 한 달 밖에 차이가 안 나는 데다 명색이 해병대 병장인데 재수에게 깍듯한 게 이상했다. 알고 보니 재수가 정찰대라는 걸 알고는 그리 한 것이어서 재수는 뭣도 아닌 부대가 쓸데없는 갖은 고생은 다 하는 걸 들킨 것 같아 초라해진 기분이 들었다.
재수는 맹수부대 의무대부터 마산 통합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까지 총 3일을 진통제로 버티다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폐와 갈비뼈 사이에 들어찬 물을 빼야 했다. 재수는 대체 물을 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잔뜩 긴장만 하고 있었다. 옆구리를 칼로 째면 물이 줄줄 흘러나오나? 갖은 고생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특공 무술 중 대검술도 배웠지만 실제로 칼을 맞아본 적은 없어서 더 긴장을 했다.
잠시 후, 자신을 진료한 군의관은 안 보이고 예쁘게 생긴 간호장교가 쇠꼬챙이를 들고 재수 곁을 서성였다. 실연의 후유증인가? 재수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말도 하기 힘든 그 와중에 간호장교 제복이 참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간호장교가 들고 있는 나무지시봉이 아닌 은빛 반짝반짝하는 지시봉도 자신의 섹시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액세서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 재수의 옆구리에 벌건 소독약을 바르는가 싶더니 섹시한 간호장교가 그 섹시한 지시봉을 순식간에 재수 옆구리에 푸욱 찔러 넣었다.
‘흐헉!’
이번에도 비명도 못 질렀다. 군바리라 마취정도는 패스했다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고는 하고 찌르든가.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도 무방비 상태에서 칼침 아니, 꼬챙이 침을 맞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예쁘고 섹시한 여장교에게 꼬챙이 침을 맞으니 재수는 이상한 배신감이 들면서 기분이 참 더러웠다. 이윽고 그 꼬챙이에 아기 기저귀 고무줄이 매달렸고, 그 고무줄을 따라 침대 밑 깡통에 물이 통통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원시적이었다. 사람 가슴에 물이 찼는데 쇠꼬챙이와 기저귀 고무줄을 이용해 물을 뺀다? 이건 밀림에 조난당한 사람이 나뭇잎에서 물 받는, 뭐 그런 생존 방법 같은 거 아닌가? 원시적 물 빼기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진짜 물이 차긴 많이 찼나 보았다. 재수가 이런 원시적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저 간호장교는 사람 옆구리에 꼬챙이를 쑤셔 박고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여자가. 뭐, 이런 상념을 하고 있을 때 군의관이 들어왔다. 그리고 깡통에 물 떨어지는 모습을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무심히 말했다.
“더는 안 빠지겠는데? 야, 이제 약으로 말려.”
‘응? 약으로 물을 말린다고? 아니, 약이 얼마나 뜨겁길래..’
재수는 데인 듯 미리부터 혓바닥이 화끈거려 기겁을 했다. 뜨악해하는 재수에게 다른 어떤 설명도 없이 군의관은 사라졌고, 그날 저녁 재수 침상엔 수통만 한 대형 물 컵이 놓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아침 6시, 기상과 동시에 다른 병사들이 점호를 받을 때, 재수는 주먹 한가득 약을 삼킨 후 10분 이내에 쓰러졌다. 공복에 독한 약을 쓸어 넣었으니 약에 취해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재수는 약 복용 단 하루 만에 ‘약으로 물을 말린다.’는 의미와 물통이 왜 그리 큰 지 다 이해했다. 그리고 약을 복용한 지 3주 만에 얼굴 전체에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퍼졌다. 병실 담당 간호 장교는 독한 약 때문에 간에 무리가 가서 그렇다고, 이제 주사로 투여하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주사를 놓을 일이지 간을 다치고 나서야 주사를 놓겠다고? 주사약이 그리 비싼가? 국방 예산이 그리 부족한가?’
역시나 군대의 어이없고 황당한 일들은 병장 3호봉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재수는 이제 군대의 비합리적인 무식함에 이력이 날만도 했지만 아직도 당할 때마다 열불이 났다.
마산통합 병원엔 병동마다 공중전화가 한 대씩 있는데 환자수를 생각하면 전화기 대수도 말이 안 됐지만 전화를 쓸 수 있는 시간이 하루 딱 한번, 한 시간으로 제한돼 매일 전화 가능시간이 되면 전화기 앞엔 끝없는 긴 줄이 늘어섰고, 누군가 통화가 길어지면 옥신각신 다툼이 일었으며 심하면 몸싸움까지 났다. 몸싸움은 주로 고참들 사이에서 일어났는데 쫄따구들은 고참들의 눈치에 통화시간이 1분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참들 사이에 일어나는 몸싸움 중 특전사, 해병대, 특공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몸싸움이 볼만했다. 각자 제 부대의 위상이 계급을 뛰어넘는다는 발상에서 이뤄진 일인데, 한번 붙으면 각종 무술 같지 않는 무술이 펼쳐졌다. 뒤돌려 차기 하다 제풀에 자빠지는 놈, 특공무술이랍시고 손으로 상대를 찔렀다가 제 손가락만 부러지는 놈, 엎어치기를 하다 상대가 안 넘어오자 제 등에 업은 채 끙끙 대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놈 등, 가지가지로 구경하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그래도 다들 살기는 어마어마해서 눈에 광기까지 띄고, 결국 개싸움이 되면 죽기 살기로 덤벼 붙어 얼굴이 피범벅이 돼도 그칠 줄 몰랐다. 그럴 땐 저들이 환자가 맞나 싶었다.
재수는 지수의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전화통을 붙잡은 적은 없었다. 별로 할 말도 없는 데다 정음을 또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수는 그저 싸움 구경이나 하려고 공중전화기 앞을 자주 지나다니기만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놈이 줄에 서 있었다. 그의 앞뒤에 선 녀석들도 그를 힐긋힐긋했기에 재수는 그를 유심히 바라봤는데, 그는 트로트도 아닌 발라드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 모를 장르의 노래 한 곡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유명 가수였다. 빡빡 민 머리와 새까맣고 거친 피부에 퉁퉁 부은 얼굴이 그가 훈련병임을 짐작케 했는데, 재수도 내무반 TV로 그를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군대는 TV에서 근사했던 그를 동네 거지처럼 만들어 놨다. 확실히 군대는 멀쩡한 사람을 후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군대는 외모만 후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찌질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나 보았다. 전직 가수이니 군악대나 사병들 위문 공연하는 문선대를 갔을 텐데, 왜 저렇게 됐나 싶어 유심히 지켜본 재수가 그런 생각을 한 건 그의 통화 내용을 듣고 나서였다. 여보, 여보 하는 걸 보니 제 아내에게 전화를 건 것 같은데, 그는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힘드네, 보고 싶네, 탈영하고 싶네 하며 흐느꼈다. 연예인이라지만 겨우 몇 주 군 생활 해놓고 질질 짜는 모습이 가관에다 참 찌질한 놈이다 싶었다. 물론, 그는 뒤에 기다리던 해병대 상병에게 뒤통수가 깨지도록 얻어맞았다. 오래 통화한 것도 있지만, 딱 고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 매우 잘 빠진 병동 생활을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군의관이나 간호장교실로 불려 가 노래를 불러댔고 특전사, 해병대, 특공대가 다 모여 있는 살벌한 사병 식당을 이용할 필요 없이 장교 식당에서 식사했으며, 그가 속한 병동 전체에 그를 건드리지 말라는 군의관의 엄명이 떨어졌다. 재수가 연예인이 부럽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무리 군인이지만 환자다 보니 하루 일과가 그저 침대에 누워 있거나 연병장 겸 공원을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재수의 병실에 있는 해병대 병장도 하루 종일 종이를 접거나 이쑤시개로 탑을 쌓았다. 재수는 명색이 해병대 대원의 그런 모습이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그 해병대 병장에게 말이라도 붙일 겸 종이접기를 배울까 생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연병장 겸 공원에서 환자들의 야구 시합을 보게 됐다. 원래 야구를 좋아했던 재수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혹시 자신도 끼어들 틈이 없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합을 본 지 얼마 안 돼 재수는 그 바람을 접었다. 한 팀은 결핵병동 환자들이었고 한 팀은 정신과 병동 환자들이어서 내과 병동에 속한 자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재수는 자리를 지켰다. 환자라지만 그래도 군바리들의 시합이라 어느 정도 야구의 재미는 느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수의 눈앞에 코미디가 펼쳐졌다.
정신과 환자들은 결핵 환자가 던진 테니스 공이 미처 다 날아오기도 전에 방망이를 휘두른 후 냅다 뛰기도 하고, 어떤 놈은 아예 던지기도 전에 방망이를 휘두르고 홈런을 친 것 마냥 혼자 그라운드를 돌아 홈베이스를 밟기도 했다. 방망이를 든 채 말이다. 그런 모습을 결핵 환자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무덤덤하게 지켜봤다. 아마도 이런 시합이 한두 번이 아니었나 보았다. 공수가 바뀌자 이번엔 수비수 죄다, 심지어 투수까지 타자가 친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갔다. 뿐만 아니라 먼저 공을 잡으면 무슨 사탕이라도 주는 줄 알았는지 몸싸움까지 하면서 몰려갔다. 유치원 애들의 공놀이 같아서 재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압권은 두 병동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였다. 정신과 병동 환자들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니 별것도 아닌 일에 쉽게 흥분하고 다퉜는데, 심하면 몽둥이를 들고 덤비기도 해서 폭력 사고가 날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수가 조마조마했던 것과 달리 죽일 듯 달려드는 정신과 환자를 두고 보인 결핵 환자들의 무덤덤한 반응이 이상했던 재수는 이내 배꼽을 잡고 뒤로 넘어갔다. 정신과 환자가 달려들 때 결핵 환자가 땅바닥에 침을 퉤 뱉으면 정신과 환자들이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것으로 상황 종료됐기 때문이었다. 정신병을 앓고 있어도 결핵균이 무서운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재수는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군대 들어와서 처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배꼽 잡고 웃었다. 때문에 지루한 병원 생활에 비타민처럼 청량한 활력소 하나를 이제 발견한 것 같아서 재수는 자주 시합이 벌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시합은 정신과 병동 간호장교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뤄진다는 걸 듣고 재수네 병동으로 요청이 오길 바랐다. 그러다 정신과 환자들이 방망이를 들고 덤비면 내과 환자들은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이내 깨닫고 그냥 포기했다.